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넉 병 책읽기

 


 어제 마을잔치를 했다. 마을잔치는 마을 이장을 새로 뽑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 했다. 마을잔치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할머니들이기에, 이웃집에 맡겨진 세 살 민준이는 아침부터 일찍 우리 집에 온다. 할머니는 아이를 우리보고 맡겨 놀도록 한 다음 마을회관에서 먹을거리를 차리신다. 나는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부지런을 떤다.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일 겨를이 없도록 움직인다. 집안 청소는 방 두 칸 쓸고닦기만 겨우 하고서 아이들 셋을 데리고 회관으로 간다. 갓난쟁이는 안고 두 아이는 달린다. 두 아이는 달리면서 옆집 소랑 개 있는 우리를 문틈으로 들여다보면서 킥킥거린다. 문틈으로 들여다보기가 재미있니? 회관에 들어간다. 왼쪽과 오른쪽 방이 있는데 오른쪽 방에는 할아버지만 계신 줄 몰랐고, 왼쪽 방에는 할머니만 계신 줄 몰랐다. 아이들 깔깔대며 노래하는 소리가 회관에 들리자 왼쪽 방 문이 열려서 왼쪽 방으로 먼저 들어갔을 뿐이다. 두 아이를 옆에 앉히고 갓난쟁이는 품에 안으면서 두 아이한테 밥을 먹인다. 두 아이가 밥을 얼추 먹고, 옆지기가 와서 갓난쟁이 젖을 물릴 즈음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들어간다. 마을에 젊은이가 마을잔치 하는 날에는 일찍 나와서 일을 거들고, 회관에 왔으면 ‘노인 있는 방’에 먼저 들어와야 예의라고 말씀하신다. 종이컵이 찰랑거리도록 소주를 부어 주신다. 이 소주를 몇 잔 마셔야 할까. 마을잔치라 했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기는 했지만, 할아버지들하고 있는 자리에서는 술을 쉴 틈 없이 들이부어야 한다. 찰랑거리는 종이잔이면 여느 소주잔으로는 몇 잔쯤 되려나. 한 병 두 병 석 병 …… 삶은 돼지고기와 잡채를 안주로 삼아 술을 버틴다. 해가 슬슬 기울 무렵 아이들 재운다는 빌미로 슬그머니 자리에서 빠져나온다. 술이 더 들어가면 아무래도 넋을 잃을 듯해 첫째 아이를 자전거 태운다면서 살짝 집으로 간다. 속을 다스리면서 물을 조금 마신다. 잠들 때에는 물을 안 마신다. 새벽까지 배앓이를 하느라 끙끙거린다. 잠자리에 들기 앞서 빨래를 조금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 똥을 눈 둘째 기저귀 빨래랑 옆지기 속속옷 한 벌이랑 오줌기저귀 몇 장이랑 기저귀싸개 한 장이랑 비비고 헹군다. 물을 짜면서 참 힘들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렇게 조금이라도 해야 이듬날 아침 빨래가 하나라도 덜 쌓인다. 새벽 네 시 반 즈음 잠자리에서 낑낑거리며 일어난다. 이제 물을 잔뜩 마신다.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면서 쉬를 눈다. 방으로 들어오다가, 후박나무 빨래줄과 우리 집 지붕 위로 드리우는 별자리가 아주 곱다고 새삼 깨닫는다. 첫째 아이 오줌통을 비우고 씻는다. 밤새 쌓인 빨래를 살며시 들여다본다. 할아버지들은 겨우내 회관에서 술잔을 기울이신다는데, 회관에 나가서 할아버지들 마주하는 일이 나는 조금 두렵다. 내가 집일을 몽땅 옆지기한테 맡기는 여느 아버지라면 아마 회관에 나가서 날마다 할아버지들이랑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술을 들이켰을까. 집일을 도맡으며 살아가는 내 하루란 어쩌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 아니겠느냐고, 밤새 배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며 생각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소주를 여러 병 마셨다. 올해에는 소주를 이렇게 마실 일 없이 보낼 수 있구나 하던 꿈을 지키지 못했다. 날이 밝고 아이들 일어나면 아침밥으로 감자가 바스라질 만큼 푹 끓이는 콩나물국을 해야겠다. 할아버지들은 소주를 그렇게 날마다 드시면서 몸을 어떻게 버티실까. 오늘도 잠자리에서 권정생 할아버지 동시책 《삼베치마》를 읽었다. (4344.12.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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