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 - 김수남 사진굿
김수남 사진, 고운기.양진.백지순 글과 사진 정리 / 현암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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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삶을 걸쳐 사랑하기에 사진으로 찍는다
 [찾아 읽는 사진책 75] 김수남, 《魂, 김수남 사진굿》(현암사,2007)

 


 고등학생이던 때 《한국의 굿》(열화당)이라는 사진책 스무 가지를 처음 보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러한 책이 있는 줄 이야기하지 않았고, 읽으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이 나라에서는 굿을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을 뿐더러, 벌써 사라지고 없는 푸닥거리로 여길 뿐입니다.

 

 그무렵 인천에서는 황해도 굿을 해마다 벌이는 자리가 있었다고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든 동네에서든 굿구경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한국 문화를 가르치든 한국 사회를 들려주든, 우리 겨레 굿이 무엇이고 어떻게 펼쳐지며 왜 하는가를 밝히거나 알려주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1992∼1993년, 나한테는 고등학교 2∼3학년이던 때에 인천에 있는 일곱 군데 도서관을 요일에 맞추어 찾아가며 열람실을 뒤집니다. 《한국의 굿》이라는 책이 있나 헤아립니다. 스무 권을 다 갖춘 도서관은 아예 없고, 그나마 한두 권조차 없는 데마저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찾아서 읽지 못하는데, 부평에 있던 헌책방에서 《한국의 굿》을 대여섯 권쯤 만납니다. 나중에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에서도 여러 권 만납니다. 동인천에 있는 새책방 대한서림과 동인서관에서 이 책을 한 권이라도 보았던가 가물가물합니다. 부평에 있던 새책방 한겨레문고에는 이 책이 있었는지 갸웃갸웃 잘 모르겠습니다. 고등학생은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없고 새책방에서 찾을 수 없는 책은 헌책방에서 살펴야 하는구나.’

 

 대학생이 되어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갑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장 많이 들어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가운데 굿을 알거나 보거나 생각하거나 들은 동무는 없습니다. 선배도 후배도 똑같습니다. 나는 내 고등학생 때 하나둘 그러모은 《한국의 굿》을 가방에 짊어지고 대학교로 가서 동무와 선후배한테 이 책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대학생쯤 된다면 한국 문화 한 가지쯤 옳게 알아야 하지 않느냐’ 하는 말을 붙이며 책을 빌려줍니다.

 

 책을 빌려준다기보다 읽으라고 밀어붙이는 셈이었구나 싶은데, 옳게 다 읽고 돌려준 사람은 드뭅니다. 사진만 스윽 넘기고는 뒤에 붙은 글은 읽지 않기 일쑤입니다.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 이가 많습니다. 나 혼자 멀디먼 전철길에 책을 되읽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철을 타고 자가용을 타며 비행기를 타는 오늘날 한국사람한테는 《한국의 굿》은 영문을 알 수 없고 뜻을 짚을 수 없는 머나먼 ‘미개 나라’ 이야기입니다. ‘문명 나라’ 사람으로서는 가끔 방송을 타는 다큐멘터리 흉내를 낸 모습을 들여다보면 되지, 굳이 책으로까지 읽으며 머리에 담을 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쟁이 김수남 님이 흙으로 돌아간 다음 나온 사진책 《魂, 김수남 사진굿》(현암사,2007)을 읽습니다. 여러모로 마음을 많이 써서 엮은 책이로구나 싶지만, 글이나 사진이 좀처럼 환하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편집이 퍽 어수선합니다. 글도 사진도 한눈에 확 사로잡도록 엮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이래 가지고 한국 문화와 사회에는 거의 눈길을 안 두는 오늘날 사람들을 이 책에 어떻게 끌어들일까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김수남 님이 찍은 사진을 보면 무당이 놀라운 춤사위를 벌이는 그림도 많으나, 애틋하게 눈물겨운 그림도 많습니다. 어여삐 빛나는 그림도 많으며, 눈부신 무지개 그림도 많아요. 김수남 님 사진책은 으레 겉그림이나 대표작으로 흑백사진만 내세우곤 하는데, 《魂, 김수남 사진굿》에도 실린 어여삐 빛나는 무지개빛 사진을 겉에 곱게 깔면서 보드랍고 따사로이 이야기를 펼치는 엮음새로 책을 냈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김수남 님 사진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은 좀 덜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호감을 가진다는 것은 사진을 찍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13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김수남 님 스스로 좋아해서 사진을 찍고, 김수남 님한테 사진을 찍힌 이들 또한 스스로 좋아서 사진으로 찍힙니다.

 

 뭐 대단하다 싶은 이야기를 담은 사진이 아니에요. 한국 문화와 사회 가운데 한 가지를 붙잡아 담은 사진이에요. 한국 문화와 사회 가운데 김수남 님이 좋아하며 사랑할 만한 이야기 하나를 바라본 사진이에요.

 

 김수남 님은 한국 굿에서 외국 굿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1980년대에 굿 사진을 찍고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어찌할 수 없는 모습이었을 텐데요, 김수남 님이 사진으로 담는 한국 문화를 ‘굿’ 다음으로 ‘밥’이나 ‘밭’이나 ‘길’이나 ‘옷’으로 삼았다면, 아마 이때에는 밥굶기 딱 좋았으리라 봅니다. 요즈음도 한국 굿뿐 아니라 한국 밥과 한국 밭과 한국 길과 한국 옷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는 누군가 있다면, 그야말로 밥굶기를 다짐하면서 사진길을 걷겠지요. 그래서 오늘날 사진쟁이 가운데 어느 누구도 여느 사람들 밥먹기와 밭일과 길(골목길·고샅길·논둑길·멧길·바닷길·들길)과 옷차림을 찬찬히 담아내지 않아요. 모두들 그럴듯한 그림이나 돈벌이 되는 사진으로만 흘러요.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다행히 내 카메라는 의식들을 안 하는 편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미리 가는 것이다. 한 지역에 뭔가가 있다고 하면 미리 간다(46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함께 어우러질 만큼 좋아하는 사람하고 부대끼며 사진을 찍는 사람은 ‘행사가 펼쳐진 때’에만 뚝딱 사진을 찍고 떠나지 않습니다. 일찌감치 찾아와서 노닥거립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퍼질러 앉아서 노래하며 놉니다.

 

 혼인잔치 사진을 찍는 사람은 20분쯤 앞서부터 신부대기실을 찍고 신랑신부 행진과 주례 같은 모습을 찍겠지요. 그러나 짧은 행사를 마치고 밥을 먹을 즈음 장비를 챙겨 돌아갑니다. 혼인잔치 ‘행사’를 찍는 사진관 일꾼이 아닌, 혼인잔치 ‘잔칫날 좋은 일’을 기리려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혼인잔치를 앞두고도 찾아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잔칫날에는 일찍부터 자리를 잡을 테며, 잔치가 다 끝나고 나서도 오래도록 머물며 서로 기뻐해 주겠지요.

 

 사진만 따로 있는 일은 없습니다. 삶과 함께 사진입니다. 사진만 동떨어져 작품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삶과 함께 얼크러지면서 사진이야기 일굽니다.

 

 “외국 작가는 돈 주고 데려오면서 왜 한국 작가들에게는 그저 개인의 희생만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52∼53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전국에 있는 문화재단이라든지 문화체육관광부라든지 공공기관이라든지 대학교라든지 기업이라든지, 바로 오늘 우리 삶을 아끼며 사랑하는 손길로 우리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글·그림·만화·사진·춤·노래·연극·영화 들로 담아낼 수 있으며 즐겁습니다.

 

 볍씨 한 알에 싹을 틔워 싱그러이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운 다음 이삭이 패는 흐름을 곱게 사진으로 담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담는 사람을 뒷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수수한 여느 일을 사진으로 담는 눈물과 웃음이 얼마나 보람차면서 사랑스러운가를 느끼는 뒷배를 해야 합니다. 바느질과 뜨개질을 비롯해 재봉틀질을 하는 모든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야 해요. 밥하기와 설거지를 사진으로 빚을 수 있어야 해요. 손빨래이든 기계빨래이든 사진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해요.

 

 “사진 하면 아트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지만, 사실은 기록성이 사진의 본질 아니겠습니까. 나는 사진이 예술뿐 아니라 역사라든가 사회 가운데에 무언가를 남겨야 하고, 그렇게 해서 자기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104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사진기로 예술을 하는 사람은 ‘사진기로 적바림(기록)’하면서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이니 무어니 하기 앞서 예술작품으로 선보이는 사진작품은 ‘적바림하는 사진’이어야 해요. 적바림하지 않고서는 예술도 문화도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적바림하지 않을 때에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적바림하는 대목’만 뽑아내어 예술작품으로 빚는다 하면, 그야말로 예술일 뿐 사진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연필이나 붓을 놀려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라 하지 글이라 하지 않아요. 글자를 그리더라도 그림이 되지 이야기 담긴 글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기로 무언가를 찍었대서 모두 사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연필로 만화를 그리며 풍선에 말을 적었어도 그저 만화이지 글이라 하지 않아요. 오늘날 숱한 만듦사진은 예술 테두리에 넣어야지, 만듦사진을 사진으로 다룰 수 없어요.

 

 “20년 전의 사진을 들고 간 나에게 그리 오래 자신을 찍은 사진을 소중히 생각해 줘서 고맙고 또 고맙다고 눈물을 흘린다(201쪽).”고 말하는 이야기를 곱씹습니다. “먼 훗날 자신들의 문화를 얘기해야 할 때 나의 사진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말을 현지 지식인들로부터 들을 때마다 나는 슬픔을 느낀다. 우리들의 옛 모습을 서양사람들이 찍은 것이 많아서만이 아니다. 자신들의 문화를 사랑하고 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가슴, 남의 것이 훌륭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그 가슴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277쪽).”고 말하는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안타깝다 할 수 있고 슬프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김수남 님은 사진으로 담았는걸요. 나라밖 누군가는 김수남 님이 애써 사진으로 찍어 주어 고마운걸요. 우리도 이 나라로 찾아온 누군가 찍어 준 사진이 있어 고마워요.

 

 어떤 외국사람은 한국 삶자락 담은 사진을 비싼값에 팔 테지만, 퍽 많은 외국사람은 돈 한 푼 안 받고 당신이 찍은 사진을 모두 선물합니다.

 

 외국사람이 바라보는 한국 모습이라 해서 ‘한국 모습이 아니’지 않아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 모습이라 해서 ‘한국 모습을 옳고 바르며 참답고 착하게 담았’다고 할 수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사랑하는 사람이 글을 쓰며, 사랑하는 사람이 그림을 그려요.

 

 굿을 사랑할 수 있던 사람이 굿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흙일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흙일꾼 한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패션모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패션사진을 빚겠지요.

 

 다만, 요사이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한동안 붙잡는 ‘사진 찍힐 대상’으로만 바라보면서 지나가고 마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한 번 사랑하고 끝날’ 이음고리가 아닌데, 온삶을 걸쳐 고이 만남끈을 잇지 않곤 해요. 새로운 소재나 새로운 주제는 없어도 돼요. 사진길을 걷는 사람한테는 오직 온마음 바쳐 사랑할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면 넉넉하면서 따뜻해요. (4345.1.3.불.ㅎㄲㅅㄱ)


― 魂, 김수남 사진굿 (김수남 글·사진,고운기·양진·백지순 풀이글·정리,현암사 펴냄,2007.2.5./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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