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이 아이들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두 아이들은 아버지가 재워야 새근새근 잘 잔다. 아이 어머니가 몸이며 마음이며 많이 힘들어 아이들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거나 살가이 안아 주지 못한 탓이기도 할 테지만, 내가 조금 더 아이들을 찬찬히 마주하거나 살가이 안으며 재우고 놀고 하면서 시나브로 달라진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하루를 온통 아이들하고 한결 따사로이 지내는 매무새가 되지는 못한다.


  첫째 아이만 데리고 서재도서관으로 가서 책갈무리를 할라치면, 둘째 아이가 왜 저는 안 데려가느냐며 서럽게 운다. 둘째 아이더러, 너 얼른 서고 걸어야 함께 다니지, 하고 달래지만 부질없다. 둘째 아이가 마냥 기어다니느라 옷을 다 버리더라도 함께 다닐 노릇이다. 그래서 요새는 서재도서관 책갈무리를 하는 틈틈이 골마루 바닥을 바지런히 비질한다. 언제 둘째 아이를 서재도서관으로 데려와서 이 녀석이 마음껏 기더라도 손과 옷이 덜 지저분해지게 하자고 생각한다.


  새벽 한 시 반, 둘째 아이가 깨며 아버지한테 기어온다. 울먹울먹 하려 한다. 쉬를 누었나 보구나. 기저귀를 갈고 토닥토닥 하다가는 가슴에 엎드리게 해서 재운다. 첫째 아이는 지난 저녁, 아버지 옆에 누여 자장노래를 한 시간 즈음 부를 때에 십 분만에 잠들었다. 그 뒤로 쉬 마렵다 깨는 일조차 없이 달게 잔다.


  새벽 네 시, 둘째 아이가 다시금 깬다. 아이 어머니가 달래려 하지만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밤에는 젖을 안 물리려 하는 만큼 둘째 아이는 더 서럽다. 아이 아버지가 품에 안고 등을 토닥인다. 물을 조금 마시라 하려고 부엌으로 가는데 고개를 푹 박는다. 어, 이러면 물을 못 주는데. 조금 더 안고 토닥이다가 자리에 앉아 셈틀을 켜고 아이를 무릎에 누인다. 이렇게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무릎이 찌릿찌릿 저리지만, 둘째는 바닥에 누이기보다 이렇게 누울 때에 더 좋다며 보챈다. 내 무릎은 두 시간쯤 견딜 수 있을까, 아이는 판판한 바닥이 더 낫지 않을까, 날마다 이 생각 저 생각이지만, 아이는 제 어버이 무릎이나 가슴에서 잠들기를 훨씬 좋아한다고 느낀다.


  내 어버이가 나를 돌보던 손길을 헤아린다. 내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들, 또 이 어버이들을 낳은 어버이들, 자꾸자꾸 거슬러 올라가며, 이 지구별 뭇사람들이 낳고 또 낳으며 돌보고 또 돌본 따사로운 사랑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며 꽃을 피우다가 어여쁘게 맑은 기운 뿜는가를 생각한다. (4345.5.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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