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에 Historie 1
이와키 히토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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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41] 이와아키 히토시, 《히스토리에 (1)》

 


 나는 지구가 동그랗게 생겼다고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학교에서 ‘지구는 동그랗다’ 하고 가르치지 않았다면 지구가 동그란 줄 생각하지 않으며 살았지 싶습니다. 그렇다고 ‘지구는 네모낳다’ 하고 생각하는 일 또한 없으리라 느낍니다. 지구라는 곳이 동그랗든 네모낳든 그닥 대수롭지 않을 테니까요. 내가 두 발을 디디며 누리는 삶을 생각하지, 지구 크기나 모양을 살피지 않을 테니까요.

 

 학교에서 ‘지구는 동그랗다’ 하고 가르칠 때에 ‘음, 그렇겠구나. 네모낳지는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판판하지 않고 둥그스름하다’는 느낌이 어떠한가 하고 궁금했습니다. 얼마나 널따란 땅덩어리이기에 둥그스름한 땅거죽이 둥그스름하다고 느끼지 못하며 지내는가 싶어 궁금했습니다. 지구별 깊은 곳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한복판을 바라보며 무엇이든 누구이든 곧게 선다고 하는데, 굴리는 힘이나 구르는 힘이나 어떻게 흐르는가 하는 대목이 궁금했어요. 바람에 부딪는 힘, 바람이 없을 때에 흐르는 힘, 햇살로 스며드는 빛과 따스함, 유리나 비닐을 한 겹 대었을 때에 따스함과 빛 말고 볕을 얼마나 받지 못하는가 하는 느낌, …… 이모저모 더 깊고 넓게 헤아리고 싶었어요.


- “하지만 이민족이라 치더라도 자넨 노예엔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군.” “하하하! 그건 좀 차별적 발언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주성을 선호하는 그리스인에 비해 다른 민족 쪽의 노예 성향의 인간이 많은 건 확실할 거네.” “ 당연합니다. 이건 차별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인력을 쓰는 분업제도예요.” “물론 노예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지. 불과 며칠 간의 여행에서조차 짐을 질 자가 없으면 곤란하니까.” (20∼21쪽)

 


 학교에서 ‘지구는 동그랗다’ 하고 가르칠 때에는 ‘지구는 동그랗다. 이런 줄 알아.’ 하고는 넘어갑니다. 언제나 조각조각 나눈 지식으로만 가르치고 끝납니다. 나는 이런 조각지식이 내키지 않습니다. 학교에 다니던 때이든 학교를 마친 뒤이든, 조각난 지식이 아닌 오래도록 돌아보는 삶으로 헤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학교 안쪽에서든 바깥쪽에서든, 삶을 들여다보도록 놓아주지 않습니다. 조각지식에 매달리도록 내몹니다. 조각지식에 사로잡힌 채 온삶을 사랑하며 살아갈 길을 생각하도록 풀어놓지 않아요.

 

 나는 내가 살아가는 곳이 지구라는 ‘별’이건 아니건 대수롭다고 느끼지 않아요. 지구‘별’이면 어떻고 지구‘마을’이면 어떤가 하고 생각해요. 내가 숨을 쉬고 밥을 먹으며 잠을 자는 이 하루가 대수롭다고 느껴요. 어떻게 이 목숨을 건사하고, 내 몸뚱이를 이루는 크고작은 세포와 핏덩이와 물방울은 저마다 어떠한 목숨인가 하는 대목이 궁금해요. 나는 커다란 덩이 하나인 목숨이면서, 내 한 목숨 이루는 작은 목숨들이 얼마나 많은가 궁금합니다. 내가 느끼는 내 목숨이란 큰 덩이 하나일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 큰 덩이를 이루는 작고작은 목숨 하나로 살다가 이렇게 큰 덩이 하나로 바뀌었는지 모른다고 느껴요.

 

 이를테면, 뼈마디를 이루는 작은 점 하나가 나일 수 있습니다. 꾸덕살이 되다가 벗겨지는 살점 하나가 나일 수 있습니다. 길게 자라다가 똑똑 끊어지는 손톱 끄트머리가 나일 수 있습니다. 길게 자라다가 빠지는 머리카락 한 올이 나일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에도 온갖 목숨이 끝없이 깃들 테지요. 머리카락 한 올에 깃든 작디작은 목숨도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면 더 너른 목숨이 수없이 숨쉴 테지요. 그저 사람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뿐이에요. 조각난 지식으로는 헤아리지 못할 뿐이에요.

 

 거꾸로, 지구라는 별로 살핀다면, 지구라는 별은 너른 누리에서 아주 조그마한 점입니다. 어쩌면, 내 머리카락 한 올에 깃든 아주 조그마한 점 같은 목숨이 지구별일 수 있어요. 곧, 내 머리카락 한 올에는 지구하고 똑같은 별이 깃들어 싱그러이 살아갈는지 몰라요. 수십 억이라는 해는 큰 몸뚱이 하나로는 너무 기나긴 해라 할 수 있지만, 머리카락 한 올로 치면 아무것 아닌 아주 짧은 해일 수 있어요.

 


- “괜찮을까? 서두르지 않으면…….” “아뇨! 여기선 서두르지 않고 당당하게 가야 해요!¨ ‘서투르게 잘못 움직이면 오히려 위험해.’ (68쪽)


 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딱히 누가 나한테 이런 생각을 심었다고 할 만한가 잘 모르나, 나는 어린 나날부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이란 곧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시험 문제 답을 찾는 일은 생각이 아닙니다. 흩어진 지식조각을 꿰맞추는 일입니다. 조각을 찾거나 맞춘다 해서 생각을 한다 할 수 없습니다. 가지런히 늘어놓을 뿐이니까요.

 

 생각하는 일이란 짚과 흙을 물어 집을 짓는 제비하고 눈을 마주치며 ‘너는 오늘 어떻게 살았니?’ 하고 마음으로 물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라고 느껴요. 파란 빛깔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하늘을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너는 오늘 어떤 물방울을 그러모아 비를 뿌리려 하니?’ 하고 마음으로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라고 느껴요.

 

 풀잎을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말을 겁니다. 꽃잎을 콧잔등으로 살살 부비며 말을 겁니다. 개미를 손등에 올려놓고 말을 겁니다. 씀바귀를 냠냠 씹으며 씀바귀가 흙에 뿌리내리며 보낸 나날을 헤아립니다. 젓가락을 손에 쥐며 어떤 쇠붙이가 어떤 땅속에 묻혔다가 누가 캐고 다듬고 빚어 이 젓가락 모양이 되었을까 하고 돌이킵니다.

 


- ‘당시 우리 집 정도의 재력이면 가정교사를 몇 명 붙여 수업을 집에서 할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 히에로뉴모스의 생각은 달랐다. 형 히에로뉴모스도 평범한 학교에 다닌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 좋다. 집에는 ‘도서실’도 있고,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글을 읽을 수 있다. 가장 마음 편안한 상태에서 세계가 펼쳐진다. 심지 굳은 걸음걸이……. 중요한 것이다. 가정교사가 매일 오게 되면 망가지고 만다.’ (132∼133쪽)


 이와아키 히토시 님 만화책 《히스토리아》(서울문화사,2005) 첫째 권을 읽습니다. 기원전 사람 이야기를 다룬다는 만화책인데, 나로서는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이 ‘기원전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예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나처럼 숨을 쉬고 물과 바람을 마시며 밥을 먹다가 새근새근 잠드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나는 오늘 숨을 쉽니다. 이이는 어제 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가 더 숨을 쉬지 않을 먼 앞날 숨을 쉬겠지요.

 

 만화책 주인공이 걸었던 길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고 되뇝니다. 내가 오늘 밟은 땅은 어떤 느낌으로 내 온몸으로 스며들었나 하고 돌아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앞으로 디딜 곳은 어떠한 삶과 사랑과 사람이 얼크러진 빛줄기 서릴까 하고 꿈꿉니다.

 


- “저번에도 말했잖니! 저런 사람들하고는……, 핫! 살아가는 세상이 다르니까 쉽게 말을 섞으면 안 된다고!” “그래요? 모두 좋은 사람들이던데.” “어머나, 얘가!” “그런데, 대체 무슨 얘길 하고 있었니?” “응, 아저씨들이 먼저 말을 걸어 왔는데, 페르시아의 얘기 몇 개 해 뒀더니 아주 좋아하더라구요.” (154∼155쪽)


 생각하는 사람일 때에 오늘을 느낍니다.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어제를 느낍니다.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모레를 느낍니다. 오늘과 어제와 모레가 흐르는 결을 살피고, 오늘과 어제와 모레가 어우러지면서 태어나는 내 삶을 받아들입니다.

 

 어떤 손재주와 무슨 글솜씨를 뽐내는 생각이 아닙니다. 삶을 밝히는 생각입니다. 사랑을 깨닫는 생각입니다. 사람을 아끼는 생각입니다.

 

 내 이름을 드날리려는 생각이 아닙니다. 내 살붙이를 찬찬히 굽어살피고, 내 동무를 가만히 어루만지며, 내 이웃을 따사로이 어깨동무하는 생각입니다.

 

 좋은 꿈을 생각합니다. 내 온몸에 차근차근 아로새길 좋은 사랑을 생각합니다. 내 마음으로 빚을 착한 삶 참다운 길 아름다운 터를 생각합니다. 역사란, 어느 이름난 사람들 발자국일 수 없습니다. 역사란, 생각하는 사람들 꿈을 그러모아 두고두고 대물림하는 좋은 이야기밥입니다. (4345.2.20.달.ㅎㄲㅅㄱ)


― 히스토리에 1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오경화 옮김,서울문화사 펴냄,2005.4.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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