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마음
시를 맨 처음 쓰던 때는 고등학교 1학년. 한창 입시지옥에 시달리던 나날이었기에 고달픈 몸을 쉬고 아픈 마음을 달랠 좋은 삶동무 시였다.
다음으로 시를 쓰던 때는 신문배달로 먹고살던 스물, 스물하나, 스물넷, 스물다섯. 하루하루 끼니 잇기로도 벅차던 살림이었기에 배고픈 몸을 달래고 시린 마음을 적실 좋은 길동무 시였다.
이러고 나서 오래도록 시를 잊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으로 종잡지 못하던 삶이었기에.
아이를 하나 낳고, 아이를 둘 낳으며, 비로소 다시 시를 쓴다. 두 아이 뒤치닥거리일는지 두 아이와 살림하기일는지 두 아이 사랑하기일는지 잘 모른다. 두 아이랑 노닥거리기 때문에 시를 쓸 수 있는지 모른다. 두 아이 늘 바라보며 맑은 눈빛에 내가 폭 젖어드는 터라 시를 쓸 수 있는지 모른다.
이제 시골마을 조그마한 보름자리에서 온통 홀가분한 꿈을 꾸며 흙을 밟고 나뭇줄기 쓰다듬으며 풀잎을 어루만질 수 있기에, 또다시 시를 쓴다. 꿈동무 시로구나 싶다. 어쩌면 사랑동무 시일 수 있겠지.
하늘이 좋아 시를 쓴다. 도랑물 소리가 즐거워 시를 쓴다. 새봄 풀벌레 소리를 기다리며 시를 쓴다. 바람에 나부끼는 기저귀 퍼덕 소리와 후박나무 꽃잎 색색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시를 쓴다. 아이들 사근사근 잠자는 숨소리를 느끼며 새벽녘 시를 쓴다. (4345.3.3.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