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 사진으로 걷는 길
 ― 유럽·미국·일본 아닌 한국에서 사진삶

 


 내가 유럽에서 태어나 사진길을 걸었다면 어떠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아마 유럽 여러 나라 사진책을 두루 살피면서 사진삶을 일구었겠지요. 때로는 미국 사진책을 살피고 때로는 일본 사진책도 보기는 할 테지만, 유럽에서 나고 자란 나는 ‘유럽 눈길로 사진을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내가 미국에서 태어나 사진길을 걷는다면 이와 비슷하리라 느낍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나오는 수많은 사진책을 고루 살피면서 사진삶을 일굴 텐데, 때때로 유럽 사진책을 들추고 가끔 일본 사진책을 살피겠지요. 미국에서 나고 자란 나라면 ‘미국 눈길로 사진을 마주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일본에서 태어나 사진길을 걷는다면 좀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사진책에다가 일본에서 옮겨 펴내는 유럽과 미국 어마어마한 사진책을 잔뜩 볼 테니까요. 일본에서 나고 자란 나일 때에는 ‘일본 눈길로 사진을 받아들이기’ 마련일 터이나, ‘일본과 지구별 눈길을 아울러 갖출’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사진길을 걷습니다. 유럽도 미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본처럼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사진책’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유럽과 미국 사진책을 어마어마하게 옮겨 펴내는 일’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책이나 강의를 살피면 으레 ‘유럽과 미국에서 굵직하게 이름을 남기거나 날리는 몇몇 사람들 사진’ 울타리에 갇힙니다. 한결 깊거나 한껏 너른 사진누리를 이야기하거나 다루지 못해요. 그렇다고 한국하고 가까운 일본 사진책을 찬찬히 살피는 문화나 제도나 시설 또한 없습니다.

 

 이래저래 돌아보면 안타깝거나 슬프거나 모자란 모습투성이입니다. 그러나, 나는 주눅들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싶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만큼 이 아픈 모습을 남김없이 느끼며 바라볼 만합니다. 이 아프며 슬픈 모습을 고스란히 받아먹으면서, 내 나름대로 헌책방과 새책방을 뒤져 ‘유럽과 미국과 일본에서 나온 온갖 사진책’을 스스로 장만해서 읽습니다. 도서관에 없는 사진책이니까 나 스스로 내 돈을 그러모아 장만해서 읽습니다. 한국에서 옮겨지는 ‘세계사진역사 다룬 책’에서는 몇몇 사진쟁이 이름만 끝없이 되풀이할 뿐이니, 나 스스로 ‘세계사진역사 다룬 책’에 이름 안 실리는 수많은 사진쟁이들 꿈과 사랑은 어떤 이야기로 나타났을까를 그리며 ‘안 알려졌다고 하는’ 사진책들을 주섬주섬 그러모읍니다.

 

 프랑스로든 영국으로든 독일로든 이탈리아로든 사진을 배우러 떠날 만합니다. 미국으로든 일본으로든 사진을 배우러 갈 만합니다. 사진이 태어난 곳에서 사진을 마음껏 누릴 만합니다. 사진을 빛내는 곳에서 사진을 실컷 맛볼 만합니다.

 

 그리고, 사진이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는 이 나라 한국에서 사진삶을 내 깜냥껏 일굴 만합니다.

 

 꽃이 피기 어려운 춥고 메마른 겨울이라 하더라도 곧 새봄이 찾아오리라 믿으며 튼튼한 겉옷을 입고 따순 날씨 기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 새눈처럼, 나는 내 슬기를 빚고 내 넋을 가다듬으면서 스스로 꽃이 되도록 힘쓸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사진꽃으로 피어날 사진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내가 유럽이나 미국이나 일본에서 태어나 사진길을 걸었어도, ‘더없이 좋은 사진누리’에서 ‘사랑 가득 담긴 새로운 사진꽃’을 헤아릴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면서도 ‘스스로 사진꽃이 되자’ 하는 다짐을 못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좋은 터전이란 없고, 더 빛나는 뜻은 없습니다. 오늘 하루를 아낄 수 있는 사랑이라면 넉넉합니다. 오늘 하루를 누릴 수 있는 사랑이라면 좋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이란 더 값진 장비로 빚는 예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진이란 값싼 장비이든 값진 장비이든, 내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손에 쥔 사진기 하나로 바로 오늘 이곳을 즐거이 담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 어여쁜 아이들이 웃습니다. 찰칵, 사진 한 장 찍습니다. 내 고운 옆지기가 뜨개질을 합니다. 찰칵, 사진 두 장 찍습니다.

 

 ‘세계사진역사 한켠’에 우리 집 어여쁜 아이들 사진이 굳이 담겨야 하지 않습니다. ‘한국사진예술 한구석’에 내 고운 옆지기 사진이 꼭 실려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삶을 담는 사진일 때에 좋습니다. 내가 누리는 삶을 나누는 사진일 때에 빛납니다. 사진은 빛을 담는 사랑입니다. 사진은 그림자를 빛내는 삶입니다. (4345.2.2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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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2-27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사진을 찍으려면 먼저 아름다운 마음이어야 하는 것. 당연한 건데 새삼 느낍니다. ^^

숲노래 2012-02-27 20:28   좋아요 0 | URL
가장 쉽고 마땅한 생각이지만,
가장 쉽고 마땅해서
으레 잊는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