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운 상말
603 : 어부지리
.. 둘이 싸우고 있을 때 저쪽에 있던 다른 아이가 홀랑 집어 갔어요. 누구 입에서 ‘어부지리’ 이런 말이 나와요. 떠들썩할 때 뭔가 배울 게 생기는 것 같아요 .. 《탁동철-달려라 탁샘》(양철북,2012) 6쪽
“싸우고 있을 때”는 “싸울 때”로 다듬습니다. “뭔가 배울 게 생기는 것 같아요”는 “뭔가 배울 수 있어요”나 “뭔가 배워요”나 “뭔가 배우는구나 싶어요”나 “뭔가 배우곤 해요”로 손봅니다.
어부지리(漁夫之利) : 두 사람이 이해관계로 서로 싸우는 사이에 엉뚱한 사람이
애쓰지 않고 가로챈 이익을 이르는 말
- 무소속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되었다 /
화목지 못한 짬을 이용하여 이간하며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애쓰고 있다
누구 입에서 ‘어부지리’ 이런 말이 나와요
→ 누구 입에서 ‘거저 먹네’ 이런 말이 나와요
→ 누구 입에서 ‘앉아서 먹네’ 이런 말이 나와요
→ 누구 입에서 ‘주워먹기’ 이런 말이 나와요
…
초등학교 아이들 입에서 ‘어부지리’라는 중국말이 쉽게 튀어나온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또 아이들이 보는 텔레비전이나 만화책에서나 이러한 중국말을 고사성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거나 들려주니까, 쉽게 튀어나올 만합니다.
이 중국말이 좋거나 나쁘거나 하고 따질 까닭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이러한 낱말을 쓸 만하면 쓸 노릇입니다. 아이들한테 이러한 낱말을 가르칠 만하다면 가르칠 노릇이에요.
둘이 다투는 사이 다른 사람이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얻는다면, 다른 한 사람은 ‘거저로 얻’습니다. ‘그냥 얻’겠지요. 그래서, 한겨레는 한겨레 나름대로 ‘거저얻기’나 ‘거저먹기’나 ‘거저갖기’처럼 새 낱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그냥얻기’나 ‘그냥먹기’나 ‘그냥갖기’처럼 새 낱말을 빚어도 돼요.
가만히 앉아서 얻는다면 ‘앉아얻기’나 ‘앉아먹기’나 ‘앉아갖기’처럼 새롭게 낱말을 빚을 만합니다.
국어사전에는 안 실리는 낱말이지만, 사람들은 곧잘 ‘주워먹다’나 ‘주워먹기’라는 낱말을 씁니다.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서 먹거나 어느 자리에 놓인 것을 손으로 집어서 먹을 때에도 ‘주워먹다-주워먹기’를 쓰지만, 둘레 사람들이 다투거나 복닥이는 틈바구니에서 ‘아무 힘을 안 들이고 얻을’ 때에 이 낱말을 씁니다.
무소속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되었다
→ 무소속 후보가 주워먹듯 뽑혔다
→ 무소속 후보가 주워먹기로 뽑혔다
→ 무소속 후보가 얼결에 뽑혔다
→ 무소속 후보가 엉겁결에 뽑혔다
→ 무소속 후보가 얼떨결에 뽑혔다
…
그런데, 이 보기글처럼 정치나 사회나 문화나 예술이라 하는 자리에서 ‘주워먹다-주워먹기’ 같은 낱말을 쓰는 일을 정치나 사회나 문화나 예술이라 하는 자리에서는 썩 달가이 여기지 않습니다. 품위가 낮다고 여겨요. 마치 “밥 먹자”라 말하면 품위가 낮고 “식사 합시다”라 말해야 품위가 있는 듯 잘못 생각하는 모습하고 같습니다.
“무소속 후보가 뽑혔다”를 밝히는 자리에서 ‘주워먹다-주워먹기’를 넣는 사람은 퍽 드물어요. 술자리 같은 데에서 가벼이 말하기는 하더라도, 신문이나 책에서 쓰지는 못해요. 그래서 이 대목에서는 “얼결에 뽑혔다”나 “엉뚱하게 뽑혔다”나 “뜻밖에 뽑혔다”처럼 적으면 잘 어울려요.
화목지 못한 짬을 이용하여 이간하며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애쓰고 있다
→ 살갑지 못한 짬을 틈타 둘 사이를 헐뜯으며 떡고물을 얻으려고 애쓴다
→ 살갑지 못한 짬을 틈타 둘 사이를 해코지하며 배를 채우려고 애쓴다
…
중국말 ‘어부지리’를 쓰는 자리는 꽤 많습니다. 이 낱말 씀씀이는 차츰 늘어납니다. 어른들은 이 낱말을 꽤 일찍부터 아이들한테 가르칩니다. 밑앎이 되는 말을 가르치기보다는, 기본상식이라는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를 가르쳐요. 밑넋을 다스리는 밑말을 옳고 바르며 알뜰히 들려주기 앞서, 사회살이나 정치살이나 문화살이에서 겉멋을 부리는 전문용어나 외래말을 자꾸 지식으로 집어넣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오늘날 이 나라 삶흐름은 밑바탕을 튼튼히 다스리면서 밑삶을 아름다이 일구는 쪽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자꾸자꾸 겉치레로 흘러요. 아름다이 누리는 삶, 사랑스레 나누는 삶, 참다이 빛내는 삶하고는 더 멀어져요.
아름다이 누리는 삶일 때에 아름다이 나누는 말이에요.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는 삶일 때에 사랑스레 주고받는 말이에요. 참다이 빛내는 삶일 때에 참다이 갈고닦는 말이에요.
나는 말만 예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말만 멋들어지게 쓰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말만 똑부러지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말만 빈틈없이 쓰고 싶지 않습니다. 삶이 말이 되고, 말이 삶으로 거듭나도록 하고 싶습니다. 좋은 꿈으로 이루는 삶이면서 좋은 말을 빛내고 싶습니다. 좋은 사랑을 꽃피우는 삶이면서 좋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4345.2.5.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