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스기 가의 도시락 1
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시락에 담는 마음
 [만화책 즐겨읽기 149] 야나하라 노조미, 《다카스기가의 도시락 (1)》

 


  나는 학교급식을 안 좋아합니다. 나는 군대배식을 안 좋아합니다. 나는 내 밥을 내 손으로 차려서 먹을 때에 좋아합니다. 나는 내 살붙이들과 함께 지내며 서로 밥을 차려 줄 때에 좋아합니다.


  내 손으로 차리는 내 밥상이 좋습니다. 내 옆지기나 어머니가 차리는 밥상이 좋습니다. 누가 먹을까 마음속으로 그리며 차리는 밥상이 좋습니다. 누가 먹을는지 모르는 밥을 짓느라 땀흘리는 일거리는 내키지 않습니다.


  학교급식은 이모저모 영양과 균형을 따진다 합니다. 군대배식은 군인 누구나 정량배식을 한다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밥을 먹고 싶지, 영양과 균형을 먹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밥을 누리고 싶지, 정량배식을 지키고 싶지 않습니다.


- “쿠루리, 들어오렴. 하루미 씨가 가족이 돼 준단다.” (5쪽)
- “우스터 소스를 쓰는 집도 있고 케첩도 있고 데미그라스 소스를 넣어 공들여 만드는 집도 있어요.” “그렇게 많단 말이야?” “그게 가정의 맛이니까요.” (43쪽)

 


  내 고등학생 세 해 동안 어머니는 도시락을 싸 주었습니다. 오늘에 와서 돌이키면, 내 도시락을 나 스스로 쌀 만했으나, 그무렵 나는 나 스스로 내 도시락을 싸자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가 손사래치며 못하게 말렸을 수 있고, 나는 조용히 내 도시락을 내 깜냥껏 쌀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내 고등학생 세 해 동안 내 반찬은 늘 한 가지였습니다. 한 해는 내내 김밥이었고, 두 해는 내내 볶음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반찬은 없는 셈입니다. 김밥만 우물우물 먹으며 한 해를 보냈고, 볶음밥만 냠냠짭짭 하면서 두 해를 지냈습니다.


  무어라고 할까, 반찬으로 무엇을 넣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며 살았던 셈입니다. 이런 반찬 저런 반찬을 헤아리지 않던 삶입니다. 어쩔 수 없다기보다 나 스스로 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내 몸이 김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줄 알기는 하되, 김치나 동치미가 내 몸에 안 맞는다 한다면, 나한테 가장 알맞을 밥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야 했을 텐데, 나는 어머니가 차리는 밥상을 받을 뿐, 스스로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군대에서는 그야말로 죽지 않고 싶으니까 밥을 먹었습니다. 군대에서는 반찬 한 점이라도 남기면 끔찍하게 두들겨맞고 얼차려 받으며 더 배고프니까, 물고기뼈까지 우걱우걱 씹어서 억지로 먹었습니다. 뱃속에서 삭힐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않았어요. 나는 오직 “죽기 싫다”와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훈련병과 이등병과 일등병을 가로질렀습니다. 상등병하고도 6호봉쯤 되어서야 비로소 “이제는 안 죽겠지” 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무렵부터 내 입맛이 많이 바뀌었어요. 내 몸에 안 받는 김치나 동치미, 여기에 냉면 같은 먹을거리를 조금씩이나마 억지로 우겨넣을 수 있더군요. 그러나, 이런 먹을거리를 우겨넣으면 언제나 배앓이를 합니다. 몸에 안 받으니까요.


  나중에 스스로 배우며 알았지만, 한겨레가 김치를 먹은 지 그래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한겨레가 김치에 고춧가루 널리 쓴 지는 백 해가 채 안 되었습니다. 임금님 수라상에는 고춧가루를 함부로 쓰지 않았다고도 하며, 고춧가루에 앞서 산초가루를 썼다더군요. 그나마 산초가루를 쓴 지도 몇 백 해가 안 되었습니다.


  곧, 한겨레 몸에 김치가 꼭 어울리거나 알맞다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같은 시뻘건 김치를 아이들한테 먹이는 일이 ‘아이를 한겨레답게 키우는 일’이라 할 수 없는 셈입니다. 절인 배추도, 삭힌 국물도, 고춧가루도,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한겨레 먹을거리가 아닐 뿐더러, 모든 사람한테 어울릴 수는 없으니까요.

 

 


- “아, 괜찮아. 학생식당에서 먹으니까.” “신세도 지고 있고, 이제부터 (도시락) 만들 테니까.” (14쪽)
-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나게 됐다. 뭐, 조사를 할 때는 더 일렀으니까. 매일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어떻게든 3개월 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락을 만든다.’ (100쪽)


  나는 쑥도 마늘도 좋아합니다. 이 나물도 저 나물도 좋아합니다. 강원도 양구 깊은 멧골짝에서 군대살이를 하며 내 입맛 하나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나는 절인 푸성귀를 먹을 수 없는 몸이지만, 날푸성귀는 꽤 잘 먹을 수 있는 몸입니다. 무치거나 데친 나물은 매우 잘 먹을 수 있는 몸입니다.


  한겨레 옛삶을 스스로 천천히 익히면서 생각합니다. 한겨레 멀디먼 이야기에 ‘쑥 마늘 먹는 곰이랑 범’ 삶이 나와요. 자그마치 사천 해가 넘는 옛이야기인데, 이 옛이야기에 쑥이랑 마늘이 나옵니다. 자그마치 사천 해라 하더라도, 쑥이나 마늘이 몸에 안 받을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요. 어떤 이는 임진해 전쟁 때에 일본에서 건너온 이 피를 이어받았을 수 있고, 어떤 이는 몽골 군대 피를 이어받았을 수 있으며, 어떤 이는 중국사람 피를 이어받았을 수 있어요. 다 다른 피요 다 다른 삶이며 다 다른 몸과 다 다른 밥입니다.


  밥을 생각하며 삶을 생각합니다. 삶을 생각하다가 뿌리를 생각합니다. 먼먼 뿌리와 앞으로 이어갈 뿌리를 생각합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무를 언제부터 먹었을까요. 오이와 박은 언제부터 먹었을까요. ‘박’과 다른 ‘호박’은 언제 들어와서 먹었고, ‘물박’이라 할 ‘수박’은 또 언제 들어와서 먹었을까요.


  이런 열매 저런 푸성귀가 꼭 이 나라 사람들 몸에 잘 들어맞거나 어울린다고 여겨도 될까요. 섣불리 이런 열매 저런 푸성귀를 아이들하고 함께 먹어도 될까요.

 

 


- ‘갑자기 생각났다. 미야 누나가 도시락을 만들어 주던 시절. 하나하나에 여러 가지 마음이 담겨 있었겠지. 그런데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먹기만 했었지. 아마도 미야 누나는 쓸쓸하지 않았을까.’ (21∼22쪽)
- ‘도시락 만들기는 신기한 시간이다. 지금 먹지 않을 식사를 만든다.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먹을지 생각하게 된다. 아주 조금 미래를 대비하는 작업인 것이다.’ (102쪽)


  나는 밥을 먹습니다. 나는 영양이나 균형을 먹지 않습니다. 밥을 먹으며 영양을 골고루 살펴야 합니다만, 영양이나 균형을 따지며 내 몸에 밥을 넣을 마음은 없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골고루 슬기롭게 즐기고 싶은 생각입니다. 외곬로 치우치는 밥이 아니라, 내 몸을 사랑하고 내 몸이 깃들이는 땅을 사랑하며 나와 함께 살아갈 살붙이를 사랑할 만한 밥을 헤아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학교급식과 군대배식은 참으로 무섭고 두려우며 끔찍하다고 느낍니다.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과 다 다른 몸을 하나도 헤아리지 않거든요. 모든 사람을 똑같은 틀에 맞추어 똑같은 생각을 하도록 내몰거든요.


  더군다나, 학교급식이든 군대배식이든 날푸성귀를 즐기거나 멧나물 들나물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지 않습니다. 채식이냐 육식이냐가 아니라, 저마다 다른 삶에 맞추어 저마다 다른 몸과 마음을 살피는 밥차림이 아닌 줄 교육자도 학부모도 영양사도 조리사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우리 집처럼 당근이랑 풀을 짜서 풀물(녹즙)을 마실 수 있습니다. 누런쌀을 날로 씹어먹거나 물에 불려 지은 다음 천천히 조금씩 씹어먹을 수 있습니다. 곡식가루를 소금 조금 섞어 야금야금 씹어먹을 수 있습니다. 급식이든 도시락이든 반드시 ‘쌀밥 김치’가 들어가야 할 까닭이 없어요. 쌀이라 하더라도 흰쌀을 써야 하지 않아요. 누런쌀을 쓸 때에도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쓴 누런쌀을 써야 하지 않아요. 누런쌀로 밥을 지을 때에 다시마나 여러 곡식과 견과류를 함께 넣으며 지을 수 있어요.

 

 


- “일부러 웃는 거구나. 편해지니까. 나는 안 돼. 그런 건 잘 못해. 대단하다. 대단해. 열심히 해.” (112∼113쪽)
- “쿠루리,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조금 멀어도 괜찮은데.” “우리 집.” (161쪽)


  야나하라 노조미 님 만화책 《다카스기가의 도시락》(AK커뮤니케이션즈,2011) 첫째 권을 읽습니다. 아버지 없이 살다가 어머니마저 잃은 아이가 두 어버이를 일찌감치 잃은 사촌 오빠와 함께 살아가는 줄거리를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이 줄거리를 이루는 뼈대는 오직 하나 ‘도시락’입니다. 만화책 줄거리를 이루는 뼈대인 도시락을 버티는 밑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촌 오빠도, 사촌 동생도, 어릴 적부터 이녁 어버이나 살붙이한테서 ‘사랑 듬뿍 담긴 도시락’을 받으며 하루 끼니를 누렸습니다. 얼렁뚱땅 차린 도시락이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꾸린 도시락이 아닙니다. 영양이나 균형하고는 좀 동떨어지기도 한 도시락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 저런 것 없어도 언제나 한 가지는 늘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반찬은 고작 한 가지, 영양도 균형도 형편없다지만, 사랑 하나 담긴 도시락이기에 아주 맛나고 즐겁게 누립니다. 어쩌면 부피가 적어 도시락을 먹어도 배가 고플는지 모르나, 무엇보다 사랑을 받아먹기 때문에 날마다 즐겁게 기운을 내고 기쁘게 웃습니다.


  학교에서 급식을 하며 아이들이 활짝 웃는다든지 인솔교사나 영양사나 조리사가 활짝 웃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군대에서 배식을 하며 취사병이나 군인들이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꽃 피우는 밥자리가 이루어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시락을 싸더라도 사랑을 담지 못한다면 덧없습니다. 학교급식이나 군대배식이라 하더라도 사랑을 담는다면 반갑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이란, 사랑을 먹는 밥일 때에 흐뭇합니다. 날마다 맞이하는 새 아침이란, 사랑을 꽃피우는 밝은 빛줄기입니다. (4345.5.12.흙.ㅎㄲㅅㄱ)

 


― 다카스기가의 도시락 1 (야나하라 노조미 글·그림,채다인 옮김,AK커뮤니케이션즈 펴냄,2011.5.30./5000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잘라 2012-05-12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김치를.. 절인 야채는 못드시는 모양이네요. 안타까움! 저는 김치없인 못살아요. 하루나 이틀, 사흘까지는 어쩌다보면 김치 안 먹고도 살지만 그 이상되면 막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래서 어딜 가나 꼭 김치를 확보하는 버릇이.. ㅋㅋ

맞습니다! 도시락을 싸도 사랑이 없으면 덧없습니다!!!

숲노래 2012-05-13 08:41   좋아요 0 | URL
저는 하나도 안타깝지 않아요.
날푸성귀면 훨씬 좋거든요.
푸른 잎 날배추가 한결 맛있어요 ^^

아무튼, 어디에서든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좋구나 싶어요~

재는재로 2012-05-12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락이라 학교 다닐때 꼭 도시락 반찬 뺏어 먹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늘 반찬은 햄이나 소시지 위주의 반찬이라 김치는 많이 먹은 적이 없는데 군대리아 버거 하고 신병교육대 반찬부실한것만 기억에 남내요 조류 독감 유행시 맨날 닭고기만 반찬에 올라와서 ㅜㅜ

숲노래 2012-05-13 08:42   좋아요 0 | URL
제 도시락에는 뺏을 반찬이 없으니
아무도 못 뺏었어요 ㅋㅋ

저도 군대에서 닭을 너무 많이 먹어
아주 질렸답니다.

군단 사단 연대 대대... 이놈들이
소고기 돼지고기를 몽땅 빼돌리고
최전방 말단 중대에는 닭고기하고 호주산 붉은 물고기만
잔뜩 안겨 주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