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실 되감기
옆지기가 첫째 아이 긴양말을 뜨는데, 그만 첫 코에 떴어야 하는 바탕을 안 뜨고 지나치는 바람에 여러 날 애써 떴지만 다 풀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단다. 나라면 어떡했을까. 그냥 모르는 척 끝까지 뜰까? 꼭 해야 하는 첫뜨기를 안 하고 마무리까지 한다면 양말이 어떻게 되려나. 엉망이 되려나. 미운 양말이 되려나.
글을 쓰다가 어딘가 잘못 적은 대목이 있다면 제아무리 길게 쓴 글이라 하더라도 여러 차례 꼼꼼히 되읽으며 바로잡아야 한다. 어느 때에는 아예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써야 한다. 책을 냈는데 어느 한 곳 잘못 찍힌 데가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고치거나 손질해야 한다. 아니,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헤아려 보자. 모종을 거꾸로 심을 수 있을까. 어린나무로 키워 옮겨심기를 하는데 뒤집어 심어도 될까. 싹이 안 튼 감자를 씨감자로 삼을 수 있을까. 물고기 비늘을 안 벗기고 먹을 수 있을까.
가야 할 길을 잘못 접어들었다면, 모로 가도 닿는다며 그냥 가도 될까. 잘못 접어든 줄 깨달았으면 제아무리 멀리 걸어왔어도 여태 걸어온 길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도로 걸어가서 제대로 가야 한다. 아이 양말 한 짝을 뜨던 일이면, 어쩌는 수 없이 모두 끌러 처음부터 다시 떠야 할 테지. 차근차근 짚으며 뜨고, 한 코 두 코 살뜰히 헤아리며 뜰 노릇이다. 천천히 짚으며 읽고, 한 줄 두 줄 올바로 생각하며 읽을 노릇이다.
그나저나, 되감는 실빛이 곱고, 되감는 심부름하는 아이 손빛이 예쁘다. 옆지기 몰래 슬쩍 웃는다. (4345.4.27.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