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하야후루 2
스에츠구 유키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을 배우는 꽃피는 삶
 [만화책 즐겨읽기 147] 스에츠구 유키, 《치하야후루 (2)》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으레 묻는 말 두 가지는 ‘왜 여기로 왔느냐’ 하고 ‘무슨 연고가 있느냐’입니다. 첫째, 왜 모두들 시골 떠나 도시로 가고 싶어 안달인데, 도시에서 시골로 오는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둘째, 시골 가운데 깊디깊어 도시바라기를 하는 마당에 이곳까지 온 까닭은 둘레에 아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어림합니다.


  나는 사람들 물음에 아주 짤막히 대꾸합니다. “좋아서요.”, “아는 사람 없어요.”


  오늘 우리 식구한테 좋은 시골이면서, 앞으로도 우리 식구한테 아름다운 시골이 되리라 느꼈기에 외진 두메시골이라 할 곳에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아는 줄’을 꿰지 않고 ‘스스로 잘 살’고 싶어 둥지를 마련했습니다.


- “좀더 우리 셋이서, 카루타를 하고 싶었는데. 끝내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해.” “왜 우노? 우리 이만치 안 재미있었나.” (18∼19쪽)
- “카, 카루타를 같이 해 줘서 고맙다. 치하야도, 타이치도. 하지만도, 인자 영영 못 만나것제?” (33쪽)

 

 


  돌이키면, 내가 내 고향 인천에서 살던 때에도 둘레에서 흔히 묻곤 했습니다. ‘아니, 서울에 안 있고 왜 인천에 있느냐’ 하고. 처음에는 “고향이거든요.” 하고 대꾸했지만, 나중에는 “조용하고 예쁜 골목이 좋아서요.” 하고 대꾸합니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기도 하지만, 내가 나고 자랐던 인천 골목동네가 조용하고 예쁘니 좋다고 말하면, 어느 누구도 더 토를 달지 못했어요. 어쩌면, 참 싱거운 녀석이네 하고 여겼을는지 모르고, 참 주제넘거나 철없는 놈이네 하고 여겼을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저러다 바닥을 쳐야 비로소 뭔가 알겠지 하고 여겼을는지 모르지요.


  나는 전라남도 고흥 두메시골에 마련한 보금자리가 참 좋습니다. 조용하고 사랑스러우며 아늑합니다. 아직 우리 논밭이 없습니다만, 참 좋습니다. 앞으로 우리 논밭이 천천히 찾아오리라 생각하며 좋습니다.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을 누리니 좋습니다. 상큼한 바람과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들풀을 누리니 좋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노래하며 뒹굴 수 있어 좋습니다. 아이들과 신나게 거닐거나 뒹굴 수 있어 좋습니다.


  다시금 생각하면, ‘아무 연고 없이’ 이곳으로 왔다는 우리 삶이란, ‘사람을 보고’ 이곳으로 오지 않은 삶이란 뜻입니다. 아는 사람한테 기대어 어떤 벌이나 일자리를 거머쥐겠다는 삶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늘 마주할 좋은 자연과 꿈과 사랑을 생각하며 느끼려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 “어쩌면 아라타도, 카루타보다 소중한 것이 생긴 게 아닐까?” (55쪽)
- “청춘을 다 바쳐도 강해질 수 없다고? 그런 푸념은 일단 바치기나 하고 하거라.” (66쪽)
- ‘아라타, 가끔 만나서 카루타를 하자. 신이 아니라, 친구로 지내고 싶어.’(148쪽)

 

 


  스에츠구 유키 님 만화책 《치하야후루》(학산문화사,2010) 둘째 권을 읽으며 더 생각합니다. 나한테도 옆지기한테도 아이들한테도 좋은 삶이 좋습니다. 참말 좋은 삶이 좋습니다. 돈이 넉넉한 삶은 돈이 넉넉한 삶일 테지요. 돈이 넉넉하면서 좋은 삶도 있을 테지만, 우리 식구는 그저 좋은 삶을 생각하고 꿈꿉니다.


  그예 아름다운 나날과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언제나 포근한 꿈과 빛나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내 흐트러진 몸을 다스리면서 내 어지러운 넋을 추스를 쉼터를 생각합니다. 내 거친 손길을 다독이면서 내 무딘 마음길을 어루만질 사랑터를 생각합니다. 내 모자란 말문을 차근차근 열고 내 어수룩한 말나래를 살풋살풋 쓰다듬을 놀이터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내 삶에서 나한테 가장 대수로운 한 가지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가장 사랑하면서 아낄 한 가지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우리 살붙이하고 가장 즐겁게 나누면서 빛낼 한 가지란 무엇일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 “난 카루타에서 제일 좋은 건, 카드를 25장씩 나눠서 펼치기 직전이야. 막 두근두근해서, 좋은 상상밖에 안 들거든.” (123쪽)
- “카루타를 좋아하고 매일매일 하다 보면, 어쩌다 카루타의 신이, 소리보다 한 발 먼저 와서 가르쳐 줄 때가 있다. 할아버지는 카루타를 그만치 좋아하니까네, 아라타한테 지지 않는기라.” (137쪽)

 

 


  아이를 품에 안습니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아버지는 첫째 아이를 품에 안으며 글을 썼습니다. 첫째 아이가 제법 자라 혼자 방방 뛰고 구르며 놀 이즈음에는 갓난쟁이 둘째를 품에 안으며 글을 씁니다.


  첫째 아이 자라는 동안 이 아이가 똥오줌을 가리기까지 몇 만 장에 이르는 기저귀를 빨았습니다. 둘째 아이 자라는 동안 이 아이가 똥오줌을 언제 가릴까 생각하면서 날마다 새로 기저귀를 빨고 개며 가다듬습니다.


  호미질 하는 아버지 곁에서 호미질 하는 아이입니다. 셈틀 앞에 앉는 아버지 곁에서 셈틀 앞에서 알짱대는 아이입니다. 자전거 타는 아버지 곁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아이입니다. 나긋나긋 들길 걷는 아버지 곁에서 나긋나긋 들길 걷는 아이입니다. 논둑 풀을 뜯어 먹는 아버지 곁에서 논둑 풀맛을 천천히 되새기는 아이입니다.


- ‘그때 내가 배운 것은 카루타가 아니야. 정열이야. 아라타의.’ (28쪽)
- ‘즐거워 보여. 즐거워 보인다, 치하야. 네가 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걸까? 너도, 우리하고 같이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걸까?’ (87∼88쪽)

 

 


  아이가 어버이 삶을 고스란히 바라보며 배웁니다. 그러나, 아이 때문에 내 삶을 알뜰히 다스리고픈 마음은 아니에요.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며 기쁘게 누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어버이나 어른이라는 이름에 앞서,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며 기쁘게 누릴 때에 내가 아름답게 꽃피우겠지요. 스스로 아름답게 꽃피우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저희 스스로 저희 깜냥껏 아름답게 꽃피울 길을 찾거나 생각하겠지요.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를 품에 안고 이런 일 저런 일 하노라면,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가 스칩니다. 나도 모르게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니, 내가 온갖 자질구레한 일에 이끌려 내 모습을 스스로 잊느라 돌이키지 못하던 내 어릴 적 모습을 되새깁니다. 내가 내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되새깁니다. 내가 내 어버이한테 나눈 사랑을 돌아봅니다. 내가 내 삶자리에서 누린 기쁨을 곱씹습니다. 내가 내 발걸음으로 꽃피운 꿈이나 내 손놀림으로 무너뜨린 꿈을 헤아립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내 가슴에 좋은 꿈이 싹트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때에는 내 가슴에 사랑스러운 빛이 감돌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일·놀이·삶을 누리면서 내 하루를 좋게 돌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어깨동무하면서 오늘도 어제도 모레도 글피도 한결같이 어여삐 누립니다.


- “물 속에 잠긴 단풍잎의 붉은색은, 헤어져 있어도 감출 수 없는 연모의 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면, 그 검은 잉크로 인쇄한 카루타 카드가, 곱디고운 단풍 빛깔로 보이지 않나요? 이제 아시겠어요? 제가 시를 즐기는 것과 경기 카루타는 전혀 다른.” “굉장해.” “네?” “굉장해 굉장해 굉장해 굉장해! 카나, 더 가르쳐 줘!” (178∼179쪽)
- “카나! 우리 선생님이 그러셨어. 카루타와 친해져서 친구가 되라고. 카나는 이미 100수 모두와 친구잖아? 정말 강할 거야.” (183쪽)

 


  마음을 배우는 꽃피는 삶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배웁니다. 나는 지식이나 정보를 배우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지식이나 정보를 쌓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거나 마음을 북돋웁니다.


  좋은 책 하나를 읽을 때에는 나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됩니다. 슬프거나 궂은 책 하나를 읽고 나면 내 마음까지 슬프거나 궂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나는 굳이 슬프거나 궂은 책을 찾아 읽고 싶지 않습니다. 누가 거저로 책을 선물한다 하더라도 나한테 슬프거나 궂다 싶은 책은 맞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내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나한테 가장 아름답거나 좋거나 사랑스러울 책을 읽고 싶습니다.


  곧, 내 삶 가운데 더없이 빛나며 즐거운 하루를 통틀어 아이들하고 복닥입니다. 내 삶 가운데 가없이 해맑고 기쁜 하루를 송두리째 바쳐 옆지기하고 부대낍니다.


  서로서로 가장 좋은 삶을 누려요. 서로서로 가장 예쁜 말을 나눠요. 배가 부르도록 밥을 먹는다지만, 배가 부르면 왜 좋을까요. 배가 부를 때에는 왜 흐뭇할까요. 배가 부를 때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삶을 더 즐거이 누릴 수 있기에 고맙지 않을까요. 가장 좋아하면서 가장 사랑하는 삶을 누릴 기운을 되찾고자 날마다 새롭게 밥을 먹고 밥거리를 살피며 밥상을 차리지 않을까요.


  나는 내 마음을 살찌우고 싶어 내 몸이 홀가분한 길을 걷도록 하루하루 일굽니다. 나는 내 마음을 북돋우고 싶어 내 몸이 튼튼하고 씩씩하도록 이모저모 땀흘립니다. (4345.4.28.흙.ㅎㄲㅅㄱ)

 


― 치하야후루 2 (스에츠구 유키 글·그림,서현아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0.1.2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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