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까지 아이 모습을 잊으면 안 돼
하루하루 너무 바쁘다고 여기며 지나가면 참말 하루 앞서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를 떠올리지 못한다. 내가 아무리 집식구 사진을 틈틈이 찍는다 하더라도 모든 모습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 나 스스로 집일을 건사하는 동안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하나도 사진으로 담기지 않으니, 나 스스로 내가 무얼 했는가를 글로 적지 않으면 내 하루는 송두리째 잊어버리기 쉽다.
아이 어머니는 아침에 한 일을 저녁에 떠올리지 못하기 일쑤이다.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고 어지럽기 때문이다. 아이 모습을 담은 며칠 지난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아이가 이렇게 자라는가를 떠올리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도 내가 찍은 사진을 종이로 뽑아 들여다보면서 으레 다 떠올리는 한편, 참 아득한 옛날이로구나 하고 느끼곤 한다. 종이로 못 뽑고 지나친 사진을 한두 달쯤 지나서 들여다보면 아주 까맣게 잊던 모습이라고 느끼며 새삼스레 한참 멍하니 바라보기까지 한다.
고흥 시골집으로 옮기기 앞서 충주와 음성으로 갈리는 자리에 깃든 멧골집에서 보낸 마지막 여름 끝물, 옆지기 벗이 찾아와 하루를 묵은 다음 돌아가는 길에 네 식구가 나란히 배웅을 했다. 배웅을 마치고 돌아오던 모습을 사진으로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란다. 이야, 우리 네 식구 한 해 남짓 지냈던 멧골집이 퍽 우거진 숲이었구나. 어쩌면 오늘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이 시골마을 또한 얼마나 풀숲으로 우거지고 깊디깊은 고요한 곳인지 못 느끼는지 모른다.
나까지 아이 모습을 잊으면 안 돼. 나부터 아이 모습을 날마다 애틋하게 사랑해야지. 오늘을 아끼고 모레를 좋아하며 글피를 사랑해야지. 이마에 주름살 아닌 웃음살을 지어야지. 우리 네 식구 좋은 멧골을 거쳐 좋은 시골에서 예쁘게 살아가는 하루인 줄 잊으면 안 돼. 또렷이 생각하고 똑똑히 즐겨야 해. (4345.1.4.물.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