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밭 어린이
마을 어르신이 지난가을 논에 유채씨를 뿌렸다. 겨울을 난 봄 들판에 유채꽃이 가득 피어난다. 군청에서는 논에 유채씨를 뿌리면 무슨무슨 도움돈을 준다고 한다. 마을 어르신들 모여 얘기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듣고는 제주섬 곳곳이 유채밭이 되는 까닭을 깨닫는다. 다 정부에서 돈을 주어 논에다가 유채씨를 뿌려 ‘보기 좋게’ 꾸미는 셈이다. 이른바, 쌀농사 줄이도록 하는 일인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그나마 쌀을 ‘스스로 거두어 먹는다(자급)’ 하지만, 막상 쌀을 스스로 거두어 먹지는 못한다. 도시에 있는 여느 밥집에서는 ‘비싼’ 한국쌀을 안 쓰고 ‘값싼’ 수입쌀을 쓰니까. 따지고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쌀자급율마저 100%를 못 채우지만, ‘쌀 수입 자유화’를 1993년이던가부터 문민을 말하던 정부가 소매 걷고 나서서 이루었으니(더 따지면, 이런 정책이 없었어도 값싼 미국쌀을 억지로 많이 사들여야 하는 정부였다) 도시사람 스스로 못 느끼거나 안 느낄 뿐, 한국땅에서는 시골 논을 되도록 더 놀리거나 비워야 한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우리 식구들은 유채밭을 이룬 논 옆을 걷는다. 유채꽃은 저희 마음대로 꽃을 피우고, 저희 마음대로 씨를 퍼뜨린다. 마을 곳곳에 봄맞이 유채꽃이 핀다. 옆지기는 논둑이나 길가나 마당에서 마음껏 자라나는 유채를 뜯어 날로 씹어먹는다. 유채잎도 유채꽃도 잘근잘근 씹어먹으면 맛나다. 유채나 갓은 생김새가 많이 비슷하지만 똑부러지게 다른 대목이 있기도 한데, 이들 줄기는 겉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씹어먹을 수 있다. 둘째를 수레에 태워 끄느라 손을 못 쓰는 나한테 옆지기가 속살을 한두 줄기 벗겨 내민다. 천천히 씹으며 맛과 내음을 느낀다. 어쩌면 껌 씹듯 확 하고 올라오는 느낌일는지 모른다. 문득, 먼먼 옛날 시골 아이들이 껌을 몰랐을 때에, 유채 속줄기나 갓 속줄기를 껌처럼 삼아 잘근잘근 씹어먹으며 배를 채웠겠다고 생각한다. 옆지기와 내가 시골에서 나고 자랐으면 어릴 적부터 이런 풀을 신나게 뜯어서 먹었겠지.
어쨌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시골 유채밭을 즐긴다. 꽃을 보고 꽃을 먹는다. 푸르디푸른 풀을 보고 푸르디푸른 풀을 먹는다. 유채밭 곁에 선 어린이는 온몸으로 유채 내음과 빛깔을 받아먹는다. (4345.4.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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