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5.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 한 권 - 형설서점 2012.0227.17

 


 수없이 많은 책이 날마다 새로 태어나고 새로 죽습니다. 새로 죽는 책이 있으니 새로 태어나는 책이 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책이 꽂힐 자리만큼 먼저 태어난 책 가운데 적잖은 책이 자리를 물려주고 떠납니다. 새로 태어나는 책이 더 꽂히면서 예전에 태어난 책이 제자리를 지키려 한다면 책꽂이가 날마다 늘어야 하고, 책터 또한 꾸준히 커져야 합니다.

 

 새로 태어나는 책이 있고 새로 죽는 책이 있기에, 헌책방은 두 가지 책을 모두 받아들입니다. 헌책방은 어떠한 책이든 끌어안기 마련이라, 조그마한 살림을 그대로 건사한다면 책이 날마다 쌓이거나 넘쳐 그만 바닥에 책탑이 몇 겹으로 올라섭니다.

 

 전라남도 순천시 버스역 둘레에 깃든 헌책방 〈형설서점〉을 찾아와 책을 살핍니다. 순천과 가까운 남해에 있다는 어느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 삼천포에 있다는 어느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 목포에 있다는 어느 학교 어느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 전라남도 어디께에 있다는 문화방송 지국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 …… 도서관에서 버린 책이 제법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인데, 한국땅 도서관에서는 대출 실적 숫자가 ‘0’이거나 0에 가까우면 으레 버립니다. 1990년을 앞뒤로 맞춤법이 예전 책이면 그냥 버립니다. 아무래도, 도서관이라며 한 번 지으면 책꽂이를 더 늘린다거나 도서관 자리를 더 키우지 않기 마련이니까, 새로 장만하는 책만큼 예전 책을 버리고야 말밖에 없는 한국 도서관이에요.

 

 이런저런 ‘도서관에서 버린 책’을 살살 쓰다듬다가, ‘1986 사랑의 책 보내기’ 운동을 하며 나돌았을 ‘기증도서’ 한 권을 만납니다. 겉에는 이런 자국이 없지만, 안쪽에 딱지 하나 붙고 도장 하나 찍혀요. 박재삼 시인 수필책을 구경할가 싶어 집어들다가 뜻밖에 알아보는 ‘옛 책마을 운동 발자국’ 하나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버려 주니 고맙게 헤아리는 지난날 발자국입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고이 건사했다면 그 도서관에서는 대출 실적 ‘0’이었으니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을 테고, 그 작은 도서관이나 그 학교 도서관에 내가 찾아갈 일은 없을 테니, 나로서는 이런 발자국을 더 살필 수도 없었겠지요. (4345.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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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2-29 10:22   좋아요 0 | URL
순천의 형설서점이군요.저고 가본지 꽤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헌책방을 운영하고 계신가 보군요.요즘 서울 헌책방도 한두군데씩 사라지는데 잘 운영되었으면 합니다.
그나저나 된장님도 남쪽 지방으로 이사를 가셨으니 전라도 지역 헌책방을 자주 돌아보시겠네요.결혼하시기전에 가끔씩 숨책에서 뵌 기억이 나는데 이제 헌책방을 들르러 서울에 올라오실 일은 아마 거의 없으시겠네요^^

숲노래 2012-02-29 22:51   좋아요 0 | URL
서울 갈 일부터 거의 없으니.......
흠...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