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장난감 1 - 애장판
오바나 미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픈 아이들한테
 [만화책 즐겨읽기 28] 오바나 미호, 《아이들의 장난감 (1)》

 


  봄을 맞이했지만, 잠을 자는 방에는 늘 이불을 깔아 놓습니다. 밤에도 자고 새벽에도 자며 아침이나 낮에도 한숨 꼭 자야 하는 갓난쟁이가 있으니까요. 갓난쟁이를 언제라도 눕히도록 방 한켠은 늘 이부자리입니다. 더욱이 아직 추위가 말끔히 가시지 않은 만큼, 방바닥이 따스하도록 이불을 깔아 놓습니다.


  저녁이 되고, 밤이 가깝습니다. 두 아이는 지칠 줄 모르며 노느라 바빠 도무지 잠자리에 들려 하지 않습니다. 고단하니까 그만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하지만, 어버이인 나부터 조금 더 일을 마치고 잠들자 생각하니, 아이들이라고 나와 다르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옷장 문을 열고 이불더미로 콩콩 뛰는 첫째 아이처럼, 나도 옷장 안쪽에서 이불더미로 콩콩 뛰며 놀던 어린 나날이 있었다고 깨닫습니다.


  이렇게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지 못했다면 내 어린 나날을 앞으로도 못 떠올리며 살지 않았을까요. 나도 내 어버이한테는 ‘졸리면서 끝끝내 잠은 안 자고 더 놀려 하던 아이’가 아니었을까요. 졸리건 안 졸리건 고단하건 안 고단하건 놀 수 있는 만큼 더 신나게 놀며 하루를 즐기는 아이였겠지요.


- “지금 너희들의 모습을 거울에다 비춰 보지 그래? 아주 한심의 극치야. 오히려 원숭이 떼가 더 똑똑해 보일 정도라니까.” (22쪽)
- “넌 지금 네가 무슨 깡패 집단의 보스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넌 우리 3반의 쓰레기야! 내가 머지않아 고성능 청소기로 싹 쓸어버릴 테니까 각오해 둬!” (28쪽)
- “아프잖아!” “우리 여자들의 하트는 훨씬 더 아프단 말야! 큐티 하니처럼 욱씬욱씬! 그래! 진심으로 사과해!” (92쪽)

 

 


  더 놀고 싶은 아이한테 내 어버이는 어떤 말을 했을는지 궁금합니다. 더 놀려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내 어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내가 내 아이들한테 하는 말하고 같이 내 어버이가 말했을까요. 오늘 이곳에서 내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결처럼 내 어버이가 느꼈을까요.


  봄꽃이 핍니다. 봄비가 내립니다. 봄바람이 붑니다. 봄햇살을 쬡니다. 온 들판은 온통 봄누리입니다. 아이들은 봄을 맞이해 더 개구지게 놀 만합니다. 바야흐로 따사로운 봄철 온 집안 문을 다 열고는 봄기운을 맞아들여 예쁘게 놀 만합니다.


  봄까치꽃에 이어 별꽃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논둑이랑 밭둑에는 이 두 가지 들꽃이 맨 먼저 찾아오는데, 멧자락에는 어떤 꽃들이 옹기종이 피었을까요. 마늘밭마다 독새기풀 뽑느라 할머니들 허리가 구부정한데, 독새기풀처럼 냉이와 달래도 곳곳에 새 줄기를 올리겠지요.


  우리 집 둘레나 마당에 새 쑥이 오릅니다. 들꽃 사이사이 쑥잎이 앙증맞습니다. 좋은 풀내음이 푸르게 퍼집니다. 맑은 풀냄새가 집안으로 스밉니다. 이 따사로운 봄날, 이 나라 아이들은 어디에서 누구랑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요. 이 포근한 봄철, 이 나라 푸름이와 젊은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새롭게 꿈과 이야기를 빛낼까요.


- “하야마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한 마리 외로운 승냥이 같아. 아무에게도 마음을 안 여는 느낌이야. 난 친구들이랑 엄마, 레이 같은,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하야마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어. 아니, 일부러 만들지 않는 것 같아. 그런 사람이 있다니, 화가 나기보단 오히려 슬퍼지는 거 있지.” (96쪽)
- “나는 그 애에게 정말로 감사하고 있어. 그 애 덕분에 기운을 낼 수 있었거든. 어린애라 하더라도 상대가 진지하다면, 나도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 (225쪽)

 


  오바나 미호 님 만화책 《아이들의 장난감》(학산문화사,2004) 첫째 권을 읽습니다. 첫째 권에 나오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아마 이 만화는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사이 아이들 읽으라고 그렸겠지요. 고등학생이나 어른들은 이 만화가 좀 어리거나 재미없다 여길 수 있겠지요.


  나는 내 어린 나날 나이로 돌아가 만화책을 읽습니다. 나 또한 열세 살 어린이였던 모습을 그리며 만화책을 읽습니다. 집일을 하느라 등허리가 결려 방바닥에 엎드린 채 읽습니다. 첫째 아이는 아버지 등을 타고 올라와 방방 뜁니다. 이 녀석은 제 아버지 등짝이 앞마당이라도 되는 양 두 다리 쪽 펴고 서서 체조나 곡예라도 부리는 듯합니다.


  그야말로 온몸이 쑤실 때에는 아이가 건드리기만 해도 아픕니다. 참으로 온몸이 뻑적지근할 때에는 아이가 등뼈를 자근자근 밟아 주니 시원하기도 합니다. 아픈 날은 아버지가 골을 부리고, 시원한 날은 가만히 있습니다. 아픈 날은 아이가 부디 밖에 나가 신나게 뛰놀기를 바라고, 시원한 날은 너무 오래 밟지는 말고 조금만 밟고 내려오기를 바랍니다.


  돌이켜보면, 내 어린 나날 내 아버지는 아이들 어리광이나 놀이를 거의 안 받아 주었다고 느껴요. 어릴 적에 아버지하고 놀았던 모습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집에서 아버지는 늘 무섭고 지쳤으며 혼자 쉬는 분이었습니다. 제삿날에 맞추어 작은아버지가 찾아오면, 작은아버지 품에 안겨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놀곤 하던 일은 떠오르지만, 내 아버지 수염을 만지작거린다든지 등에 올라탄다든지 하는 일은 꿈조차 못 꾸었지 싶어요.

 

 


- “자기 엄마 좋아하는 게 뭐가 나쁘지?” (119쪽)
- “아니, 그것 때문이야? 그 이유 때문에 너희 집이 이 모양이냐고? 11년씩이나? 이상해. 미안하지만 너희 집은 정말 이상해. 엄마가 애써서 낳아 주신 거잖아?” (137쪽)


  갓난쟁이는 언제나 어머니 바짓가랑이나 치잣자락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어린 아이도 으레 어머니 뒤를 졸졸 좇습니다. 집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 즐거이 노는 사이라면 아이들은 아버지 품도 좋아하고 아버지 품에서 새근새근 달게 잠들기도 합니다.


  아주 마땅히, 아이들은 제 어버이를 좋아합니다. 아주 마땅히, 어버이는 제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서로 아끼고 서로 믿습니다. 서로 보듬으며 서로 기댑니다.


  온힘뿐 아니라 온사랑 기울여 아이를 몸속에 보듬다가 낳습니다. 숱한 나날뿐 아니라 수없이 흘리는 땀방울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보살핍니다.


  좋아하기에 낳는 아이요, 사랑하기에 보살피는 아이입니다. 좋아하기에 함께 노는 어버이요, 사랑하기에 나란히 손을 잡고 마실을 다니는 어버이입니다.


- “그래, 난 아무것도 말라.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래서 알고 싶다고, 힘이 되고 싶다고 했던 건데. 죽고 싶다는 소리나 하고, 다 필요없어. 바보. 멍청이. 나쁜 놈!” (130∼131쪽)
- “아가, 엄마는 말이지, 널 사랑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낳은 거란다. 그러니까, 엄마 몫까지 열심히 살아 주렴.” (166쪽)


  어버이 스스로 예쁜 넋으로 살아갈 때에 아이들은 언제나 예쁜 웃음과 낯빛과 몸짓입니다. 어버이 스스로 아픈 생채기로 그늘질 때에 아이들까지 노상 아픈 앙금을 쌓으며 그늘지는 눈물과 몸빛과 매무새입니다.


  아픈 아이들한테는 사랑만 한 손길이 없습니다. 아픈 어른들한테도 사랑만 한 손길이 없습니다. 아픈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 사랑을 받아먹으며 기운을 되찾아야 합니다. 아픈 삶으로 얼룩지며 시름시름 앓는 사람들 누구나 고운 사랑을 해맑게 받아들여 따사로이 씨앗 하나 품으며 우람한 나무로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예쁜 얼굴 어머니나 돈 많은 아버지를 바라지 않아요.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밥상을 차려 주고, 기쁜 낯빛으로 함께 어우러져 놀 어버이를 바라요. (4345.3.8.나무.ㅎㄲㅅㄱ)


― 아이들의 장난감 1 (오바나 미호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4.9.25./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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