한씨네 삼남매 - 그리고 세상의 아이들 한치규 사진집 1
한승원 글, 한치규 사진 / 눈빛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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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빚고픈 사랑을 담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95] 한치규, 《한씨네 삼남매, 그리고 세상의 아이들》(눈빛,2012)

 


  세 아이 삶자리를 사진으로 찬찬히 돌아본 사진책 《한씨네 삼남매, 그리고 세상의 아이들》(눈빛,2012)을 읽고 나서 사진쟁이 한치규 님 해적이를 살피다가 흠칫 놀랍니다. 한치규 님은 1979년부터 ‘보안사’에서 대령 신분으로 일했기 때문입니다. 직업군인일 뿐 아니라 여느 직업군인, 이를테면 하사관이나 소위·중위가 아니라 보안사 직업군인이라니, 적잖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사진은 어떤 신분이나 계급을 앞세우며 찍을 수 없습니다. 어떤 신분이나 계급은 외려 사진을 사진다이 찍는 길을 가로막거나 흐트린다고 느껴요. 이런 이름이 있거나 저런 겉모습이 있대서 사진이라 하거나 사진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오직 사진으로 바라보며 누리거나 느낄 뿐이에요. 대통령도 이녁 아이를 사진으로 찍고, 여느 흙일꾼도 이녁 아이를 사진으로 찍어요. 신문기자도 동네 아이를 사진으로 담고, 여느 공무원이나 교사도 동네 아이를 사진으로 담아요.


  사진책을 찬찬히 넘깁니다. 한치규 님이 박정희 군사정권 때에 보안사에서까지 직업군인으로 일한 까닭에 한치규 님네 세 아이 사진은 퍽 남다르다 할 만합니다. 한치규 님네 세 아이는 지난날을 어떻게 느꼈을는지 모르지만, 사진으로 드러나는 세 아이 살림살이는 그무렵 여느 아이들 살림살이하고 견주면 ‘매우 가멸찹’니다. 1960년대인데, 집에 텔레비전이 있고 전화기가 있어요. 1960년대인데, 막내아이 생일선물로 세발자전거를 새것으로 받아요. 아이들은 군인옷을 걸친 채 놀기도 합니다.

 

 

 


  사진책을 살짝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1970년대도 아니고 1960년대에 집안에 텔레비전과 전화기와 아이 세발자전거가 있습니다. 여느 집살림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한치규 님네 집에는 ‘사진기’까지 있어요. 이무렵 여느 살림집 살림살이로 사진기를 갖추기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이때에 갖춘 사진기부터 퍽 대단하다 여길 만합니다.


  사진책을 다시 넘깁니다. 집안에 텔레비전이며 전화기가 있지만, 서울 내수동에 있었다는 살림집 벽종이나 장판이 참 수수합니다. 창호종이 바른 나무문입니다. 아이는 창호종이에 구멍을 큼지막하게 내고는 얼굴을 들이밀며 웃습니다. 마당 있는 기와집이지만, 마당이래 봤자 개수구 구멍을 막아 아이들 몇이 물놀이를 할 만큼 아주 조그맣습니다. 아이들 어머니가 아이를 씻기는 통은 여느 살림집에서 어머니들이 아이를 씻기는 통하고 같습니다. 따순 물을 받아 방에서 아이를 폭 담그며 씻깁니다. 나 또한 내 아이들을 이렇게 씻겼어요. 우리 아이들이 어머니젖을 먹고 자랐듯, 한치규 님네 아이들도 어머니젖을 먹고 자랍니다.


  주말이면 이곳저곳 신나게 나들이를 다녔다 하는데, 나라안 곳곳을 다니기는 했어도 나라밖으로 비행기 타고 나가지는 않았겠지요. 어느 모로 보면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 집안이라 할 테지만, 어느 모로 보면 ‘좀 먹고살 만하다’ 싶어도 ‘먹고살기 팍팍한 달동네 이웃’보다 ‘아주 넉넉하게 살림을 꾸리는 나날’은 아니로구나 싶어요. 무엇보다, 한치규 님 사진에는 아이들과 즐거이 누리던 사랑이 살포시 묻어납니다. 사진기를 들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일 뿐, 직업군인이라든지 보안사 대령이라든지 하는 허울이 사진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손에 사진기를 쥔 채 아이들을 살가이 복닥이는 어버이일 뿐, 제법 먹고살 만한 살림이라거나 무언가 더 움켜쥔 사람이라는 껍데기가 사진에 스미지 않습니다.

 

 

 


  “1959년에 카메라를 처음 장만한 아버지는 일본의 카메라 상점에 우리 나라 김을 사서 보내시곤 했다. 그러면 상점 측에서는 그것을 환산한 액수만큼의 필름과 현상약품을 보내 왔다. 외환 사정이 어려웠던 시절, 일종의 물물교환 형식의 교류였으리라(7쪽/둘째 딸 한승원).” 하는 말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며 사진을 즐길 수 있던 사람은 흔하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한편, 이렇게 하며 사진을 즐겼다는 이야기를 적바림하기에, 우리 나라 사진 발자취 한쪽 모습을 환하게 밝히며 기쁘게 사진읽기를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삼남매는 행복한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 갔다. 주말이면 가족 모두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변하는 세상 모습도 찍었다. 아버지는 그 모든 것을 사진으로 남기셨다(8쪽/둘째 딸 한승원).” 하는 말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한치규 님은 당신이 거머쥔 어떤 이름(신분이나 계급)으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한치규 님은 그저 아버지로서, 어버이로서, 어른으로서, 사람으로서 사진을 찍습니다. 한치규 님은 당신이 누리던 어떤 돈(이무렵 여느 사람들보다 퍽 넉넉한 살림)으로 사진을 빚지 않습니다. 한치규 님은 사랑으로, 믿음으로, 꿈으로, 이야기로 사진을 빚습니다. 사진마다 이야기 한 자락 가득 담습니다. 세 아이한테는 세 아이대로 지난 한때를 즐거이 그리는 사진이 되고, 세 아이하고 딱히 이어지지 않는 여느 사람한테는 ‘참 사랑스러운 삶을 담은 사진’이로구나 하고 느끼도록 이끕니다.


  아이들이 놉니다. 아이들이 다툽니다. 아이들이 잠듭니다. 아이들이 먹습니다. 아버지 한치규 님은 이런 모습 저런 웃음 그런 빛깔을 사진으로 알록달록 담습니다. 그지없이 싱그럽고 참으로 보배롭습니다. 다만, 사진책 《윤미네 집》(전몽각 사진,포토넷 펴냄,2010)처럼 주말 아닌 여느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하고 복닥이는 모습이 찬찬히 담기지는 않아요. 세 아이를 낳아 돌보던 어머니는 하루하루 어떠한 살림이요 삶이며 모습이었을까요. 하루 내내 세 아이가 어머니하고 복닥이던 모습은 어떠한 웃음이며 눈물이었을까요. 《한씨네 삼남매》이든 《윤미네 집》이든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은 ‘남자(아버지)’입니다. 집에서 살림을 꾸리는 여자(어머니)가 사진기를 손에 쥐는 일은 아주 드물거나 아예 없기 일쑤입니다.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다가, 씻는방에서 빨래를 하다가, 마루에서 걸레질을 하다가, 방에서 아이들 기저귀를 갈고 토닥토닥 재우다가, 살짝살짝 사진기를 손에 쥘 때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가 하는 이야기는 담기지 못합니다. 마당에 빨래를 너는 아침, 마당에서 빨래를 걷는 한낮, 걷은 빨래를 곧장 개지는 못하고 저녁이 되어 겨우 개면서 아이들한테 노래를 들려주며 하루를 마감하는 삶 들이 사진으로 소록소록 스미지는 못합니다.

 

 

 

 


  1960∼70년대에 사진기를 누릴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터이나, 그렇다고 아예 없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게 사진기를 누리더라도 사랑을 담지 못한 사람이 있고, 가멸차게 사진기를 누리면서도 사랑을 담은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날 사진기는 아주 손쉽게 참 많은 사람들이 누립니다. 이제 ‘돈이 없어 사진기를 못 누린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그마한 손전화로도 사진을 찍어요. 자그마한 손전화로도 아이들 어여쁜 빛깔을 사진으로 빚어요.


  곧, 한치규 님이 조금 더 넉넉한 살림이었기에 사진을 찍을 수 있지는 않았습니다. 한치규 님이 조금 더 가난한 살림이었다 하더라도 사진을 찍으며 예쁜 넋을 누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내 한삶 어떻게 즐기거나 누릴 때에 더 빛나는가를 일찍부터 깨달은 한치규 님이라고 봅니다. 사진으로 서로서로 어떠한 사랑을 어떠한 꿈결로 따사로이 이루는가를 오래도록 느낀 한치규 님이구나 싶어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나날을 사진으로 찍는 어버이는, 사진에 ‘아이들 웃음’을 담지 않습니다. 아이들 어버이는 사진에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 마음’을 담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웃음이 아니라, 아이들과 활짝 웃으며 살아가고픈 마음을 담습니다. 아이들과 떠들며 놀다가 사진을 찍는 어버이는, 사진에 ‘아이들 어떤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습니다. 아이들 어버이는 사진에 ‘아이들과 얼크러지며 이루고 싶은 어버이 사랑’을 담습니다.

 

 

 

 


  마음을 기울이기에, 골목길에서 동네 꼬마들을 이녁 아이하고 나란히 세워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랑을 쏟기에, “한씨네 삼남매”에 이어 “세상의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빚습니다.


  좋은 꿈과 맑은 사랑과 따사로운 이야기를 엮은 사진을 떠올리며, 우리 집 두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을 되새깁니다. 내가 빚고픈 사랑을 담는 사진입니다. 내가 누리고픈 삶을 싣는 사진입니다. 내가 즐기고픈 꿈을 갈무리하는 사진입니다.


  사진책 《한씨네 삼남매》를 여러 차례 더 읽습니다. 사진책에 실린 사진이 더없이 맑습니다. 사진책에 못 실린 사진이 퍽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살아온 모든 나날을 자그마한 사진책에 몽땅 담을 수 없어, 알맹이만 간추렸을 테니까요. “한씨네 삼남매”와 “세상의 아이들”을 따로 낱권으로 묶어 두 권으로 냈으면 더 좋았겠다 싶습니다. 《한씨네 삼남매》에 실린 사진으로도 흐뭇하지만, 무언가 더 이야기가 있겠구나 싶어요. (4345.5.18.쇠.ㅎㄲㅅㄱ)

 


― 한씨네 삼남매, 그리고 세상의 아이들 (한치규 사진,눈빛 펴냄,2012.5.8./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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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밑은 "세상의 아이들" 사진입니다.

<한씨네 삼남매>는 두 갈래로 나눈 사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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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 아끼는 마음은

이웃 아이들 헤아리는 마음으로 이어져

고운 사진으로 태어나는구나 싶어요

 

 

 

 

맨발로 달리기 하는 모습입니다

 

 

 

 

학부모인 어머니들도 맨발이나 양말바람으로 달리기를 하셨어요

 

모르는 분은 '시골 학교'로 생각하실는지 모르지만,

이 사진 두 장은 '인천 주안초등학교 1960년대 운동회' 사진입니다

 

 

 

 

이 사진 또한 시골마을로 여길 분이 있을는지 모르나,

'서울 태능'에서 신문배달 하는 아이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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