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 워홀에서 히틀러까지, 688명이 말한 사진
전민조 지음 / 포토넷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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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 모든 삶을 말해 줍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64] 전민조,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포토넷,2011)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야기를 빚습니다. 네 이야기나 남 이야기 아닌 내 이야기를 빚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내 얼굴을 찍을 수 있을 테지만,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는 으레 내 모습 아닌 네 모습이나 남 모습을 찍습니다. 그러나 네 모습이나 남 모습을 찍는 사진쟁이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빚습니다.

 네 모습이나 남 모습을 찍는 사진이라지만, 언제나 내가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내가 느끼는 모습이요, 내가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누가 나한테 사랑해 달라 바라기 때문에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사랑이 샘솟기에 찍는 사진입니다. 누가 나한테 사랑을 베풀었기에 고스란히 사진으로 돌려주지 않습니다. 오직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쟁이 전민조 님이 쓰고 엮은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포토넷,2011)는 모두 육백여든여덟 사람이 사진을 놓고 읊은 말마디를 그러모읍니다. 육백여든여섯 가운데에는 사진쟁이가 있고, 그림쟁이가 있으며, 영화쟁이가 있습니다. 사진하고 동떨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며, 회사를 꾸리는 사장이 있고, 모델이나 글쟁이가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든,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일구는 이야기를 저마다 다 다른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사진 작업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과 주변 세상에 대해서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나오미 해리스/34쪽).”는 말처럼, 사진쟁이는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내가 나누고픈 이야기를 스스로 빚고, 내가 배우고픈 이야기를 기쁘게 배웁니다.

 “사진의 주제는 사진보다 더욱 중요하다(다이안 아버스/49쪽).”는 말마따나, 무엇을 찍느냐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사진이냐 아니냐, 사진문화냐 아니냐, 사진예술이냐 아니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비평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역사에 남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내가 무엇을 왜 찍느냐 하는 대목을 살필 노릇입니다.

 “대부분의 전쟁 사진가는 전쟁을 즐기고 있다(도널드 맥콜린/66쪽).”는 말 그대로, 전쟁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전쟁을 즐길밖에 없습니다. 알몸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알몸을 즐깁니다. 패션사진을 하는 사람은 패션을 즐깁니다. 다큐사진을 하는 사람은 다큐멘터리 주제를 즐깁니다.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좋아하는 나날을 즐깁니다.

 “일상의 순간들이 바로 진실의 순간이다(레이몽 르파르동/82쪽).”는 말대로, 어느 하루이고 나한테 아름답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내가 누리는 삶이 참다이 사랑스럽습니다. 내가 맞이하는 나날이 나한테 가장 기쁘며 반갑고 고맙습니다. 나는 나한테 가장 빛나는 내 삶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가에게는 비밀이 있다. 너무 따지지도, 너무 집착하지도 않고서 단지 인생을 걸어가는 것이다(마릴린 리타 실버스톤/125쪽).”는 말을 돌이킵니다. 내 이야기를 담는 사진이기에 내 이야기를 내 결대로 보듬습니다. 내 걸음을 내 다리힘대로 걷습니다. 내 꿈을 내 마음밭대로 일굽니다.

 “초상 사진은 모델을 보여주어야지, 사진가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강조해서는 안 된다(매리 앨런 마크/138쪽).”는 말을 곱씹습니다. 얼굴을 찍는 사진은 얼굴을 보여줄 노릇입니다. 골목길을 찍는 사진은 골목길을 보여줄 노릇입니다. 지리산을 찍는 사진은 지리산을 보여줄 노릇입니다. 빼어난 솜씨를 보여준대서 사진이지 않습니다. 훌륭한 재주를 선보인대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빼어난 글솜씨로 문학이 태어나지 않거든요. 훌륭한 붓질로 아름다운 그림이 태어나지 않아요. 값진 사진기나 사진장비는 덧없습니다.

 “사진가는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어야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기 때문이다(보리스 미하일로프/163쪽).”는 말을 가만히 짚습니다. 스스로 사랑이 우러나오는 삶이 아니라면, 사진쟁이로서는 사진기를 들지 못합니다. 스스로 사랑이 우러나올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이 우러나오지 않으면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사랑이 우러나와야 비로소 내 살붙이들 아침저녁을 차립니다. 사랑이 우러나오는 삶이기에 내 살붙이들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사진가로 볼 때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모든 나라들은 자신의 나라가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얀 아르튀스 베르트랑/249쪽).”는 말이 참으로 맞습니다. 한국은 한국입니다. 일본은 일본입니다. 프랑스는 프랑스입니다. 미국은 미국입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배우든 프랑스에서 사진을 배우든 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일본을 사진으로 담든 미국을 사진으로 담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내 이야기가 무엇이요, 내가 사랑할 이야기가 어떠하며, 내가 사진으로 나눌 이야기는 어떻게 가꾸는가를 생각하며 느껴야 합니다.

 “특정한 시간에 당신의 마음을 비추는 것, 당신은 그것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조지 타이스/350쪽).”는 말이 좋습니다. 나는 내가 보는 모습만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는 내가 못 보는 모습을 사진으로 못 담습니다. 곧, 아는 대로 사진으로 담지 않아요. 지식에 따라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낸 발자국만큼 사진으로 담습니다. 내가 온몸으로 부딪히거나 부대낀 나날 그대로 사진을 찍어요.

 “마음이 움직여야만 사진기를 든다(토몬 켄/403쪽).”는 말이 아름답습니다. 값진 장비나 값나가는 장비로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두말할 까닭 없어요. 마음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마음으로 사랑하는 짝꿍입니다. 마음으로 아끼는 내 꿈이요 삶이에요.

 “내가 찍은 최고의 인물 사진은 내가 제일 잘 아는 사람의 사진들이었다(펠릭스 나다르/416쪽).”는 말이 올바릅니다. 유섭 카슈 같은 사람이 ‘잘 찍은’ 사진은 이름난 사람들 얼굴이 아니에요. 유섭 카슈 스스로 ‘잘 알려고 애쓴’ 사람들 얼굴입니다. 마음을 열어 다가섭니다. 마음을 적셔 껴안습니다. 마음을 담아 마주합니다. 마음을 기울여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사진쟁이한테 사진이 모든 삶을 말해 줍니다. 살림꾼한테 집일이 모든 삶을 말해 줍니다. 흙일꾼한테 흙이 모든 삶을 말해 줍니다.

 나는 어디에 선 나일까요. 나는 무엇으로 내 삶을 말할 만할까요.

 한국땅에서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같은 책이 태어날 수 있어 고맙습니다. 다만,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에는 나라밖 사진쟁이 이야기만 실립니다. 나라안 사진쟁이 이야기를 담은 다음 책을 기다립니다. (4344.12.5.달.ㅎㄲㅅㄱ)


―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전민조 글·엮음,포토넷 펴냄,2011.10.1./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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