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진오기굿 한국의 굿 20
조흥윤 지음 / 열화당 / 1993년 3월
평점 :
절판


김수남 님 <한국의 굿> 사진책 스무 권 가운데 오직 하나만 검색됩니다. 그나마 이 한 권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20번 사진책으로 소개하는 글을 쓸까 하다가, 아무래도 상징성이 있어, 저는 1권으로 소개글을 씁니다.

 

 

 


 내 이웃과 사진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4] 김수남, 《한국의 굿 1 황해도 내림굿》(열화당,1983)

 


 1983년 7월 20일 첫선을 보인 ‘열화당 한국의 굿’ 스무 권 1번을 빛내는 《황해도 내림굿》(열화당,1983)은 첫 사진 첫 글을 “81년 6월 23일 서울 석관동에 있는 황해도 큰만신 김금화의 집에서 내림굿이 있었다(17쪽).’로 엽니다. 첫 장으로 깃든 사진은 책 뒤쪽에도 자그맣게 실립니다. 이 사진 한 장은 자그마치(?) 스무 권으로 꾀한 《한국의 굿》을 여는 실타래가 되면서, 이제껏 한겨레 굿놀이와 굿판과 굿잔치를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바라보거나 가르치거나 생각하도록 이끌던 흐름을 따사로이 보듬으려는 손길이 됩니다. 엉뚱한 눈길을 바로잡는다든지, 터무니없는 손길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저 곱게 바라보는 사랑과 꿈을 이야기합니다.

 

 사진책 《한국의 굿》 스무 권을 펴낸 열화당 출판사 편집부는 책머리에, “무속사진을 찍는 사람이 학자일 경우에는 사진이라고 하는 전달매체의 특징을 백분 살리는 데에 미흡하여 무속의 아름다움과 품위를 놓치기 쉽다. 그와 반면에 사진전문가일 경우에는 무속 내용에 대한 이해에 한계가 있어 그 본령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있다. 때문에 때로는 본래의 의미와 품위를 왜곡 변질시키는 무속사진이 시각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공개되는 경우조차 없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무속이 어찌해서 우리 문화의 고향일 수밖에 없는가를 깨닫고 느끼게 하기보다는 사라져 가고 있는 관광자료에 불과한 민속이나 미신이라고 설명하려는 무속사진들이 더이상 쏟아져 나오기 전에, 전국의 무속을 정리하고 무속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릴 시점에 이르렀다(이 책을 간행하면서,12쪽).” 하고 적습니다. 나는 이 첫머리 글을 읽던 고등학생 때(1991년)나 오늘(2012년)이나 늘 같은 마음입니다. 책 하나 내놓으며 이렇게 머리글을 붙이던 일이란 1976년에 태어난 잡지 《뿌리깊은 나무》와, 이곳에서 1981년에 내놓은 《민중 자서전》이랑, 1983년에 내놓은 《한국의 발견》 뒤로는 처음이자, 이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이러한 말마디를 새로 듣기 어렵지 않나 싶어요.

 

 곰곰이 헤아리면, 이와 비슷한 말마디를 내놓은 책으로 ‘대원사 빛깔있는 책들’이 있다고 느껴요. 수수한 여느 사람들 삶에서 문화를 읽고 전통을 느끼며 역사를 살피는 이야기책이 거의 태어나지 못하는 채, 으레 연구실과 자료실에서 쌓이는 연표와 통계는 온통 ‘수수한 여느 사람들을 다스리는 권력자’ 쪽에서 바라보는 책만 쏟아지는데, 《한국의 굿》 스무 권은 이러한 사진밭 흐름에 좋은 사랑씨앗이 되려고 했구나 싶어요.

 

 더 되짚으면, 이들 책에 앞서 예용해 님이 1963년에 빚은 《인간문화재》(어문각)라는 책이 있기에, 한겨레 삶자락을 살가이 돌아보는 기틀을 닦을 수 있다고 말할 만합니다. 따로 책이라는 틀로 무언가 보여주지 않더라도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언제나 사랑스레 살았어요. 애써 역사나 문화나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하루하루 즐거우며 고맙게 맞이했어요. 누군가 조선 막사발을 첫손 꼽지 않더라도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막사발을 썼고 수저를 썼어요. 한겨레 문화와 역사와 예술과 전통이라 한다면, 밭을 일구는 호미 한 가락입니다. 쌀겨나 티를 까부르는 키 하나입니다. 옷을 기우는 바늘 하나이고, 갓난쟁이한테 대는 기저귀 하나예요. 궁중에서 입는 옷이 되어야 전통이나 문화가 되지 않아요.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살림집에서 늘 입는 옷이 바로 전통이나 문화예요. 그런데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집에서는 이러한 옷을 전통이나 문화라고 바라보지 않아요. 그저 삶입니다.

 

 사진책 《한국의 굿》 스무 권에 나오는 굿판 굿마당 굿잔치 굿놀이 사람들 몸가짐과 차림새 또한 남다르다고 여길 모습이 아닙니다. 그저 예부터 이녁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랑한 모습이에요. 애써 돋보이도록 꾸미는 모습이 아니에요. 여느 삶 모습이에요. 일부러 도드라지게 덧대는 모습이 아니에요. 꾸밈없이 살아가는 모습이에요.

 

 더 높지 않으나, 더 낮지 않습니다. 더 높여야 하지 않고, 더 낮춰야 하지 않아요.

 

 이리하여, 한겨레에서 문화를 찾거나 예술을 바라거나 전통을 지키려 하는 어떤 흐름이 있다면, 김수남 님이 사진기를 들고 ‘한국의 굿’을 찍었다 할 때에, 어느 자리에선가는 ‘한겨레 옷’을 찍을 법했어요. ‘한겨레 집’을 찍고 ‘한겨레 밥’을 찍으며 ‘한겨레 길’과 ‘한겨레 논밭’과 ‘한겨레 바다’와 ‘한겨레 마을’을 찍을 만했어요. 이리하여, ‘한겨레 마을’까지는 아니나 《제주의 마을》이라는 이름을 단 자그마한 이야기책이 반석이라는 출판사에서 꽤 많이 나온 적 있어요. 엮음새가 너무 투박하기는 했으나, 제주섬에서 제주 마을만 돌아본 ‘제주의 마을 시리즈’는 참으로 소담스러운 선물이라 여길 ‘여느 사람 삶을 톺아보려는 사랑몸짓’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유산을 두루 돌아다니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문화유산을 두루 밟으며 한겨레 옛삶을 살필 만해요. 이러한 데에 애틋하게 눈길을 보내는 삶이라 한다면, 언젠가는 ‘한겨레 오늘 삶’을 깨달아, 전통이든 역사이든 문화이든 예술이든 어디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는 하나도 없는 줄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 우리는 ‘엉뚱하게 적바림되며 참뜻하고 동떨어질까 걱정스러운’ 한국굿 이야기를 소담스레 담은 《한국의 굿》 스무 권을 만날 수 있어요. 아쉽다면,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가까스로 만난다 할 텐데, 아직 우리 스스로 우리 오늘 삶을 착하며 곱게 돌아보거나 보듬는 손길이랑 눈길을 북돋우지 못한 탓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아직 ‘한겨레 골목길’조차, ‘한겨레 숟가락’조차, ‘한겨레 비녀’조차, ‘한겨레 바지랑대’조차, ‘한겨레 구멍가게’조차 꾸밈없이 바라보며 얼싸안지 못해요.

 

 201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한테 1980년대는 서른 해나 지난 아스라한 옛삶입니다. 2040년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한테는 2010년대 오늘은 참 아스라한 옛삶이에요. 2070년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한테 2010년대는 무척 아스라한 옛삶이에요.

 

 전통이나 문화나 역사나 예술은 어디 멀리 있지 않아요. 바로 오늘 우리가 두 발 디딘 이 자리 삶자락이 전통이요 문화요 역사이며 예술이에요. 내가 살아내는 하루가 전통이에요. 내가 누리는 보금자리가 문화예요. 내가 먹는 밥이 역사예요. 내가 살붙이랑 나누는 이야기가 예술이에요.

 

 《한국의 굿 1 황해도 내림굿》 책날개 뒤쪽에 김수남 님이 적은 맺음말을 읽습니다. “아마 삶과 죽음, 고통과 환희, 좌절과 희망, 이런 것들을 가장 극렬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굿판일 게다. 어차피 사회와 시대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그래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까지 되어 버린 굿을 찍으면서 지난 10여 년간의 작업이 최소한 하나의 증언,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기를 꿈꾼다. 한 계층이 처한 시대적 상황, 그리고 그 속한 사회에서 변모해 가는 삶의 현장을 남기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나로서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김수남 님은 ‘굿판을 사진으로 찍었다’기보다 ‘사람들 살아가는 터전’을 사진으로 찍은 셈입니다. 김수남 님 좋은 이웃을 예쁘게 사귀면서, 이 이웃들하고 사진으로 이야기꽃을 피운 셈입니다. (4345.1.14.흙.ㅎㄲㅅㄱ)

 


― 황해도 내림굿 (김수남 사진,김인회·최종민 글,열화당 펴냄,1983.7.20./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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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01-1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굿』이라는 책을 지난달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살펴본 적이 있었답니다. 정말 인상적이고도 다양한 사진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어찌보면 우리들 삶의 깊숙한 뿌리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도 많이 받았었습니다.

마침 동네 도서관에도 딱 한권의 책만 있던데, 알라딘 서재에서 이 책에 관한 멋진 글을 만나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네요. 아름답고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숲노래 2012-01-14 23:09   좋아요 0 | URL
예나 이제나
이만 한
사진을 찍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너무 적어요.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는 늘 틀에 박힌 대로만 배우고 길들여지니
학교를 다니며 사진을 배우면 찍지 못한다 할 텐데,
그래도 누군가 한 사람 이렇게 남겼으니
고마운 노릇이라고 여겨야 할까 싶기도 해서
많이 슬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