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75 : 자연을 잃은 책읽기
‘한 사진가와 살아온 14권의 사진책들’이라는 이름이 작게 붙은 사진책 《사진과 책》(안목)이 2011년 12월에 조용히 태어났습니다. 조용히 태어난 책을 조용히 읽습니다. 어수선히 떠들지 않는 목소리를 담은 책은, 갓 태어날 무렵에도 언론사들이 어수선히 떠들며 알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언론매체 소개를 널리 받지 못했습니다. 아니, 언론매체 소개를 거의 받지 못했어요.
사진과 함께 살아가는 박태희 님은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2008)와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2011)를 한국말로 옮겼습니다. 손수 찍은 사진을 담은 《사막의 꽃》(2011)을 내놓기도 했으며, 이제 ‘사진을 말하는 사진책’인 《사진과 책》까지 내놓으며 사진밭 이야기를 한껏 북돋우는 길을 작게 엽니다.
로버트 아담스라는 미국사람이 일군 사진책 《The New West》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박태희 님은 “만약 그의 사진에서 단순히 환경의 위기를 일깨우는 경고성 메시지만 읽혀지거나 새로운 지형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아름다움만 느껴졌다면, 그의 사진집은 내 책장 한켠에 처박혀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었을 것이다. 반면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의 사진집을 펴놓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위로받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분명 풍경을 넘어선 특별한 점이 있다는 얘기다(99쪽).” 하고 말합니다. 지치고 힘들 때에 읽으며 새힘을 북돋운 사진책이라고 여긴 나날이었기에, 이런 사진책 열네 권을 그러모아 새로운 이야기책 하나 내놓겠지요. 박태희 님은 로버트 아담스라는 사람을 읽고, 나는 박태희라는 사람을 읽으며 로버트 아담스를 나란히 읽습니다.
《사진과 책》이 태어나던 즈음, 모처럼 서울마실을 하는 길에 독립문 영천시장 어귀에 자리한 헌책방 〈골목책방〉을 들르는데, 마침 《한국의 발견》(뿌리깊은 나무,1983) 열한 권이 첫판으로 예쁘게 꽂힌 모습을 보았습니다. 낱권으로 하나씩 사서 읽다가 그예 짝을 못 맞추었는데 참 반갑구나 하고 인사하며 장만했습니다. 짐이 무거워 택배로 부쳐 주십사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즐거이 받아서 읽습니다. 열한 권 가운데 전라남도 책을 먼저 뽑아서 고흥군 이야기부터 살핍니다. 1983년 통계로 고흥군은 19만이 넘게 살았고 외국사람은 열둘뿐이었답니다. 2012년 고흥군은 7만을 살짝 넘고 외국사람은 오백 안팎이에요. 1983년에 서울이나 다른 큰도시는 몇 만에 이르는 사람이 살았고 2012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까요. 이 숫자는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까요.
서른 해 사이에 거의 1/3로 줄어든 고흥사람 숫자는 앞으로 더 줄어들밖에 없습니다. 이동안 도시사람 숫자는 차츰 늘어날 테고, 도시에서는 집이며 물이며 일자리이며 모자라다 하겠지요. 도시에서는 집을 새로 짓고 길을 새로 내며 자동차 새로 늘어나느라 자연이 더 무너져야 합니다. 자연을 더 파헤치고 아파트와 높은 건물 잔뜩 늘려야 해요.
스스로 자연을 잃는 삶이고 맙니다. 스스로 자연을 잃는 넋이 되고, 스스로 자연을 잃는 사랑으로 흐릅니다. 돈과 문명을 얻는 만큼 자연과 사랑을 잃고, 돈과 문명을 읽는 만큼 자연과 사랑을 읽지 못합니다. (4345.2.5.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