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 - 엄마와 보육사가 함께 슨 솔깃한 자연교육이야기
아이카와 아키코 지음, 장희정 옮김 / 호미 / 2011년 10월
평점 :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뜻
[사랑하는 배움책 3] 아이카와 아키코,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2011)
- 책이름 :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
- 글 : 아이카와 아키코
- 옮긴이 : 장희정
- 펴낸곳 : 호미 (2011.10.24.)
- 책값 : 13000원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간대서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며 살아가기에 더 홀가분하지 않습니다. 훌륭하게 삶을 짓는 사람은 어떠한 얼거리나 터전에서도 훌륭하게 삶을 짓습니다. 홀가분하게 삶을 빚는 사람은 어떠한 곳 어느 때라도 홀가분하게 삶을 빚습니다.
일본사람 아이카와 아키코 님이 쓰고 엮은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2011)에 나오는 ‘숲 유치원’에서 아이를 함께 키운 어느 어머니는 “육아를 하기 전까지는 간단하고 편리한 것만을 추구했지만, 아이를 앞에 놓고 작은 일이지만 날마다의 삶을 신중하게 다시 돌아보곤 한다(195쪽).”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한테 들어맞을 말은 아닐 테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아이와 함께 살아가지 않는 동안 ‘작은 데까지 꼼꼼히 살피며 내 삶 되짚기’를 못하곤 합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작은 데까지 찬찬히 헤아리며 내 삶 돌아보기’를 못하거나 안 하는 사람이 무척 많아요.
.. 아이들은 이백 미터 남짓 한 산길을 한 시간쯤 걸려 천천히 이동하면서 벌레하고 놀기도 하고 나무 열매나 낙엽, 꽃잎을 줍기도 한다 … 움직이는 동물들은 표정이 있다. 웃고 찡그리는 표정에서 아이들은 감정을 느낀다 … 산골짜기에서 나는 이른 봄의 풀 냄새, 흙냄새, 짐승들의 똥 냄새, 향긋한 꽃향기 ……. 자연에는 도시에서는 맡을 수 없는 다양한 냄새가 있다 .. (20, 25, 35쪽)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에 온누리를 더 두루 살피지는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내 삶을 더 낱낱이 헤아리지는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갈 때에는 아이가 언제나 내 곁에 붙으며 같이 움직이니, 이 아이 눈썰미와 눈높이와 눈길로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이 아이 눈썰미와 눈높이와 눈길에서는 아이 삶과 어버이 삶이 어떠한가를 톺아보기 마련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면서 온누리를 밝게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녁 눈길과 마음길과 생각길을 한결같이 올바로 추스릅니다. 아이를 낳으며 살아간대서 온누리를 밝게 헤아리는 눈길과 마음길과 생각길이 한꺼번에 생기지 않아요. 웃고 울며 뛰고 놀며 먹고 자며 아프고 일어서는 아이를 바라보는 동안 ‘앞으로만 치닫던 내 발걸음’을 멈추거나 그치면서 차근차근 ‘함께 살아가기’를 되뇔 때에 비로소 무언가 깨닫습니다.
이를테면, 아이를 낳았어도 퍽 이른 나이부터 학원에 넣는다든지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에 보내고는 오직 돈벌이에 얽매인다면, 이러한 삶을 보내는 어버이는 아무것도 못 느끼거나 못 깨닫거나 못 바라보거나 못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삶을 느끼도록 이끌지 않으면서 꽤 이른 나이부터 영어이니 수학이니 한자이니 하며 ‘나중에 대학입시 치를 준비’로 아이를 몰아세우는 어버이 또한 아무것도 못 느껴요. 푸름이가 된 아이한테 대학입시 공부를 시키는 어버이라 해서 다르지 않아요. 대학교는 시험을 치러야 들어가는 데가 아니에요. 대학교는 ‘대학교 마친 다음 돈 잘 버는 일자리 수월하게 얻도록 자격증이랑 졸업장 따는’ 데가 아니에요. 곧, 중·고등학교란 문제집과 참고서를 잔뜩 짊어지고 ‘대학입시 공부를 하는’ 곳이 될 수 없습니다. 푸른 빛 흘러넘치는 아이들이 푸른 꿈 마음껏 꽃피우도록 이끄는 곳이어야 합니다. 푸른 빛 흘러넘치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이 아이들한테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서 안기면 안 돼요. 살아숨쉬는 책을 선물하든지, 살아숨쉬는 이야기를 들려주든지, 어버이 스스로 살아숨쉬는 꿈을 이루는 모습으로 살림을 일구어야 해요.
아이들은 집에서 어버이와 함께 삶을 누리면서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스스로 참다이 배우는 길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대학교에 간다 할 때에는, 이제부터 공부뿐 아니라 삶짓기까지 스스로 살피면서 익히는 길을 찾을 마음이어야 합니다.
.. 부모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뭇 생명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과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 … 아무리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이라도, 음식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아이와 함께 음식을 먹을 때, 엄마는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먹어야 몸에도 좋은 법이다 … 아이들은 자신도 똑같이 자기 엄마한테서는 특별한 대우를 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고 있기에 다른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다 .. (24, 30, 115쪽)
나는 참 오래도록 삶을 짓는 일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막상 삶짓기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밥과 옷과 집을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해서 어떻게 누리는가를 옳게 살피지 못했습니다.
목숨을 아끼고 자연을 생각하며 푸나무를 보살필 줄 안대서 삶을 짓는 길에 접어드는 매무새는 아닙니다. 진보를 외치거나 개혁을 부르짖거나 보수를 움켜쥔대서 삶을 지을 수 없습니다. 일구는 삶도 짓는 삶도 누리는 삶도, 진보나 보수나 개혁이나 수구라는 틀로는 다가설 수 없습니다. 봄햇살은 모두한테 따사로운 봄햇살이고, 겨울햇살은 누구한테나 포근한 겨울햇살이듯, 삶짓기란 사상이나 철학이나 학문이나 문학이나 예술이나 그 무엇으로도 재거나 따지거나 다가서거나 알아챌 수 없습니다.
삶짓기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거든요. 나부터 참다이 사랑하고,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착하게 사랑하는 나날을 차곡차곡 누리면서 삶짓기를 이루거든요.
손꼽히는 책을 읽는대서 삶을 깨닫거나 느끼거나 알아보지 않아요. 손꼽히는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들었기에 삶을 바로보거나 톺아보거나 들여다보지 않아요. 스스로 살아가고픈 삶을 생각하고 찾으며 씩씩하게 걸어갈 때에 스스로 깨닫거나 바로보는 내 모습이에요. 내가 바라보는 대로 내 삶이 돼요.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내 나날이 돼요. 내가 뿌리내리는 대로 내 삶이 돼요.
.. 지금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인공적인 것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으면 한평생 자연과 접촉할 기회 없이 살아갈는지도 모른다 … 텔레비전은 리모컨으로 조절하고, 휴대전화는 조작 단추만 누르면 신호가 간다. 그러나 숲과 같은 자연은 리모컨이나 조작 단추로 작동시킬 수 없다. 오로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변할 뿐이다 … (시청이 밀어붙이려 하던) 공원조성계획은 엄마들의 의식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육아를 하면서 엄마들은 ‘골짜기’라는 낱말을 자주 썼다. 자연으로써 ‘골짜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런 엄마들의 생각은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아이들은 다른 지역의 골짜기를 찾을 때에도 “논이 있네.” “올챙이고 살고 있을까?” 하고 관심을 두게 되었다 .. (51, 89, 156쪽)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에 나오는 ‘숲 유치원’은 아이들을 흙에서 뛰놀며 자라게 합니다. 숲놀이라는 길을 걸으면서 아이와 어버이가 저마다 생각하는 삶이 되도록 이끕니다. 누가 몰아세우거나 등떠미는 놀이나 배움이 아니에요. 대학입시를 일찍부터 채근하는 학습이나 자기주도나 창의력이나 무슨무슨 대단한 이름이 붙는 일이 아니에요. 흙땅을 맨발로 걷습니다. 나무를 두 손으로 쓰다듬습니다. 꽃잎과 풀잎을 어루만집니다. 물웅덩이에서 뒹굽니다. 하늘을 바라봅니다. 구름과 바람을 느낍니다. 햇살을 내리쬐고 멧자락을 오르내립니다. 고드름을 따고 얼음을 주머니에 넣습니다. 나뭇가지를 줍고 동무들과 어울려 숲에서 도시락을 먹습니다.
꽃이름이나 풀이름을 따로 외울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 보고 모레 보며 글피 보면서 아주 천천히 나하고 가까워지는 꽃이나 풀이 되면, 시나브로 마주하는 벗이 돼요.
.. 엄마들이 아이들을 함께 돌볼 때,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은 아이마다 체력과 발달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럴 때 모든 아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이들 중에서 가장 어리고 신체 발달이 느린 아이한테 맞추는 것이다 … 자기 아이를 사랑하고 다른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면, 그 아이들의 앞날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 (86, 197쪽)
어른은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뜻을 늘 되새길 수 있어야 어른이에요.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내 몸속 목숨으로 빚은 아이가 없으나, 나와 같은 목숨을 빛내는 숱한 이웃 어른과 ‘곧 어른이 될 새 목숨’이 함께 어우러질 사랑스러운 터전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내 아이부터 찬찬히 바라보면서 이 땅 모든 아이들이 사랑스레 발을 디딜 터전을 꿈꾸면서 삶을 빛낼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빛내는 꿈을 이루는 사랑을 따사로이 보듬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4345.1.12.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