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집

 


  뒤꼍 땅뙈기를 밭으로 일구려고 틈틈이 삽과 쟁기로 파헤치곤 했다. 때때로 아주 커다란 돌덩이를 캐기도 한다. 이때에는 낑낑거리며 들어내고는 나중에 돌울을 쌓으려고 아무렇게나 던져 두곤 했다. 다른 일로 바쁘다가, 내팽개쳐진 돌덩이를 두어 달만에 들어서 돌울을 쌓던 엊그제, 커다란 돌덩이 밑에서 바글거리는 개미떼를 본다. 이 돌덩이 밑에도 개미집, 저 돌덩이 밑에도 개미집. 작은 돌 밑에도 개미집 있고, 조금 큰 돌 밑에도 개미집 있다.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개미집 구멍은 아주 작다. 문득 궁금해서 삽으로 쿡 찍어 ‘개미집 자른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그만둔다. 돌울을 쌓으며 물골을 내려고 하는데, 물골 자리에 있던 돌 밑마다 개미집이 어김없이 있다.


  개미들은 무척 커다란 벌레를 여럿이 들어 옮긴다고는 하나 ‘사람한테는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라 하더라도 여럿 아닌 수백이나 수천이 모여도 들어 옮기지 못한다. 모래로 이룬 언덕이라면 한 알씩 들어 날라 옮긴다 하지만, 한 덩어리 돌덩이나 바위라면 개미가 옮길 재주가 없으리라. 50층 높이쯤 되는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덩이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런 바위덩이를 수백 수천 수만 사람이 모인들 한꺼번에 짊어지고 옮길 수 있을까.


  네 식구 먹고살자며 밭을 일구고 물골을 낸다. 생각해 보니, 그토록 비가 퍼부었어도 이 돌덩이 밑에 있던 개미집에는 빗물이 스미지 않았으리라 느낀다. 그러면 개미들은 어디로 드나들었을까. 비가 올 적에는 빗물이 스미지 않도록 돌덩이 밑을 흙으로 꽁꽁 틀어막았을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돌을 집어 나른다. 한쪽에 돌울을 쌓는다. 개미들은 집뚜껑을 하루아침에 잃는다. 이른바 ‘미리 알리기’조차 없이 하루아침에 빼앗긴다. 수만이나 수십만에 이르는 개미들이 집을 잃는다. 수만이나 수십만에 이르는 개미들은 하루아침에 새 집을 찾아야 하고 새 보금자리를 지어야 한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이 쓴 《초원의 집》 둘째 권 끝자락 이야기가 떠오른다. 너른 들판에 한 해 꼬박 걸려 알뜰히 짓고 밭까지 일구어 놓은 살림집을 이들 식구는 고스란히 내놓고 새 터로 떠나야 한다. 미국 정부에서 토박이들하고 협정을 맺어 ‘인디언 보호지구’를 마련하면서, 로라네 식구는 집을 하루아침에 잃어야 했단다. 로라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 해 동안 흘린 땀을 서운히 여기지 않는다. 거꾸로 보면, 북중미 토박이는 흰둥이한테 하루아침에 삶터와 일터와 꿈터를 몽땅 빼앗기지 않았는가.


  우리 시골마을조차 ‘4대강 사업’ 끄트머리 가운데 하나인 ‘시골 실개천 시멘트 처바르기’를 한다. 시골마을 논물이 흐르는 냇물 도랑을 뭐 하러 시멘트 들이부으며 ‘관광지 서울 청계천’ 비슷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이루 셀 수 없도록 커다란 돈을 들여 온 나라 물길을 시멘트로 처바른다. 냇물에서 살던 물고기 보금자리가 어떻게 되는지 걱정하지 않는다. 냇물이 보금자리였을 숱한 목숨들 삶과 사랑을 생각하지 않는다. 들새와 물새를 생각하지 않는 건설업이요 경제이며 정치이다. 지율 스님은 도룡뇽 한 마리 때문에 천성산에 뚫으려는 굴을 막으려 했다지만, 도룡뇽 한 마리 때문에 고속철도를 안 놓아야 마땅하다. 도룡뇽 한 마리로 대표하는 뭇목숨을 아끼고 사랑하자면 고속철도는 없어도 된다. 고속도로도, 공항도, 전철도, 학교도, 아파트도, 공장도, 골프장도, 핵발전소도, 화력발전소도, 도룡뇽 한 마리를 비롯해 뭇목숨을 살리고 아끼자면 구태여 안 지어도 된다.


  이틀쯤 지나 개미집 자리를 들여다본다. 개미 한 마리 안 보인다. 모두 잘 옮겼을까. 모두 새 터에 즐겁게 또아리를 틀었을까. 개미들아, 물골은 이곳에만 하나 낼게. 새 물골은 내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 주렴. (4345.4.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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