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 인류의 작은 역사 1
실비 보시에 글, 장석훈 옮김, 메 앙젤리 그림, 한정숙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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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이들은 사랑을 배우며 자라야지요
 [푸른책과 함께 살기 90] 실비 보시에,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푸른숲,2007)

 


- 책이름 :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
- 글 : 실비 보시에
- 그림 : 메 앙젤리
- 옮긴이 : 장석훈
- 펴낸곳 : 푸른숲 (2007.3.26.)
- 책값 : 1만 원

 


 실비 보시에 님이 푸름이한테 읽힐 뜻으로 쓴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푸른숲,2007)를 읽다 보면, 싸움터 군인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놓고 아주 또렷하게 잘 간추렸습니다. “어떤 군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직업 군인이라면 그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어떤 군인은 군복이 멋있어서, 어떤 군인은 전쟁에 참가하는 게 정의롭다고 사람들이 얘기해서, 어떤 군인은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군인은 국법에 의해 전쟁에 끌려왔기 때문에(72쪽).”라 하면서, 어리석게 믿는 사람이나 슬프게 휩쓸리는 사람 모두 싸움터에서 서로서로 죽고 죽이는 짓을 하고야 만다고 밝힙니다.

 

 책을 읽으며, 프랑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알맞고 좋은 이야기를 찬찬히 들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린이한테나 푸름이한테나 이처럼 이야기할 줄 아는 어른이 몹시 드물거든요.

 

 군인이란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만, 군인이란 무엇보다 ‘사람 죽이는 짓을 하는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법으로 사내들을 군대로 내모는 일이란 하나도 올바르지 않아요. 법으로 무언가를 세우려 한다면, 아름다운 삶을 세워야 합니다. 아름답게 꿈꾸고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는 길을 튼튼히 세울 때에 비로소 법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어떤 나라에서는 군대에 들어가 총을 들고 사람을 죽여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군대에 스스로 들어가지 않고서야 도무지 살아남을 길이 없게끔 꽉 막히거나 닫힌 나라가 있어요. 정치를 거머쥐거나 경제를 움켜쥔 이들이 사람들 삶을 옥죄거든요. 언론이 제구실을 못하고 교육이 참길을 이끌지 않거든요.


.. 모두가 평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왜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 수 없을까요 …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 전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전쟁이 목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평화를 얻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12쪽)


 사람들 스스로 평화를 바랄 때에는 평화로이 살아갑니다. 사람들 스스로 평화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평화로이 살아가지 못합니다. 마음 한구석에 ‘평화를 바란다며 무기를 갖추지 않으면 두렵잖아?’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화가 깨집니다. 마음 한켠에 ‘평화를 바라지만 군대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고 근심하기 때문에 평화가 흔들립니다.

 

 전쟁과 평화는 서로 두 얼굴이 아닙니다. 전쟁은 평화를 갉아먹으면서 무섭게 퍼집니다. 평화는 전쟁을 타이르며 보드랍게 녹입니다. 전쟁은 죽음을 먹으면서 사람을 괴롭힙니다. 평화는 삶을 사랑하면서 사람을 살립니다.

 

 나는 군대에 끌려가서 스물두 달을 보내며 어느 하루도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나는 군대에서 사랑을 배우거나 들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군대에서 스물두 달 내내 죽음과 죽임을 듣고 보며 지내야 했습니다.

 

 평화를 생각하는 총이나 칼은 없습니다. 평화를 부르는 총이나 칼이 아닙니다. 평화를 부수는 총이나 칼입니다. 평화를 짓밟는 총이나 칼이에요.

 

 군인으로 지내야 하던 스물두 달 동안 들판과 멧자락을 군화발로 짓이깁니다. 참호를 파고 교통호를 낸다며 애먼 멧자락을 파헤칩니다. 멧등성이를 빙 두르면서 지뢰를 묻고 쇠가시그물을 새로 칩니다. 방공호를 짓는다며 조용하며 맑은 숲을 망가뜨립니다. 군사훈련을 한다며 나무를 베고 들판을 더럽힙니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묻습니다. 수백 사람에 이르는 군인은 군사훈련을 하는 동안 깨끗한 멧자락 어디에나 똥오줌을 내갈깁니다. 고된 행군을 하며 건빵이나 밥 봉지를 들길과 멧길에 함부로 버립니다.

 

 환경을 헤아리지 않는 군인입니다. 환경을 헤아릴 까닭이 없는 군인이랄 수 있습니다. 내 목숨이 간당간당하니까 다른 자리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고된 훈련으로 넋이 빠지니 착한 사랑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주먹다짐과 거친 말이 넘치니 참다운 꿈하고는 등집니다.

 

 사내들은 군대에 간대서 사람이 되지 않아요. 사내들은 군대에 끌려가면서 사람다운 빛과 슬기를 잃어요. 사내들은 군대에서 길들여지며 사랑이랑 평화하고 멀어져요.


.. 갈 길이 멀지만,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을 접어서는 안 됩니다. 평화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평화가 실현될 날도 그만큼 앞당겨질 테니까요 … 간디는 영국인들의 부당한 지배에 폭력으로 맞서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싸워 나갔습니다. 비폭력 투쟁은 폭력 투쟁보다 더 힘겨운 일입니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  (31, 117쪽)


 누구나 사랑을 배우며 살아야 아름다울 수 있다고 느껴요. 사랑을 배우지 못하며 살아간다면, 산 목숨이 아니라 죽은 목숨이 아닌가 싶어요. 사랑을 꿈꿀 때에 비로소 사람이요, 사랑을 꿈꾸지 못하다면 살가죽만 사람 모양이 아닌가 싶어요.

 

 사랑으로 살아가는 어른일 때에 사랑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되도록 도울 수 있어요. 사랑을 배우며 기뻐하는 어른일 때에 사랑을 배우며 기뻐하는 아이들이 되도록 이끌 수 있어요.

 

 평화란 사랑하는 삶입니다. 전쟁이란 사랑하지 않는 죽음입니다. 평화란 서로 믿고 좋아하는 꿈입니다. 전쟁이란 서로 등치거나 들볶는 미움입니다.

 

 평화를 아끼는 나날이기에 내 손으로 땀흘려 흙을 일굴 줄 압니다. 전쟁에 사로잡힌 나날이기에 내 손으로 땀흘리지 않고 내 몸으로 흙을 일구지 않습니다. 평화를 돌보는 사람이기에 이웃하고 어때동무를 하며 두레를 합니다. 전쟁에 휘둘리는 사람이기에 따돌림과 괴롭힘을 내세워 등수와 계급을 세웁니다.

 

 학문이 아닌 시험성적이 된 대학교는 평화가 아닌 전쟁입니다. 대학교를 바라보도록 이끄는 학교 틀거리는 평화하고 동떨어진 전쟁입니다. 학문 또한 새 전쟁무기와 더 큰 경제개발에 끄달린다면 전쟁하고 마찬가지입니다. 학문 또한 삶과 가깝지 못하고 돈과 권력하고 가깝고 만다면 전쟁하고 똑같습니다.

 

 총소리 울려퍼져도 전쟁이고, 총소리 없어도 전쟁입니다. 사랑스레 돌보며 어깨동무하는 삶이 아니라면 언제나 전쟁입니다. 사랑을 배우고 가르치며 나눌 수 없을 때에는 늘 전쟁입니다.


.. 전쟁을 일으킨 나라들은 자기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평화’는 핑계일 뿐이고, 다른 속셈이 있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 칼과 총은 서로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싸울 때 공정한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자기 목숨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  (36, 80쪽)


 아이들을 입시경쟁으로 내모는 어버이는 전쟁을 일으키는 셈입니다. 아이들을 대학바라기에 가두는 어버이는 전쟁터 지휘자인 셈입니다. 입시학원을 열어 시험성적만 따지도록 이끄는 어른은 전쟁을 일으켜 돈을 버는 재벌기업하고 같은 셈입니다. 대입시험 이야기로 돈벌이를 일삼는 신문과 방송은 군수공장을 차린 재벌기업하고 같은 셈입니다. 입시공부 아니면 아무것도 못 가르치는 제도권학교 교사는 첨단무기 새로 만드는 과학자하고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삶을 바라보아야 해요. 삶을 사랑하는 눈길을 터야 해요. 삶을 사랑하는 눈길로 꿈을 키우는 마음을 북돋아야 해요.

 

 이런 지식 저런 지식은 덧없어요. 이런 졸업증 저런 자격증으로는 아이들이 즐거이 살아가지 못해요.

 

 아이나 어른이나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누려야 해요. 아이나 어른이나 스스로 가장 기뻐할 만한 놀이를 함께해야 해요.

 

 좋은 삶이거든요. 좋은 하루이거든요. 좋은 이야기 꽃피우는 좋은 벗이거든요.


.. 과연 무엇이 문명이고, 무엇이 야만인가요? 수천 수만의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유럽 정복자들이 문명의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전 세계 인구가 1년 동안 각각 128달러(약 12만 8천 원)를 군사비에 쓰는 셈입니다. 10억 명 이상이 하루에 1달러(약 1000원)도 못 되는 돈으로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 도대체 이 많은 돈이 어디로 가는 걸까요?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군인들에게 워러급도 주어야 하고, 무기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돈이 듭니다. 전투기, 폭격기, 전차, 무인 전투기와 같은 첨단 무기를 제작하거나 구입하는 데에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  (55, 89쪽)


 자연은 누구한테나 너그러워요. 자연은 누구한테나 밥과 옷과 집을 내주어요. 자연은 몇몇이 홀로 차지하도록 내몰지 않아요. 자연은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아끼는 누구한테나 좋은 빛을 베풀어요.

 

 가난이 있는 까닭은 무엇이든 홀로 차지하려는 권력자와 지배자 때문이에요. 배고픔이나 굶주림이 떠도는 까닭은 사랑을 나눌 뜻이 없는 권력자와 지배자가 자꾸 전쟁을 일으키기 때문이에요.

 

 살아가는 즐거움을 모르니까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거머쥐면서 이웃을 아끼지 않아요. 살아가는 보람을 등지니까 평화 아닌 전쟁으로 기울어요. 살아가는 멋과 맛을 누리지 않으니까 사랑을 깨닫지 않아요.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하고 좋은 보금자리를 일구면서 좋은 꿈을 꾸고 싶어요. 우리 집 아이들이 좋은 삶을 누리고 좋은 사랑을 먹으며 자라도록 마음을 쓰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 집 아이들을 보육원이나 유아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으며 함께 지내요. 아버지인 나부터 집에서 일하고 살림을 꾸려요. 아버지로서 집에 머문다면 바깥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아주 적거나 아예 없기까지 하달 수 있어요. 그렇지만, 집에서 아이들이랑 복닥이며 얻는 웃음과 기쁨과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삶도 사랑도 사람도 돈으로는 사지 못하거든요. 비싼값 치르며 바깥밥 사먹는대서 기쁜 하루가 아니거든요. 자가용을 굴리지 못하는 살림이지만, 아이들이랑 나란히 걷고 뛰면서 즐거워요. 들길을 걷고 멧길을 걸어요. 들꽃을 보고 멧꽃을 봐요. 풀포기와 나무를 언제나 벗삼아요.

 

 집에서 아이들과 살아가기에 두 아이는 천기저귀를 쓸 수 있어요. 천기저귀는 아버지가 도맡아 손빨래를 해요. 환경이니 전쟁이니를 떠나, 아이들 몸을 헤아리며 즐거이 천기저귀를 써요. 아니, 천기저귀를 대고 천기저귀를 빨래하는 삶이 즐거워요. 아이들을 씻기고 아이들을 먹이며 아이들하고 얼크러지면서 날마다 새 마음이 될 수 있어요. 내 어린 나날을 돌이키고 아이들 앞날을 꿈꿀 수 있어요.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따사로이 재우고,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작은 가슴에서 샘솟는 좋은 씨앗을 느낄 수 있어요.

 

 전쟁을 막거나 그치도록 하자며 평화를 생각하거나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사랑을 꿈꾸거나 생각하면서 천천히 평화로운 나날을 누리거나 즐길 수 있구나 싶어요. 평화는 평화를 말하거나 외친대서 찾아오지 않으니까요. 평화는 평화로운 삶을 사랑하는 하루하루가 바로 평화일 테니까요. (4345.2.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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