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기계 이레

 


  집에 빨래기계를 들인 지 이레가 지난다. 1995년 4월 5일부터 2012년 3월 한복판까지 빨래기계를 안 쓰며 살았다. 내 어버이와 함께 살던 집에서 제금난 뒤로는, 기계를 써서 내 옷가지를 빨래한 적은 한 차례조차 없다. 군대에서는 영 도 밑으로 이삼십 도씩 떨어지는 날씨일 때조차 얼음을 녹여 손빨래를 해야 했다. 이제 손빨래 아닌 기계빨래를 하니 느낌이 남다르다. 맨 처음에는 내 몸이 게을러지나 하고 생각한다. 이듬날에는 퍽 홀가분하구나 싶으면서 어딘가 허전하다. 사흘째에는 나 스스로 빨래거리한테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마음을 빼앗겼구나 하고 느낀다. 나흘째에는 기계가 손보다 물기를 더 잘 짜고 사람 몸뚱이를 덜 쓰도록 돕지만, 이만큼 옷가지를 더 세게 헹구거나 짜기에, 기저귀 실올이 꽤 많이 풀린다고 느낀다. 가장 적게 헹구고 짜도록 맞추었지만, 이렇게 해도 기계를 돌리고 나서 꺼낼 때 살피면 기저귀 실올이 새로 자꾸 풀린다.


  빨래기계를 쓸 수 있으니, 이제 옆지기가 아침에 나보다 먼저 기계에 전기를 넣어 빨래감을 맡길 수 있기도 하다. 내가 손으로 짜서 털 때보다 물기가 적으니 기저귀랑 옷가지는 햇살을 쬐며 더 일찍 마른다. 손으로 빨래하던 나날에는 머리 감는 물로 가장 지저분한 옷을 헹구고, 아이들 씻긴 물로 아이들 옷가지를 헹구곤 했는데, 이런저런 버릇도 조금씩 바꾸어야겠다고 느낀다. 똥기저귀나 속옷이나 양말은 손으로 비빔질하면 아주 금세 끝나고 한결 깔끔하다. 빨래기계를 쓴대서 손빨래를 아예 안 할 일이란 없다. 그러나, 빨래 일거리를 기계한테 꽤 많이 맡기면서, 집에서 아이하고 눈을 마주하는 겨를이 더 늘고, 몸을 차분히 쉬면서 가만히 생각을 다스리는 겨를이 한결 늘기도 한다. 차츰 따스해지는 날씨를 느끼며 섬돌에 아이들이랑 나란히 앉아 해바라기를 할 수 있기도 하다. (4345.3.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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