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열린 한대수
한대수 지음 / 선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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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삶을 구성지게 얘기하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56] 한대수, 《뚜껑 열린 한대수》(선,2011)

 


 봄이 되어 들판에는 다시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들새가 먹이 찾으러 새벽부터 일찍 돌아다니는 소리를 듣습니다. 멧등성이 쪽을 바라봅니다.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저 멧자락에는 어떤 멧짐승이 새봄을 기쁘게 맞이할까 헤아려 봅니다. 저 멧자락에는 어떤 멧풀이 새싹을 틔우고, 어떤 멧나무가 새눈을 틔우려 애쓸는지 생각해 봅니다.

 

 봄은 누구한테나 봄입니다. 사람한테도 들고양이한테도 들풀한테도 모두 봄입니다. 하늘도 봄이요 냇물도 봄이며 별들도 봄입니다. 긴긴 겨울을 알뜰히 지냈으니, 이제부터 모두들 맑은 봄기운 듬뿍 받아먹을 만합니다. 추운 겨울을 포근히 났으니, 이제 저마다 마음속으로 품으며 기다리던 봄을 한껏 누릴 만합니다.

 

 봄햇살에 더 보송보송 마르는 봄빨래입니다. 겨우내 덮던 이불은 한 채씩 신나게 빨아 즐거이 말리자고 생각합니다. 커다란 고무대야 마당에 내놓고 아이하고 이불을 마음껏 밟으며 빨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애벌빨래는 내가 먼저 해 놓고, 헹굼질을 할 때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나이에 맞추어 나중에는 아이더러 이불 비누질도 시킬 수 있습니다. 아이더러는 이불 한 채를 한 시간쯤 걸려 빨라고 하지요. 나도 어린 나날 이불 한 채를 빨 때에 으레 한두 시간은 들였지 싶어요. 작은 몸 작은 손으로 커다란 이불을 이리저리 뒤집고 돌려서 비비고 밟고 하자면 퍽 힘들거든요.

 

 

 나부터 하루를 즐길 때에 아이들 또한 하루를 즐깁니다. 나부터 새봄을 새로운 사랑으로 맞아들일 때에 아이들 또한 새봄을 새로운 꿈으로 받아들입니다. 새로 비추는 좋은 빛살을 느끼며 한대수 님 사진이야기 《뚜껑 열린 한대수》(선,2011)를 읽습니다. 뚜껑이 열렸다니, 무슨 뚜껑이 열렸나 궁금해서 들여다보니, 처음부터 “내 생각엔 기획사를 통해서 성공한 아티스트는 거의 없다. 성공을 한다고 해도 잠깐이지, 한 인생을 거치며 아티스트로 발전하는 경우는 드물다(45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런 소음 공해는 여러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데, 곳곳에 있는 공사장의 소음들과 거리의 상점마다 틀어놓은 야외 스피커는 나를 더더욱 놀라게 한다. 이러한 소음은 서양 사회에서는 불법이다(66쪽).” 하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밑줄을 그으며 찬찬히 읽습니다. 한대수 님은 ‘음악 예술’을 하려는 이들한테 들려주고 싶다며, ‘기획사에 들어가 이름 날리는 길’을 찾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곰곰이 되새깁니다. 노래꾼을 꿈꾸는 이들뿐 아니라, 사진꾼이나 글꾼이나 그림꾼이 되려는 이들도 똑같이 헤아릴 대목입니다. 어떤 ‘학교’를 다니거나 어떤 ‘스승’을 섬기거나 어떤 ‘기관(또는 스튜디오, 또는 창작실, 또는 작업실)’에 들어간대서 내가 꿈꾸는 길을 기쁘게 이루지는 않아요. 늘 혼자 씩씩하게 걸어가는 길에서 꿈을 기쁘게 이룹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여럿이 동아리를 이루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노래패에는 악기를 다루는 이들이 따로 있어, 여럿이 어울리는 길에서도 내 꿈을 이룬다 할 테지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나요 장구를 때리는 사람도 나이며 기타를 뜯는 사람 또한 나예요. 나와 내가 어우러지는 우리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나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 또한 나이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란 바로 나예요. 돈을 벌겠다며 글을 쓸 수 있기도 하지만, 돈을 벌려고 쓰는 글이란 내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 꿈을 키우는 길이 될까 궁금해요.

 

 

 

 곧, 꿈하고 동떨어진 돈하고 사귈 때에는 ‘소음 공해’와 똑같이 ‘글 공해’가 되고 ‘그림 공해’가 되며 ‘사진 공해’가 됩니다.

 

 삶을 구성지게 얘기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글입니다. 삶을 신나게 얘기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림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얘기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입니다. 이야기가 있어야 글이며 그림이고 사진이에요. 이야기를 담지 못하거나 이야기하고는 동떨어진다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미국 연속극에서) 최하 2천에서 3천 달러 되는 아파트에 살면서 브런치나 먹어가면서 명품 가방과 하이힐을 신고 다닌다니 그야말로 소설이다. 그리고 온갖 사람이 모여 사는 대도시에서 어떻게 바로 사랑을 나누느냐(92쪽)?” 하는 말처럼, 명품과 겉치레와 돈놀음에 파묻히는 삶이란 삶이라고 할 수 없을 뿐더러, 사랑조차 없다고 말할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에서 샘솟는 사랑이 있을 때에 쓰는 글이거든요. 내 가슴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있을 때에 그리는 그림이거든요. 내 넋으로 북돋우는 사랑이 있을 때에 찍는 사진이에요.

 

 

 한대수 님은 손숙 님과 함께 꾸리는 라디오 풀그림에서 “80퍼센트가 되는 서민층에게 빚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해야만 온순하게 일을 하고, 빚을 갚게 만들고, 불만이 있더라도 특히 다문화 다인종이 살고 있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혁명을 일으킬 생각을 못하게 하는 전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117쪽).” 하고 이야기한답니다. “아티스트는 ‘반 고흐’와 같이 한평생 고생하다가 고귀한 희생을 하는 것과는 반대였다. 그래서 워홀은 수천만 달러를 챙겼다. 그래서 나는 워홀에 대한 예술적인 가치는 그다지 평가하지 않는다(167쪽).” 하고도 이야기한답니다. 그야말로 홀가분한 넋이기에 홀가분하게 이야기합니다. 즐거이 누리고픈 삶이기에 즐거워 보이지 않는 삶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따스히 어루만지고 싶어 합니다.

 

 누구나 곱게 누릴 삶입니다. 저마다 알차게 빛낼 나날입니다. 누구나 곱게 부를 노래요, 저마다 알차게 찍을 사진입니다. 누구나 곱게 꾸릴 살림이요, 저마다 알차게 마련할 밥상입니다. 누구나 곱게 나눌 사랑이고, 저마다 살가이 어깨동무할 꿈이에요.

 

 한대수 님은 또 이야기합니다. “큰곰은 군을 제대하고 나서 인생관이 많이 변했다. 인류에 대한 희망을 더욱더 잃었고, 그것이 음악에 반영이 됐다(239쪽).” 하고.

 

 

(헉 ! 사진 뒤집어졌네... -_-;;;)

 

 

 슬픔은 슬픔대로 노래하는 사람 가슴으로 스며듭니다. 기쁨은 기쁨대로 사진하는 사람 마음으로 젖어듭니다. 아픔은 아픔대로 글을 쓰는 사람 넋으로 깃듭니다. 웃음은 웃음대로 춤을 추는 사람 몸짓으로 녹아듭니다.

 

 나 또한 군대에서 빛을 잃었습니다. 사람을 더 잘 더 빨리 더 많이 죽이는 재주를 가르치고 길들이는 군대에서 도무지 빛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군대에 며칠 먼저 들어왔다고 웃사람으로 모시며 깍듯이 높임말을 써야 하는데, 군대 바깥에서 나이를 따져 웃사람으로 모시며 깍듯이 높임말을 쓰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군대는 군대대로 꽉 막히고, 사회라는 곳은 사회라는 곳대로 꽁꽁 묶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은 총부리로 윽박질러 짓뭉갭니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랑하는 꿈은 군화발로 걷어차며 짓밟습니다. 돌이켜보면, 회사라는 곳도 이와 같습니다. 사회에서는 나이, 군대에서는 계급, 회사에서는 지위에 따라 사람을 깎아내립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성적을 매겨 사람을 깎아내립니다. 이런 판이라면, 어떤 이가 노래하는 꿈을 꿀까요. 이런 터라면, 어떤 이가 사진하는 꿈을 키울까요. 이런 마당이라면, 어떤 이가 좋은 벗을 사귀며 좋은 사랑을 빛내는 길을 걸을까요.

 

 한대수 님은 당신 노래를 돌이키며 “작곡은 내 마음의 상처의 치유다. 그리고 내 음악이 여러분들의 상처에 치유가 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293쪽).” 하고 말합니다. 노래할 때에는 노래가 마음을 달랠 테고,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이 마음을 달래겠지요. 아이를 안고 어를 때에는 아이가 마음을 달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와 길을 걷고, 아이를 씻기며, 아이를 먹일 때에는, 언제나 아이가 한대수 님 마음자리를 가득 누비리라 느낍니다. 이제 한대수 님은 당신 딸아이한테 “여자인 네가 짝을 택하는 것이다. 모든 동물도 마찬가지다.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지 그 반대는 없다(358쪽).” 하는 말을 들려주며 책을 끝맺습니다. 여자한테는 ‘어머니가 되는 길’이 가장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남자한테는 ‘아버지가 되는 길’이 가장 아름답다는 소리요, 한대수 님 스스로 당신한테 가장 아름다울 길인 ‘아버지로 살아가는 나날’을 즐긴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순이 다 되어 아이를 낳아 사랑하겠다고 생각했을 테지요. 예순이든 일흔이든 나이라 하는 ‘숫자 밥그릇’을 떠나, 참살길을 찾으려 했겠지요.

 

 《뚜껑 열린 한대수》는 이제껏 누리지 못한 새로운 꿈을 누리는 이야기를 구성지게 들려주는 사진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뚜껑 열린 한대수》는 여태 깨닫지 않으며 지나치고 만 새로운 사랑을 빛내는 삶을 구성지게 들려주는 이야기책이로구나 생각합니다.

 

 

 구성지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에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구성지게 나누며 환하게 웃음꽃 터뜨리고 싶을 적에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새로 맞이한 봄날, 새로 찾아드는 따스한 기운을 마음껏 누리며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춥던 긴 겨울날, 따스한 봄날을 꿈꾸며 글을 썼고, 그림을 그렸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 스스로 누리고픈 삶이 글꽃이나 그림꽃이나 사진꽃으로 피어납니다. 내가 아끼는 내 살붙이와 어우러지고픈 사랑이 글열매나 그림열매나 사진열매로 이루어집니다. 그래, 한대수 님이 한국땅을 두루 돌아보기에 참말 삶을 아끼며 삶꽃을 피우려는 젊은이가 도무지 안 보인다 싶어 “뚜껑 열린 한대수”가 되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한국땅 어딘가에, 또는 한국 바깥 어느 곳에, 한대수 님 딸아이하고 좋은 짝꿍이 될 사랑스러운 사내아이 기쁘게 크리라 믿으며, “뚜껑 열고 찾아보는 한대수”로 오늘 하루를 즐거이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4345.3.3.흙.ㅎㄲㅅㄱ)


― 뚜껑 열린 한대수 (한대수 글·사진,선 펴냄,2011.11.7.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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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3-0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밑 사진에 안긴 저 아이가 '한양호'인가요? 라디오 방송 들으니까, "양호"라는 낱말이 좋아서 아이를 낳으면 남녀를 불문하고 양호라고 지을 작정이었대요.
된장 님께서 별을 다섯 개나 주셨네요!

숲노래 2012-03-04 04:05   좋아요 0 | URL
글과 사진이 참 좋은데,
예전 생각의나무 책은 출판사가 송두리째 사라지며 책도 사라져서
이번에 새 책이 나왔는데, 그동안 새로 찍었을
좋은 사진을 더 싣지 못한 대목이 퍽 아쉽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괜찮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3-0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대수 씨가 늘그막에 본 딸이로군요.늘 양호 양호 하던 그 아이...

숲노래 2012-03-04 04:04   좋아요 0 | URL
한국말로 하면... "한 좋아"인 셈이에요 ^^;;;

한대수 님 노래 가운데 <하루 아침>이 있는데, 이 노래를 열 때에 "기분이 좋아, 좋아..." 하고 읊어요. 좋아, 좋아... 이 말을 양호, 양호... 하면서 딸아이 양호가 되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