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감 책읽기
맨 처음 구름을 올려다본 날부터 두 아이하고 구름을 올려다보는 오늘까지, 똑같이 생긴 구름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다른 구름이고 늘 새로운 구름입니다. 매화나무 한 그루에 꽃송이가 흐드러지게 달립니다. 수백 아닌 수천 송이가 나무 한 그루에 달려요. 이 가운데 매실은 얼마쯤 맺힐까요. 멀리서 바라보든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든 똑같이 생긴 꽃송이는 없습니다. 아주 닮았구나 싶어도 서로 다른 꽃송이예요. 참 비슷하구나 싶어도 모두 다른 꽃잎이에요. 좋은 푸성귀 나는 흙땅에 쟁기를 폭 찍어 갈아엎는 흙알갱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살피면, 수만 수십만 수백만 알갱이는 모두 달리 생겼습니다. 수천만 수억만 흙알갱이는 저마다 다른 크기와 생김새로 얼크러지며 밭을 이루고 논을 이룹니다. 결 곱고 내음 좋은 흙을 만지작거리다가는, 내 몸뚱이도 나중에 이처럼 곱고 좋은 흙으로 바뀌어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과 뒷사람한테까지 고운 결과 좋은 내음 물려줄 수 있을까 어림해 봅니다.
우리 집 동백꽃 붉은 꽃송이를 바라봅니다. 마을 집집마다 한 그루쯤 으레 건사하는 동백나무 꽃송이 붉은 빛깔을 어디에서나 바라봅니다. 집마다 다 다른 때에 피어나고 다 다른 짙기로 붉게 물드는 꽃송이를 바라봅니다. 크기도 모양도 빛깔도 저마다 다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 마당이든 이웃집 마당이든, 흔히 얘기하는 동백꽃 모양보다 꽃도감에 안 실리는 모양이 훨씬 많다고 깨닫습니다. 꽃도감에는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 ……에 이르는 꽃송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담겠지요. 꽃도감에 담긴 꽃송이 하나는 ‘꽃 갈래 하나’를 얼마나 잘 보여줄 만할까요.
누군가 ‘지구별 겨레 사전’이나 ‘지구별 나라 사전’이라며 엮는다 하면서, 겨레와 나라마다 사내랑 가시내 한 사람씩 사진을 찍어 싣는다 할 때에, 이 ‘지구별 겨레 사전’에 실린 사람들 얼굴은 ‘겨레 하나’를 얼마나 잘 보여줄 만할까요. ‘지구별 겨레 사전’에서 ‘한국’ 이야기에서는 가장 잘생겼다는 사내랑 가시내 얼굴을 담아야 할까요. 가장 못생겼다 하는 얼굴을 담아야 할까요. 가장 수수하거나 투박하다는 얼굴을 담아야 할까요. 아무나 골라잡아 사진을 찍어 담으면 될까요.
도감을 살피며 꽃이름을 알 수는 없어요. 도감을 살피며 꽃이름을 맞춘다 하더라도 꽃을 알 수는 없어요. 꽃이름을 알자면 내 마음을 가만히 기울이고 내 생각을 찬찬히 쏟으며 꽃을 바라보아야 해요. 꽃을 알자면 꽃이랑 함께 흙땅을 밟고 흙내음을 맡으며 살며시 눈을 감고 느껴야 해요. (4345.4.1.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