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 분도그림우화 22
에드몽드 세샹 지음, 이미림 옮김 / 분도출판사 / 1984년 8월
평점 :
품절


누가 내 사진을 찍을까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5 : 에드몽드 세샹, 《강남콩》(분도출판사,1984)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어른이 어린이와 푸름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학교 어린이나 푸름이가 학교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을 사진으로 찍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이든 중학교이든 고등학교이든, 또 대학교이든 대안학교이든 어느 학교에서든 학교 선생님이나 어른이 학생인 어린이나 푸름이를 사진으로 찍을 뿐입니다.


  거의 언제나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찍습니다. 거의 늘 한쪽이 다른 한쪽을 가르칩니다. 거의 노상 한쪽이 다른 한쪽을 살펴봅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어른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떤 이야기를 엮고 싶을까요. 사진기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은 어떠한 꿈과 사랑을 사진 한 장에 싣고 싶을까요.


  글을 쓰는 어른은, 그림을 그리는 어른은, 노래를 부르는 어른은, 밥을 짓는 어른은, 아이들 입는 옷을 만드는 어른은, 저마다 어떠한 꿈을 꾸고 어떠한 사랑을 담을까요.


  아이들이 먹는 과자를 만드는 공장 일꾼인 어른은 이 과자를 먹을 아이들이 어떠한 먹을거리를 아끼면서 어떠한 삶을 사랑하기를 바랄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세우고 교과서를 마련하는 어른은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 동안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일놀이를 누리는 슬기로운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거나 꾀할까 궁금합니다.


  사진으로 일구는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아이들 웃는 얼굴을 사진으로 담는다면, 이 웃음 어린 사진 하나는 어떤 이야기를 빚을까요. 아이들 슬픈 얼굴을 사진으로 옮긴다면, 이 눈물 서린 사진 하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조그마한 사진책 《강남콩》(분도출판사,1984)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진책 《강남콩》은 에드몽드 세샹 님이 ‘연출해서 엮은’ 이야기입니다. 햇볕 한 줌 제대로 들지 않는 작고 가난한 살림을 마지막으로 꾸리는 할머니가 강낭콩 씨앗 하나를 심어 돌보며 누리는 사랑을 찬찬히 보여주는 사진 이야기입니다. 강낭콩이든 배추이든 상추이든, 작은 꽃그릇에 씨앗 하나 심어 돌보는 사람은 퍽 많습니다. 어디에서나 어렵잖이 마주할 만한 모습입니다. 따로 ‘연출해서 엮지’ 않아도 얼마든지 얻을 만한 이야기입니다. 사진쟁이 스스로 콩씨 하나 심으며 날마다 들여다보면, 또, 사진쟁이 스스로 가난한 골목집 할머니와 사귀거나 함께 지내면서 날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더없이 살가우며 참으로 포근한 사진책 하나 태어날 만하리라 느껴요.


  사진책 《강남콩》은 연출해서 엮은 사진이기 때문에 어떤 줄거리 하나 산뜻하게 보여줍니다. 사진책 《강남콩》은 연출해서 엮은 사진인 탓에 할머니가 콩씨 하나 갈무리해서 심는 삶에 감도는 사랑을 ‘할머니 목소리로 들을’ 수는 없어요. 곧, 사진을 찍은 사람 목소리는 찬찬히 듣지만, 사진으로 찍힌 사람 목소리는 하나도 들을 수 없습니다. 사진책 《강남콩》에 나오는 할머니는 그저 배우요 연기자요 모델이기만 합니다.


  나는 《강남콩》이 아쉽거나 모자라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이 사진책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즐기다가 문득 한 가지가 떠오를 뿐입니다. 어른들이 찍는 아이들 사진이란 얼마나 ‘아이 삶’을 아이 눈높이와 마음결과 꿈길에 따라 보여준다 할 만할까요. 어른들이 담는 아이들 사진이란 어느 만큼 ‘아이 이야기’를 아이 키높이와 마음밭과 사랑길에 따라 들려준다 할 만할까요.


  이제는 판이 끊겨 다시 만나기 힘든 사진책 《강남콩》입니다만, 아이들이 이 사진책을 들여다보면 ‘아, 나도 콩씨 심어 콩을 얻어 콩밥 먹은 적 있어요.’ 하고 말하는 아이가 있고, ‘아, 나도 콩씨 심어 기르고 싶어.’ 하고 말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참으로 포근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참말 따사로운 이야기를 꽃피우는 사진책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사진이 보여줄 수 있는 빛그림은 고이거나 멈추지 않거든요. 사진은, 움직이는 사람을 움직이는 결로 보여줍니다. 사진은, 살아가는 사람을 살아가는 결로 드러냅니다. 사진은, 꿈꾸는 사람을 꿈꾸는 결로 빛냅니다.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아이들은 따로 몸짓을 꾸미지 않더라도 사랑스레 보입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나는 아이들과 오래도록 마주하며 지내다가 문득문득 사진기를 살며시 들어 단추를 누릅니다. 하루에 한 장씩 차곡차곡 이야기가 쌓입니다. 콩알 하나 꽃그릇에 심고는 날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결이 사랑스레 찾아듭니다. 사진기를 곁에 둔 나는 콩줄기와 콩꽃과 콩잎이 맑고 푸르게 빛나는 모습을 살갗으로 느끼다가는 슬며시 사진 한 장 얻습니다.


  따순 햇살처럼 내리쬐는 사랑을 담는 사진입니다. 고운 바람처럼 싱그러운 꿈을 옮기는 사진입니다. 좋은 삶처럼 좋은 이야기 샘솟는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사진입니다.
 (4345.4.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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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0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순 햇살처럼 내리쬐는 사랑을 담는 사진입니다." - 저도 이런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특히 어떤 대상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찍었을 때, 그런 게 느껴져요.

잘 읽었어요. 그런데 된장님, 강남콩은 강낭콩을 잘못 쓴 걸까요?

숲노래 2012-04-09 15:07   좋아요 0 | URL
'중국 강남'에서 자라던 콩이라서 '강남콩'이에요.

"강남 갔던 제비 돌아온다"는 속담 아시지요?
그 강남이 바로 이 강남콩입니다.

그런데, 1990년부터 국립국어원에서
갑자기 맞춤법을 바꾸었어요.
앞 'ㅇ' 받침과 뒷 'ㅇ' 받침 사이에
'ㅁ' 받침이 들어가니 소리내기 나쁘다 해서
뚱딴지처럼 낱말이 바뀌었어요.

'강남콩'이 옳은 말이지만,
이제는 엉터리 맞춤대로 '강낭콩'으로 적어야 합니다...

페크pek0501 2012-04-09 15:1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안타까운 일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