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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나를 물들이다 - 법정 스님과 행복한 동행을 한 사람들
변택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2년 1월
평점 :
서로 물들이는 어여쁜 삶
[책읽기 삶읽기 96] 변택주, 《법정, 나를 물들이다》(불광출판사,2012)
흙으로 돌아간 법정 스님을 되새기는 이야기책 《법정, 나를 물들이다》(불광출판사,2012)를 읽습니다. 이 책은 법정 스님이 ‘비우기(무소유)’를 말하지 않았다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법정 스님은 ‘함께 살아가기’를 말했다는 줄거리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 “법정 스님이 신념을 가지고 말씀하셨어요. 문화, 사회, 역사를 봤을 때 종교 목적이 종단 구성일 수는 없다고.” .. (21쪽/장익)
.. 1982년 전시회 때문에 귀국한 방혜자 선생. 고국에 돌아와서 흙도 밟아 보지 못하고 시멘트 바닥 위만 걷다가 돌아가게 되었다며 후배에게 하소연했다 .. (53쪽/방혜자)
곰곰이 헤아리면, ‘비우기’란 ‘함께 살아가’는 밑거름입니다. 내 가진 것을 비우거나 내려놓을 때에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요. 내 가진 것을 비우거나 내려놓아야 비로소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내 이름값을 움켜쥐면서 동무를 사귀지 못합니다. 내 돈을 거머쥐면서 이웃을 만나지 못합니다. 내 콧방귀를 높이면서 살붙이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칭얼대는 아이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모든 아이들한테 어머니입니다. 이녁이 아이를 낳기 앞서 변호사였다든지 회계사였다든지 의사였다든지 대통령이었다든지 시장이었다든지 하는 이름값은 부질없습니다. 아이는 그저 어머니를 바라봅니다.
어린이하고 손을 잡고 노는 아버지는 모든 아이들한테 아버지입니다. 이녁이 아이들과 복닥이기 앞서 공무원이었다든지 군인이었다든지 회사원이었다든지 흙일꾼이었다든지 하는 이름은 덧없습니다. 아이는 그예 아버지하고 놀 뿐입니다.
어버이가 돈이 많대서 아이들이 기뻐할 까닭이 없습니다. 흙을 일구려고 호미를 쥔 사람이 국회의원이건 택시기사이건 흙이 달리 여길 까닭이 없습니다. 햇살은 청소 일꾼한테도 비추고, 큰회사 사장실에도 비춥니다. 바람은 바닷가 고기잡이한테도 불고, 초등학교 교무실 창문으로도 붑니다.
스스로 돈과 이름과 힘을 비우거나 내려놓아야 비로소 눈을 밝힙니다. 눈을 밝힐 때에 마음을 밝히고, 마음을 밝힐 때에 사랑을 밝힙니다.
.. “서울 살았으면 얼마를 더 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건 가상이잖아요. 이루어지지 않은, 생각 속 손해는 손해가 아니에요. 서울 사는 시간을 줄여서 큰 병에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보면 시골 가길 얼마나 잘했어요.” .. (127쪽/이계진)
.. 노일경 목사는 시골교회 목회를 할 때, 가는 곳마다 있는 서낭당을 보면서, ‘개신교에서는 서낭당을 왜 죄악이라며 깎아내리고 무시할까?’ 갸웃거렸다. 민간 무속문화인 서낭당은 누군가에게 기대고자 하는 마음일 뿐인데, 그 대상이 나무든 돌이든 짐승이든 사람이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공경하며 조심스런 마음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자기들만이 유일하다고 얘기하며 종교를 빌미로 권력을 휘두르고 .. (200쪽/노일경)
누구한테서 무얼 배워야 훌륭하지 않습니다. 누구한테서 배우지 않을 때에는 못 배운다 말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이기에 잘 가르치지 않습니다. 누구라서 못 배우지 않습니다.
훌륭하다는 스승이나 제자란 따로 없습니다. 모자라다는 스승이나 제자 또한 따로 없습니다. 언제나 같은 사람이면서, 늘 서로서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프랑스로 배우러 떠나야 그림을 배우지 않습니다. 미국으로 배우러 떠나야 의학을 배우지 않습니다. 쿠바로 배우러 떠나야 생태나 공동체를 배우지 않아요. 티벳으로 배우러 떠나야 불교나 깨우침을 배우지 않아요.
학교에서는 재주를 가르치겠지요. 무슨무슨 기술이라 하는 이런 재주와 저런 재주를 가르치겠지요. 교과서를 읽으며 지식이나 정보를 얻겠지요. 교과서를 잘 익혀 시험점수 잘 낼 수 있겠지요.
그러나, 무슨 재주가 있기에 훌륭하다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술이 빼어나대서 훌륭하다 말하지 않아요. 시험점수 높으니 똑똑하거나 훌륭하다 말하지 않습니다.
싱싱 내달릴 수 있기에 자동차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계를 잘 만지작거리기에 기술자가 아닙니다. 예술작품을 빚기에 예술쟁이가 아니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이 있을 때에 쟁이가 되고 장이가 되며 꾼이 돼요.
.. 법정 스님에게 조선대 법대에 들어갔다고 말씀드리니, 스님은 “법학을 하는 데 왜 사회학이 중요하고, 정치학이 중요하고, 심리학이 중요한지 아느냐? 그 기반 위에 법이 있기 때문이다. 바탕을 닦지 않고, 법학만 한다면 그저 시험공부일 뿐인 죽은 공부다. 특히 철학책은 꼭 읽어야 한다. 사유와 성찰이란 커다란 물줄기에서 법학은 새 발에 난 피일 뿐이다. 무식한 놈이 되지 않으려면 폭넓게 사유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씀했다 .. (224쪽/문현철)
.. “제가 출가하는 봄에 불일암을 짓기 시작해서 계를 받는 날 낙성식을 했으니, 불일암과 제 출가 나이가 똑같아요. 그때 촛대처럼 가는 후박나무 묘목을 심었어요. 불일암에 갈 때마다 후박나무를 만지며 숨결도 느껴 보는데, 그 가냘팠던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서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요.” .. (287쪽/현장)
《법정, 나를 물들이다》에 나오는 사람들은 법정 스님을 떠올리면서 한결같이 이야기합니다. 당신들이 그닥 거룩하거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당신들이 만나면서 알고 지낸 스님 한 분은 ‘우상’이나 ‘거룩한 님’으로 섬기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모두 같은 사랑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나와 누군가가 서로 좋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를 만난다면 누군가와 내가 좋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지만, 웃물이든 아랫물이든 같은 물이에요. 골짝물도 냇물도 바닷물도 똑같이 물이에요. 빗물도 우물물도 샘물도 나란히 물입니다.
흐르는 자리가 조금 다르겠지요. 선 자리가 살짝 다르겠지요. 모양과 빛깔과 내음이 저마다 다르겠지요.
흐르는 자리가 달라 모두 예쁜 물이 됩니다. 선 자리가 달라 서로 고운 물이 됩니다. 모양과 빛깔과 내음이 이래저래 달라 한결같이 맑은 물이 됩니다.
법정 스님은 여러 사람들을 물들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은 법정 스님을 물들였습니다. 서로 즐겁고 기쁘게 물들이면서 함께 살았습니다.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따스하고 너그러이 물들였습니다. (4345.1.19.나무.ㅎㄲㅅㄱ)
― 법정, 나를 물들이다 (변택주 씀,불광출판사 펴냄,2012.1.5./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