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23
야마모토 켄조 글, 이세 히데코 그림, 길지연 옮김 / 봄봄출판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과 어떤 삶을 꾸리고 싶은가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29] 이세 히데코·야마모토 켄조,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봄봄,2011)


 어버이가 쓰는 말이 아이가 쓰는 말입니다. 어버이는 이녁이 아이였을 적에 이녁을 낳아 함께 살아가던 어버이가 쓰는 말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씁니다. 처음에는 이녁 어버이가 쓰던 말로 생각하고 꿈꾸며 살아가지만, 차츰차츰 이녁 스스로 부대끼는 삶터에서 듣고 보며 읽는 말마디로 생각하고 꿈꾸며 살아갑니다. 천천히 자라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을 무렵, 이제는 이녁 나름대로 새로 갈고닦은 말과 지난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을 이녁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이녁 아이는 앞으로 스스로 갈고닦을 말에다가 이녁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을 어우르면서 새로운 말삶을 돌보겠지요.

 

 어버이가 꾸리는 삶이 아이가 배우는 삶입니다. 어버이 자리에 선 나는 나 스스로 꾸리는 삶 그대로 아이한테 하나하나 가르칩니다. 나무를 바라보고 풀이랑 흙을 쓰다듬으며 밥이랑 옷이랑 집을 건사하는 매무새 모두 어버이가 아이한테 차근차근 가르칩니다. 씨앗을 심어 알뜰히 돌보는 삶을 가르칠는지, 노래와 놀이와 이야기 모두 판에 박은 울타리에 갇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삶을 가르칠는지, 죽은 글과 지식을 책이나 텔레비전으로 가르칠는지, 모두 나 스스로 판가름합니다.

 

 어버이는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아이는 배우는 사람입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며 또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살림을 꾸립니다. 아이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고픈가를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제 어버이하고 사랑을 나눕니다.

 

 좋은 삶을 바란다면 좋은 삶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삶을 이루는 길을 어떻게 갈고닦아야 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좋은 삶을 함께 꾸리는 나날은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목숨을 잇는 밥은 어떻게 마련해서 어떻게 차리는가를 생각합니다. 목숨을 돌보는 옷은 어떻게 지어 어떻게 입고 간수하는가를 헤아립니다. 목숨을 다스리는 집은 어떻게 세워 어떻게 돌보는가를 살핍니다.


.. 세발이는 이 길을 마음대로 돌아다녀. 그 누구도 세발이를 가둬 두지 못해. 어느 날은 거리를 온통 굴러다니기도 하지. 그러면 온몸이 쓰레기투성이가 돼 … 세발이는 마음이 아주 넓어.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가면 반갑다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그건 “같이 놀래?”라고 하는 인사야. “당장 꺼져!” 같은 말은 절대 안 해 ..  (4쪽)


 아이들은 초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다이 자라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야 동무를 사귀거나 이웃을 만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야 머리가 트거나 생각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야 일자리를 얻거나 돈을 벌 수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가슴속에 샘솟는 사랑을 아끼면서 스스럼없이 나누는 길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제 다리로 디딘 터전을 곱게 돌보는 길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목숨을 살찌우는 밥을 찾아야 합니다. 목숨을 북돋우는 옷을 알아야 합니다. 목숨을 빛내는 집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돈으로 되는 밥이 아니요, 돈으로 이루는 옷이 아니며, 돈으로 만드는 집이 아닙니다. 사랑도, 꿈도, 생각도, 이야기도, 어떠한 돈으로도 일구지 못합니다. 사랑도, 꿈도, 생각도, 이야기도, 바로 나 스스로 일구는 삶으로 빚습니다.

 

 아이 스스로 생각길을 여는 밑돌이 되기에 글을 가르칩니다. 아이 스스로 생각문을 여는 밑거름이 되기에 씨앗을 만져 심도록 합니다. 아이 스스로 생각날개 펴는 밑바탕이 되기에 실과 바늘을 놀려 옷을 짓도록 합니다. 아이 스스로 생각결 추스르는 밑자락이 되기에 온몸을 움직여 신나게 뛰고 달리고 구르고 노래하게 이끕니다.


.. 세발이는 킁킁거리며 내 몸 냄새를 맡아. 혹시 내 마음이 변하지 않았을까 살피는 거야. 간지러웠어 ..  (10쪽)


 누구나 내 보금자리가 배움자리입니다. 어느 아이나 ‘나를 낳은 어버이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삶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아이라도 ‘나를 낳은 어버이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사랑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좋다 하는 배움자리를 찾으려 한다면, 내 삶자리 또한 이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아주 훌륭하다 하는 배움자리가 있다면, 내 삶을 꾸리는 일을 이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또는, 내 삶을 꾸리는 일을 찾는 데에서 아주 훌륭한 배움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데에서 아주 좋은 배움자리를 일구어야 합니다.

 

 목숨을 누이는 집이고, 목숨을 싱그러이 보살피는 집입니다. 교통이 좋다거나 문화시설이 가까이 있다거나 하대서 마련하는 집이 아닙니다. 언제까지나 살아갈 집이요, 언제나 내 몸을 추스르는 집이며, 언제라도 쉬고 일하며 살림을 이루는 집입니다.

 

 나무를 심어 쓰다듬는 집입니다. 씨앗을 뿌려 내 몸을 살찌울 밥을 얻는 집입니다. 아이들하고 나눌 사랑을 펼치는 집입니다.

 

 학습능력이나 수행평가란 무엇일까요. 행동발달이나 학력신장이란 무엇일까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시험문제 쇠사슬을 덮어씌워 바보가 되도록 내몰까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시험문제 가득한 책을 쑤셔넣어 멍청이가 되도록 만들까요.


.. 언제부터 이렇게 있었을까?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내가 몇 번을 부르자 세발이는 눈을 뜨고 나를 봤어. 초롱초롱한 눈이야 ..  (24쪽)


 야마모토 켄조 님 글에 이세 히데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봄봄,201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발이 셋인 개와 ‘말 없는 말을 나누’며 사귄 ‘나(주인공)’는 어버이를 잃고 다른 집에 맡겨집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미움을 받습니다. 삶을 누리지 못하고, 눈칫밥을 먹습니다. 꿈을 키우지 못하고, 내동댕이쳐집니다. 미움받고 버림받는 내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삶을 누리지 못하고 눈칫밥을 먹는 내가 집(얹혀 사는 집)에서 무엇을 함께할 수 있을까요. 꿈을 키우지 못하고 내동댕이쳐지는 내가 마을에서 어떻게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까요.

 

 세발이는 세 발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두 발로 서서 살아갑니다. 다리 하나 잃어 외발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다리 넷 멀쩡해 네 발로 살아가는 개와 고양이가 있습니다.

 

 몸뚱이는 멀쩡하다지만 마음이 메마르고 마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뚱이는 다치거나 아프지만 마음이 너그럽고 따사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삶이란 어떠할 때에 삶이고, 사랑이란 어떠할 때에 사랑일까요. 나는 내 아이하고 어떤 삶을 함께하면서 어떤 사랑을 꽃피울 때에 아름다울까요.


.. 차를 탔어. 세발이가 나를 보았어. 나는 손을 흔들지 않았어. 수없이 눈으로 말했으니까 손을 흔들지 않은 거야 ..  (30쪽)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찾습니다. 내 아이를 낳기 앞서까지 아이였던 나도 스스로 길을 찾습니다. 나를 낳은 어버이도 나를 낳기 앞서까지 아이로 살아가며 길을 찾습니다. 서로서로 삶을 함께하면서 무언가를 가르치고 무언가를 배우며 무언가를 나란히 들여다봅니다.

 

 그림책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에 나오는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즐겁거나 아름다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그림책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에 나오는 들개는 어떻게 지내야 즐겁거나 아름다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어버이 잃은 나를 맡은 다른 집 어버이와 아이는 서로서로 어떻게 바라보며 삶을 꾸려야 즐겁거나 아름다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외톨이로 지내는 나를 바라보는 학교와 마을 동무들은 서로서로 어떻게 어깨동무해야 즐겁거나 아름다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놀림받고 따돌림받고 미움받는 세발이인데, 이 세발이를 바라보는 마을사람들은 왜 놀림과 따돌림과 미움으로 세발이를 바라보아야 할까요.

 

 나는 아이들과 좋은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옆지기와 좋은 사랑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우리 보금자리는 사랑이 자라는 터가 되기를 꿈꿉니다. 우리 삶자리는 사랑이 열매를 맺는 누리로 아름다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4345.1.27.쇠.ㅎㄲㅅㄱ)


―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 (이세 히데코 그림,야마모토 켄조 글,길지연 옮김,봄봄 펴냄,2011.3.10./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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