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세탁소
모이치 구미코 지음, 나카무라 에쓰코 그림, 육은숙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맑은 숲을 마주하셔요
 [어린이책 읽는 삶 20] 모이치 구미코, 《숲 속 세탁소》(크레용하우스,2005)

 


- 책이름 : 숲 속 세탁소
- 글 : 모이치 구미코
- 그림 : 나카무라 에쓰코
- 옮긴이 : 육은숙
- 펴낸곳 : 크레용하우스 (2005.7.20.)
- 책값 : 7500원

 


  감나무마다 새잎이 푸르게 돋습니다. 감나무에 새잎이 처음 돋았을 때에는 몇 닢 살며시 톡 따서 입에 넣고 냠냠 씹었습니다. 감나무마다 새로 맞이한 봄에 즐겁고 씩씩하게 틔운 잎사귀마다 서린 향긋한 기운을 보들보들한 감잎으로 느꼈습니다. 이제 감나무 새잎은 꼴을 제대로 갖추며 차츰 커집니다. 머잖아 조그마한 별처럼 감꽃을 피울 테고, 감꽃이 바람 따라 하나둘 질 무렵 조그마한 감알이 푸른 빛깔로 맺히겠지요. 푸른 빛깔로 맺히는 조그마한 감알은 차츰 굵어지고, 차츰 굵어지다가 또 바람에 하나둘 떨어지다가는 알맞다 싶은 숫자를 남기고 찬찬히 발갛게 익겠지요.


  모든 몽우리가 꽃으로 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꽃이 열매로 맺히지 않습니다. 어느 몽우리는 바람에 그만 떨어집니다. 어느 몽우리는 사람이나 멧새 손길을 타며 그만 떨어집니다. 어느 몽우리는 짓궂은 사람이 가지를 꺾는다든지, 또는 땔감 찾는 사람이 가지를 자르며 그만 몽우리로 끝나기도 해요.


  마루에 앉아 바깥을 바라봅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들길을 거닐며 두리번두리번 살펴봅니다. 들새이든 멧새이든 아주 가볍에 나뭇가지에 앉습니다. 몸집 커다란 해오라기나 왜가리도 아주 가벼이 나뭇가지에 앉습니다. 참 가느다랗다 싶은 나뭇가지이건만, 새들은 나뭇가지에 사뿐히 앉습니다. 새들이 앉을라치면 나뭇가지는 살짝 흔들리다가 이내 흔들림이 멎습니다. 여러 마리가 나란히 앉아도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일을 볼 수 없습니다.

 


.. 시커먼 먹구름이 사라지고, 하얀 양떼구름이 하늘 높이 피어 올랐어요. 오소리 아저씨는 오랜만에 세탁소 문을 닫고, 단풍딸기를 따러 가기로 했어요 ..  (6쪽)


  오늘날 여느 사람들이 들새나 멧새가 퍼덕퍼덕 살아서 날갯짓할 때에 손에 살그마니 쥘 일은 드물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여느 도시에서는 들새나 멧새를 마주하기 힘드니까요. 내가 마음을 열고 두 팔을 활짝 하늘로 뻗치며 가만히 선다면, 새들 몇 마리가 내 손이나 어깨나 머리에 살짝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오르리라 느끼는데, 누구라도 새를 손바닥에 앉히고 보면, 새 한 마리 무게가 아주 가벼운 줄 깨달으리라 봅니다. 제법 큰 새라 할 만하다 싶은 직박구리라든지 까치라든지 까마귀라든지 무게가 많이 나가리라 여길는지 모르나, 막상 이 새들을 안아 보셔요. 하나도 무겁지 않습니다. 얼마나 작고 얼마나 가벼우며 얼마나 보드라운지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나뭇가지 하나도 참으로 작고 참으로 가벼우며 참으로 보드랍습니다. 작은 나뭇가지가 모여 조금 굵직한 나뭇가지가 되고, 조금 굵직한 나뭇가지가 모여 제법 굵은 나뭇가지가 되며, 제법 굵은 나뭇가지가 모여 우람한 줄기가 됩니다. 우람한 줄기가 튼튼히 뿌리내려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로 섭니다.


  이 지구별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사람들도 더없이 작은 사람이요, 더없이 작은 사람이 깃든 지구별 또한 더없이 작은 별 하나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 “정말 고맙다. 하지만 우리 세탁소 빨래가 아니구나.” 오소리 아저씨는 하얀 것 가까이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어요. “정말 우리 세탁소에서 쓰는 쥐엄나무 열매를 우린 물처럼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구나. 그런데 이거 아주 좋은 털실로 만들었는데.” 그것은 오소리 아저씨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하얀 털실로 만든 것이었어요.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며 보들보들하고 가벼웠지요 ..  (9쪽)


  숲을 마주합니다. 풀로 이룬 풀숲을 마주합니다. 풀숲에는 사람보다 조그마한 목숨이 수없이 얼크러집니다. 사람들이 풀숲에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디디면, 아주 조그마한 목숨은 그예 밟혀 죽고 깔려 죽습니다. 사람들이 풀숲을 따사로이 보듬거나 건사하면, 아주 조그마한 풀숲은 곱게 살아숨쉬다가는 고운 노래소리 들려줍니다. 바람에 일렁이는 풀잎이 서걱거리는 노래소리, 풀숲에 보금자리 마련한 벌레들 노래소리, 꽃잎이 피고 지며 내는 잔잔한 노래소리 들이 골고루 얼크러집니다.


  숲을 바라봅니다. 나무로 이룬 나무숲을 바라봅니다. 나무숲에는 사람보다 커다란 목숨이 수없이 어우러집니다. 사람들이 나무숲에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디디면, 나무마다 애써 떨군 작은 씨앗이 틔운 여린 새싹이 몽땅 짓밟혀 죽고 짓이겨져 죽습니다. 사람들이 나무숲을 너그러이 보살피거나 돌보면, 아주 커다란 나무숲은 해맑게 살아숨쉬다가는 해맑은 빛깔을 베풉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나뭇잎 빛깔, 나무에 둥지 마련한 새들이 날갯짓하며 펼치는 빛깔, 햇살이 드리우며 알록달록 이루는 푸른 그림자 빛깔 들이 아리땁게 어우러집니다.


  숲이 있어 사람이 있습니다. 숲이 있어 벌레가 있습니다. 숲이 있어 짐승이 있습니다. 숲이 있어 지구별이 숨을 쉬고, 숲이 있어 모든 목숨이 먹이를 얻습니다.

 


.. “이게 내 것이 되면 아주 멋지게 쓸 텐데.” “아니, 곰 할아버지도요? 멋지게 쓰다니, 어떻게요?” 곰 할아버지는 멋쩍은 듯이 대답했어요. “찻주전자 덮개로 말일세.” “찻주전자 덮개요!” “그래. 아주 오래 전부터 찻주전자 덮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  (20쪽)


  숲바람이 마을을 감쌉니다. 흙땅에 나즈막하게 앉은 작은 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숲바람을 포근히 맞아들입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새들이 작은 마을을 휘휘 돌며 나들이합니다. 숲에서 씨앗을 맺는 나무들이 작은 마을마다 푸른 빛 이야기를 휘휘 흩뿌리며 노래합니다.


  숲바람이 고속도로를 탑니다. 숲바람이 기찻길을 탑니다. 숲바람이 공장 굴뚝을 맴돕니다. 숲바람이 수많은 아파트 사이사이 돌고 돕니다.


  숲바람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따사로우며 포근하고 시원하면서 향긋하고 싶습니다. 숲바람은 누구한테나 넉넉하며 너그럽고 느긋하면서 한갓지고 싶습니다. 숲바람은 사람들 가슴마다 푸른 빛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불며 천천히 천천히 서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 아이가 재빨리 물었어요. “그런데요?” “우리한테 주면 좋겠는데…….” 오소리 아저씨는 아이에게 날다람쥐와 토끼와 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자 아이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어요. “가방에, 호른 주머니에, 찻주전자 덮개로 쓴다고요? 좋아요. 모두 다 소중히 쓸 것 같으니 드릴게요.” ..  (29쪽)


  모이치 구미코 님 글에 나카무라 에쓰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어린이책 《숲 속 세탁소》(크레용하우스,2005)를 읽습니다. 잔잔히 물결치는 고즈넉한 줄거리가 빛나는 《숲 속 세탁소》는 숲에서 빨래하며 살아가는 ‘오소리 아저씨’ 삶을 한 자락 보여줍니다. ‘세탁소’라는 이름을 붙여 사람들이 이룬 도시에서 으레 보는 가게를 떠올릴까 싶기도 하지만, 숲에 깃든 오소리 아저씨네 집은 기계를 쓰지 않습니다. 오소리 아저씨는 ‘손으로 빨래’합니다. 이야기 흐름으로 보자면, “숲 속 빨래집”쯤으로 적을 때에 한결 잘 어울립니다. 쥐엄나무 열매 우린 물에 빨래를 담그고는 두 손으로 복복 비벼서 빨래를 해요. 숲에서 얻은 비누와 물로 빨래를 하고, 빨래를 마친 물은 숲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숲은 언제나 고요하고 숲은 늘 정갈하며 숲은 노상 빛납니다.

 


.. “굉장히 좋은 털실로 만든 장갑으로 별을 닦는구나!” “이거, 하늘의 양털로 만든 거예요.” “하늘의 양털?” 오소리 아저씨는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아이는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어요. “저는 요즘 바람의 아이가 하는 일을 배우고 있어요.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서 별을 닦았어요.” “바람의 아이가 하는 일?” “네. 풍차의 날개를 돌리기도 하고, 양치기 할아버지의 등을 밀어 주기도 해요 …… 모든 별을 다 닦는 건 아니에요. 큰 도시 위에서 더러워진 별만 닦아요.” ..  (32∼37쪽)


  나는 내 옷가지와 옆지기 옷가지와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먼지나 때가 묻은 옷가지를 빨래한다 할 텐데, 내가 하는 빨래는 내 살붙이들 삶을 얼마나 싱그러우며 아름다이 어루만지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깨끗하게 빨래할 무언가는 옷가지 하나만이 아닙니다. 나는 내 마음과 살붙이들 마음도 빨래합니다. 가장 좋은 꿈과 사랑을 실어 가장 좋은 넋과 얼이 되도록 마음빨래를 합니다. 마음을 갈고닦습니다. 마음을 쓰다듬습니다. 마음을 추스릅니다. 마음을 다스립니다.


  내 마음이 늘 정갈하다면, 나로서는 굳이 내 마음을 갈고닦지 않아도 될는지 모릅니다. 《숲 속 세탁소》에 나오는 ‘바람 아이’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도시에서 더러워진 별 닦기’라 하듯, 시골에서 ‘더러워지지 않은 별’이라면 굳이 때를 닦지 않을 테니까요. 나 스스로 내 삶을 정갈히 건사해서 내 마음이 언제나 정갈하다면, 나는 굳이 내 마음을 갈고닦지 않아도 즐거워요. 이때에는 언제나 내 삶을 예쁘게 누리며 기쁘게 빛내고 살갑게 나눌 수 있으면 넉넉해요.


  새벽 두 시 반, 멧새들 노래소리를 듣습니다. 문득 우리 집 처마 제비집에서 나는 노래소리도 듣습니다. 새벽 두 시 반에 제비들이 왜 지저귀지? 어느덧 새끼가 알에서 깨어났나?


  두 아이는 달콤하게 색색 잡니다. 고단하게 뛰놀던 첫째 아이는 이리저리 뒹굴며 자고, 씩씩하게 기던 둘째 아이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잡니다. 이 아이들 몸과 마음을, 또 나와 옆지기 몸과 마음을, 저마다 맑으며 밝게 아낄 수 있는 사랑을 생각합니다. 우리 집 마당 한켠 산초나무마다 푸른 빛깔 작은 몽우리가 몽실몽실합니다. 산초나무 꽃송이를 기다리며 새벽을 누립니다. (4345.5.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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