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손가락

 


 어머니 품에서 새근새근 잠드는 산들보라. 이 아이는 어느새 일곱 달째 함께 살아간다. 첫째 아이하고 일곱 달째 함께 살던 무렵을 되새긴다. 첫째 아이 일곱 달째 함께 살아가던 즈음에는 첫째 아이를 찍은 사진이 아주 많았다. 320장을 꽂는 사진첩 여러 권을 가득 채울 만큼 되었다. 잘 나온 사진만 추려도 여러 권 되었다. 그런데, 산들보라와 함께 살아온 일곱 달 동안 ‘산들보라 사진첩’은 아직 한 권조차 못 만들었다.

 

 두 아이와 살아가며 너무 빠듯한 나머지 둘째 아이 사진첩은 한 권조차 못 만들밖에 없다고 말하는 일은 오직 핑계일 뿐이다.

 

 두 아이 아버지인 나를 돌아보면, 나도 산들보라처럼 내 어버이한테는 둘째요, 내 사진첩은 형 사진첩하고 대면 사진 숫자가 적다. 나는 돌 사진이 없다. 나는 갓난쟁이였을 적 사진마저 없다. 내가 내 어버이를 서운하게 여긴다면, 둘째 아이 산들보라 또한 제 아버지를 서운하게 여기리라. 제 누나 사진은 수두룩하게 쌓이고 쌓여 넘치고 또 넘치는데, 제 사진은 아기자기하게 찍어 주지 않았으니 시무룩하게 여길 수 있으리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나절 곰곰이 생각에 젖다가 산들보라 잠든 모습을 바라본다. 속으로 생각한다. ‘어차피 조금 뒤 다시 깨겠지. 너도 깊이 잠들려면 네 누나처럼 더 놀고 악지도 부려야겠지.’ 손톱 깎은 지 며칠 안 되었는데 어느새 제법 길게 자란 모습을 바라본다. 어머니 품에 꼭 안겨 손가락 살짝 나온 모습을 들여다본다. 튼튼하고 야무지게 자라니 언제나 고맙다. 푹 자고, 달게 자고, 예쁘게 자고, 이듬날 아침에 또 기쁘게 새날을 맞이하렴. 이제 섣달 그믐이 찾아오는구나. (4344.12.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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