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책 문지아이들 73
앨런 앨버그 지음, 자넷 앨버그 그림, 김서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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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공룡 책’이 재미없고 안 궁금해요
 [환경책 읽기 36] 앨런 앨버그·자넷 앨버그, 《지렁이 책》

 


- 책이름 : 지렁이 책
- 글 : 앨런 앨버그
- 그림 : 자넷 앨버그
- 옮긴이 : 김서정
-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2006.4.24.)
- 책값 : 7500원

 


  호미나 삽으로 땅을 파면 지렁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호미나 삽으로 땅을 파는데 지렁이가 나오지 않는다면, 퍽 무섭습니다. 지렁이가 살아가지 못하는 땅이란 사람 또한 살아갈 만하지 않은 데라 할 테니까요.


  몇 해 앞서부터 정부가 앞장서며 4대강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온나라 물줄기를 곧게 펴는 일을 벌입니다. 수많은 삽차가 땅을 파고 끝없는 짐차가 돌을 퍼붓다가는 시멘트를 어마어마하게 들이붓습니다. 작은 시골 냇물조차 이렇게 망가져요. 아마, 어느 누구도 땅속에서 살아가는 지렁이를 살피거나 들여다보거나 생각하지 않겠지요. 지렁이뿐 아니라, 쑥이든 억새이든 갈대이든 민들레이든 무어든 무어든 냇가나 물가나 냇둑에서 자라던 숱한 풀들이 뽑히거나 잘리거나 죽는 일은 아랑곳하지 않겠지요. 피라미 송사리 죽든 말든 생각조차 않겠지요.


  도시에서 재개발을 한다며 옛집 허물고 아파트를 올려세울 때에는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예전에 아주 가끔 아파트 공사터를 멀찌감치 바라본 적 있는데, 몹시 깊이 파헤친 땅속은 되게 무서웠습니다. 도무지 어떠한 목숨이라고는 깃들지 못할 듯한 흙덩이만 보였어요. 시뻘겋거나 시커먼 흙덩이도 틀림없이 흙일 테지만, 이 흙덩이를 밑에 깔고 높이높이 올리는 시멘트 건물이란 사람들 몸에 얼마나 좋을는지 알쏭달쏭해요.

 

 


.. 지렁이들은 보통 걱정없이 태평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지렁이로 사는 일도 만만치 않답니다. 축구의 인기가 날로 높아 가는 것도 지렁이에게는 심각한 골칫거리예요 ..  (7쪽)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입니다. 예부터 봄이면, 꽃이 피고 새가 운다고 했어요. 우리 집 창호종이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느끼며 아침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이 빛살처럼 따사롭게 온 집안을 감도는 봄기운이 고맙습니다. 꽤 이른 새벽에는 참새가 재재거리며 날아다니고, 이윽고 참새보다 덩치 큰 새가 날아다닙니다. 얼마 앞서부터는 참새나 딱새나 박새를 잡아먹는 꽤 큰 새를 몇 마리 보았습니다. 아직 들판에는 누런 빛깔이 더 많은데, 하루가 다르게 푸른 옷으로 갈아입으며 들새와 멧새 먹이가 될 벌레도 많이 깨어나겠지요.


  그러나, 이런 꽃 피고 새 우는 봄을 오늘날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느낄까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꽃송이나 새소리로 봄을 느끼던 일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달력을 보며 봄을 말할 뿐입니다.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며 봄을 들을 뿐입니다. 아가씨들 옷차림에서 봄을 본다 할 뿐입니다.


  참말 봄이란 ‘백화점 에누리’가 봄이 되어도 될까요. 참으로 봄이란 ‘초·중·고등학교 새학기’가 봄이 되어도 되나요.


  꽃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맞이하는 봄이란 얼마나 봄다운가요. 새를 느끼지 못하면서 맞아들이는 봄이란 얼마나 봄이라 할 만한가요.


  봄이 없는 데에 여름이 없습니다. 여름이 없는 데에 가을이 없습니다. 가을이 없는 데에 겨울이란 없습니다.

 


.. 지렁이야 세상 어디 가나 다 똑같지 않겠냐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  (18쪽)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찹니다. 봄바람이라고 마냥 따사롭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봄에도 찬바람이 붑니다. 아직 봄이니 살랑이는 따순바람과 함께 서늘한 찬바람이 함께 찾아듭니다. 그래도 봄인 만큼 햇살은 더 눈부시고 햇볕은 더 따뜻합니다. 후박나무 빨래줄 기저귀는 금세 마릅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마당에서 뒹굽니다. 더 따스해지고 더 포근히 바람이 불면, 이제 들판과 멧자락으로도 마실을 다니리라 생각합니다. 한 해 두 해 자라나면서 아이들 스스로 멧길을 타고 들판을 내달리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터전에서 좋은 살림을 일굽니다. 좋은 살림을 일구며 좋은 생각을 빚습니다. 좋은 생각을 바탕으로 좋은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좋은 하루입니다. 좋은 밥이고, 좋은 벗이며, 좋은 일입니다.


  좋게 어우러지면서 씨앗 하나 심습니다. 씨앗이 며칠쯤 지나 싹이 틀까 기다립니다. 싹이 튼 씨앗은 얼마나 씩씩하게 줄기를 올릴는지 다시 기다립니다. 줄기를 올릴 새싹이 언제쯤 새잎을 틔우며 씩씩하게 푸른 옷을 입을는지 거듭 기다립니다.


  꼭 모든 사람이 밭을 일구지 않아도 된다 여길 수 있지만, 다문 한 평이라도 스스로 밭을 일구지 못한다면 너무 슬픈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문 한 평조차 내 두 다리로 밟을 흙이 없고 만질 흙이 없으면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구나 싶습니다.


  흙에 뿌리내리는 풀을 보고 꽃을 볼 때에 내 마음속에서도 사랑이 자라고 믿음이 꽃피운다고 느껴요. 흙에 기대어 살아가는 지렁이를 보고 벌레를 보면서 내가 어디에 어떻게 기대며 삶을 누리는가를 돌아본다고 느껴요.

 


.. 지렁이는 태초에 시간이 시작될 때부터 이 땅 위에서, 아니지, 땅 속에서 살았습니다. 공룡들이 시끄럽게 쿵쾅거리고 다니면서 서로 치고받고 할 때, 지렁이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  (22쪽)


  앨런 앨버그 님과 자넷 앨버그 님이 함께 빚은 《지렁이 책》(문학과지성사,2006)을 읽습니다. 지렁이를 기르는 이야기라든지, 지렁이가 이 지구별에서 무슨 일을 한다는 이야기라든지, 지렁이 한 마리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이야기는 없는 책입니다. 그저 ‘지렁이 책’입니다.


  지렁이 그림이라지만, 지렁이마디를 그리지 않습니다. 지렁이 눈을 사람 눈처럼 그립니다. 그래도, 이 《지렁이 책》에 나오는 지렁이들은 예쁘장합니다. 참말 예쁘장한 지렁이들이 나옵니다.


.. 지렁이는 우리가 이 땅에 살기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아마 우리가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여기 있을 거예요. 지렁이는 땅의 제왕이랍니다 ..  (34쪽)

 


  아마 지렁이 스스로 저희가 대단하게 무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지렁이는 지렁이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지렁이가 무얼 먹으며 지구별 쓰레기를 없애는가를 낱낱이 밝히지 않아도 돼요. 지렁이가 누는 똥 때문에 흙이 살아난다는 대목을 애써 드러내지 않아도 돼요. 지렁이는 그저 아주 오래오래 이 지구별에서 이름도 자취도 훈장도 도서관도 딱지도 재산도 토지문서도 아무것도 없이 슬기롭게 살아왔어요. 때로는 삽날에 찍혀 죽고, 때로는 두더쥐한테 잡아먹히고, 때로는 가뭄에 말라죽고, 때로는 큰물에 휩쓸려 죽으면서, 이들 지렁이는 지렁이대로 한삶을 누렸어요.


  찬찬히 돌아보면, ‘공룡 책’보다 놀랍다 여길 만한 ‘지렁이 책’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먼 옛날 말라비틀어 죽었다는 공룡들 모습을 되살리려고 용을 씁니다. 공룡 화석을 모으고 공룡 박물관을 만듭니다. 공룡 유전자를 살피고 공룡뼈가 어떻다는 둥 떠듭니다. 공룡 그림책을 만들고 공룡 영화를 찍어요.


  참 웃기지 않나요. 공룡이 지구별에서 무얼 했다고 공룡을 그렇게 떠들거나 섬기거나 노래하나요. 콩쾅거리며 시끄럽게 싸우며 살던 공룡은 몽땅 숨을 거두었다는데, 왜 이들 공룡을 그토록 찾고 살피며 그리려 하나요. 마치, 사라진 옛 문명을 되새기는 일하고 같지 않나 싶어요. 화산재를 맞고 사라졌다는 옛 문명을, 서로서로 끔찍하게 죽이고 죽으며 사라졌다는 옛 나라들을, 엄청나게 돈을 들이고 품을 들여 되살리려는 일하고 다 똑같구나 싶어요. 그저 전쟁으로 일삼던 옛날 사람들 이야기를 왜 자꾸 들먹이면서 되새기는데다가 ‘역사’라는 이름까지 붙여 아이들한테 가르치는지 모르겠어요. 서로 죽이고 죽던 일이 어떻게 역사가 되거나 학문이 될 수 있나요.


  나는 공룡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아요. 나는 오늘 아침 들은 새소리가 서로서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인가 하는 대목이 궁금해요. 나는 우리 뒤꼍 땅뙈기에서 지렁이가 몇이나 살아가는지 궁금해요. 땅이 조금 더 폭신폭신해질 무렵 밭갈이를 할 때에 지렁이가 얼마나 나올는지 궁금해요.


  고구려 아무개 임금님이 땅을 얼마나 넓혔는지 하는 이야기보다, 고구려 무렵에는 어떤 지렁이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발해라든지 옛조선 이야기보다 발해나 옛조선 무렵 지렁이는 어떠했을까 하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공룡들이 서로 죽이고 물어뜯을 무렵 지렁이는 어떠했을까 하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라는 마을에서 살던 지렁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땅 영광과 기장이라는 마을에서 살아갈 지렁이는 어떤 모습일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에도 지렁이가 있을까요. 부산에도 지렁이가 사는가요. 도시에서 지렁이들은 어떻게 삶을 버티는가 궁금합니다. 헬리콥터로 온 들판과 멧자락에 농약을 뿌려대는데, 이런 판에 지렁이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4345.3.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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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3-13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둥이들도 이책 참 재밌어했어요.
손에 착 들어오는 책크기도 알맞구요.^^

숲노래 2012-03-13 18:15   좋아요 0 | URL
네, 참 재미나게 엮었어요.
그래도 어딘가 한 구석 아쉬운 대목이 있어요.
재미나게만 엮느라
막상 지렁이가 무언가 하는 이야기는
한 줄로도 밝히지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