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소년 11
시무라 타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모두 좋은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99] 시무라 타카코, 《방랑소년 (11)》

 


 남자가 여자보다 낫지 않아요. 여자가 남자보다 낫지 않아요. 사람이 나무보다 낫지 않아요. 나무가 사람보다 낫지 않아요.

 

 누가 누구보다 낫다고 할 수 없어요. 누가 누구보다 못하다 할 수 없어요. 사람이 푸성귀를 뜯어서 먹기에 푸성귀는 사람만 못하다 여길 수 없어요. 사람이 먹는 푸성귀는 사람 몸속에서 고운 밥이 되고 고운 힘이 되는걸요. 고운 목숨이자 넋인 푸성귀이기 때문에 사람이 먹어서 받아들여요. 고운 목숨이자 넋이기에 사람들은 고운 꿈과 사랑을 나누거나 펼쳐요.


- ‘물론, 지금까지도 평범한 남자 아이였어. 하지만 슈이치는 특별하다고 생각했어. 앞으로 점점 더 남자가 되어 가겠지, 슈이치도.’ (54쪽)
- “카나코까지 고백하기 시작하면 어쩌지?” “왜?” “어? 왜냐니.” “카나코도 이제 어른이야.” “뭐? 그렇긴 하지만.” “그런가? 사오리는 싫지 않아?” “싫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걸.” (84∼85쪽)


 목숨붙이는 사람이랑 나무랑 풀이랑 고양이랑 물고기랑 …… 삶터와 생김새와 삶자락에 따라 찬찬히 나눕니다. 그러나 모두 목숨붙이라는 테두리에서 다 다르게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 또는 여자와 남자로 나눕니다. 성에 따라 둘로 나누지만, 두 갈래 성은 모두 사람이라는 테두리에서 서로 다르면서 아름답습니다. 나이로 나누면 아기 어린이 푸름이 젊은이 늙은이가 될 테지요. 어린이와 어른으로 나눌 수 있겠지요. 나라에 따라 나눌 수 있고, 동양과 서양으로 나눌 수 있어요. 문명을 누리는 사람과 문명하고 등돌린 사람을 나눌 수 있어요.

 

 어느 쪽에 서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어느 자리에서 삶을 누리든 아름답습니다. 어느 곳에서 사랑을 하거나 꿈을 키우든 아름다울밖에 없어요.


- ‘아주 즐거운 추억이 생겼습니다. 우리 모두는 내년에 치를 입시나 졸업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나는 참 좋아하는 친구와 화해한 뒤였기 때문에, 그 점을 중심으로 글을 쓸까 합니다.’ (104쪽)


 그러나 이 지구별 곳곳에서는 사람들을 ‘낫고 모자라고’라는 테두리에 가두려 합니다. 초등 보통 교육이라든지 중·고등 의무교육이 생기고 퍼지면서, 사람들을 어느 틀에 가두려 합니다. 반드시 이렇게 보여야 하고, 꼭 이처럼 살아야 하는 듯 밀어붙입니다.

 

 대학교에 안 가면 어떤데요. 신문이며 방송은 왜 대학교 이야기만 떠들까요. 대입등록금이 비싸다구요? 네, 비싸지요. 그런데, 대입등록금 비싼 일은 교육과 복지 테두리에서 다가서야지요. 남녘나라가 국방비에 어마어마하게 돈을 쏟아부을 뿐 아니라,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막개발을 서슴지 않잖아요. 무기를 만들고 무기를 다루며 무기를 지키려고 돈을 퍼부으니까 대학교육이 온통 사교육이 되고 말아요. 돈벌이 장사가 됩니다. 더군다나, 대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붙잡는 일이란, 하나같이 돈을 더 벌려고 하는 일이에요. 이런 흐름이라면, 군대를 걷어치워 국방비로 한 푼조차 안 쓰더라도 대학교육은 좋은 쪽으로 거듭나지 않아요. 한국땅 대학교육은 ‘연봉 더 많이 받고 연금 더 많이 챙기는 일자리 거머쥐기’로 흐르니까요. 이 흐름을 바로잡지 않으면 어느 하나 달라지지 않아요.

 

 곧, 대학교 교육이 중·고등학교 교육으로 이어지고, 초등학교 교육으로 이어집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육으로 이어져요. 갓난쟁이 예방주사로까지 이어지고요.

 

 모두모두 틀에 가두려 해요. 모두모두 스스로 생각하지 않도록 이끌어요. 갓난쟁이 예방주사를 놓는다 하면서, 막상 예방주사란 무엇이고 주사 성분은 어떠하며 왜 이런 주사를 놓아야 하는가를 찬찬히 밝히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 어버이는 이런 대목에 눈길조차 두지 않아요.

 

 아이들이 한두 살 때부터 보육원에 넣어야 복지가 되는 듯 잘못 생각하고 말아요. 아이들이 서너 살이면 마땅히 어린이집에 넣어야 복지요 문화요 교육이라고 엉뚱하게 생각하고 말아요.

 

 아이들이 아름다이 꿈꾸고 사랑하는 길을 생각하지 못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아름다움을 찾아나서도록 돕는 길을 헤아리지 않아요. 온통 갇힙니다. 꽁꽁 붙듭니다.


- ‘남학교에 가면 진짜 따분할 거야. 그렇다고 해서 여학교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123∼124쪽)
- “누나.” “응?” “내가 나중에 여자처럼 꾸미거나 여자가 되고 싶다고 하면, 어쩔 거야?” “그때가 되어 봐야 알겠지.” “그래?” “당연한 거 아니야?” (140쪽)


 나는 생각하면서 바랍니다. 이 나라 신문사들이 대입시험 이야기를 아예 안 다루기를 생각하면서 바랍니다. 몇 월 몇 일에 대입시험을 치른다는 이야기부터, 시험 문제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이야기에다가, 점수가 어떠하면 어느 대학교에 갈 만하다는 이야기까지 몽땅 안 다루기를 생각하면서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를 자꾸자꾸 아까운 신문에 실으니까 끝없이 학력경쟁과 학력차별이 불거져요. 신문과 방송에서 다룰 이야기는 사람들이 아름다이 꿈꾸는 삶이어야 해요.

 

 점수따기 경쟁시험 이야기를 다룬다면 신문이 아니요 방송도 아니에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앞에 놓고 점수를 매길 수 없어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앞에 놓고 점수를 붙일 수 없어요. 글을 쓰는 사람을 앞에 놓고 점수를 따질 수 없어요.

 

 아름다이 즐기며 누리면 돼요. 기쁘게 맞아들이며 나누면 돼요.

 

 나누어야 할 사랑이에요. 크기를 따지는 사랑이 아니에요. 함께하는 사랑이에요. 틀에 가두거나 쪼개는 사랑이 아니에요.


- “내 솔직한 심정을 말하면, 슈이치는 여자 옷을 입었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슈이치가 입어 주면 얼마나 기쁠까, 라고 생각하면서 디자인했거든. 하지만 슈이치가 비웃음을 당하거나 구경거리가 되는 건 싫어. 그 녀석들은 또 틀림없이.” “난 구경거리가 되어도 괜찮아. 비웃음을 당해도 상관없어.” (182∼183쪽)


 시무라 타카코 님 만화책 《방랑소년》(학산문화사,2011) 11권을 읽습니다. 《방랑소년》 아이들은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자랍니다. 나이에 걸맞게 아주 조금씩 자랍니다.

 

 이 아이들은 애늙은이가 아닙니다. 이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입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저희 나이에 걸맞게 조금씩 자라며 차츰차츰 새로운 사랑빛을 선보입니다.

 

 누구 앞에서 자랑하는 얼굴이 아닙니다. 누구 앞에서 비웃음을 사거나 놀림감이 되는 얼굴이 아닙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삶이요, 스스로 사랑하는 삶처럼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는 삶입니다.


-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야.” “그래.” (36쪽)


 꿈을 꾸면서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꿈을 꾸면서 서로서로 북돋우고 자그마한 손길 내밀며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음이 다치거나 마음이 무너지면서 크는 아이들은 아니에요. 메마른 사회에서 따사로운 사랑을 꿈꾸고, 차디찬 시멘트 교실 울타리에서 포근한 믿음을 바라요.

 

 어느 아이는 일찍부터 모두 좋은 사람인 줄 느껴요. 어느 아이는 뒤늦게 서로서로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를 느껴요. 어느 아이는 늙어서 죽는 날까지 서로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하고 못 느낄는지 몰라요. (4345.1.2.달.ㅎㄲㅅㄱ)


― 방랑소년 11 (시무라 타카코 글·그림,설은미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11.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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