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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도둑 - 스리랑카 ㅣ 땅별그림책 6
시빌 웨타신하 글.그림, 엄혜숙 옮김 / 보림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빛깔·내음·소리를 읽는 그림책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2] 시빌 웨타신하, 《우산도둑》(보림,2011)
마을 이장님이 아침에 찾아옵니다. 쌀푸대를 날라야 하니 거들어 달라 말씀합니다. 마을 이장님이 한쪽 어깨가 아파 잘 못 쓰시니 기꺼이 거들러 나섭니다.
마을에 모두 할매와 할배입니다. 흙을 일구는 사람도, 흙을 보살피는 사람도, 푸성귀를 심어 가꾸는 사람도, 나락을 꽂고 베는 사람도, 나락을 농협에 내다 파는 사람도 모두 할매와 할배입니다.
농협에서 일자리 얻는 일꾼은 모두 젊은이입니다. 은행 일을 보든 창고 일을 보든 가게 일을 보든, 농협 공무원은 모두 젊은이입니다.
젊은 농협 일꾼이 늙은 흙일꾼한테서 쌀을 사들입니다. 젊은 농협 일꾼이 늙은 흙일꾼한테 무슨 볍씨를 사라 무슨 풀약을 쓰라 무슨 곡식이나 푸성귀를 심으라 하고 가르칩니다. 젊은 농협 일꾼이 해마다 사들일 쌀 무게를 따지고, 젊은 농협 일꾼이 늙은 흙일꾼이 거둔 쌀을 얼마 어치 사들이겠다고 값을 말합니다.
늙은 흙일꾼 두 분이 사십 킬로그램 쌀푸대를 함께 싣습니다. 늙은 흙일꾼 두 사람이 허리 구부정하게 힘들여 쌀푸대를 경운기에 싣습니다. 경운기는 아주 천천히 달립니다. 아주 천천히 농협 공판장으로 달립니다. 쌀을 사들이는 농협이니까 흙일꾼이 농협으로 쌀을 가져가는 일이 마땅하달 수 있으나, 할매 할배랑 함께 쌀푸대를 짐차랑 경운기에 실으며 곰곰이 생각하니, 젊은 농협 일꾼이 시골을 돌며 ‘제발 우리한테 쌀을 팔아 주십시오.’ 하면서 ‘고맙게 쌀을 사 갑니다.’ 하고 넙죽 절을 하는 한편, ‘올 한 해에도 애쓰셨어요.’ 하고 인사를 할 때에 마땅하리라 느낍니다. 젊은 농협 일꾼이 크고 튼튼하며 빠른 짐차를 몰아서 시골마을로 찾아와 쌀푸대 척척 실으면서 이 자리에서 쌀값을 치러야 마땅하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쌀은 공장 기계에서 뽑아내지 않거든요. 쌀이든 푸성귀이든 흙에서 얻거든요. 쌀이든 푸성귀이든 마을마다 다 다른 할매 할배가 날마다 흙을 아끼고 보살피면서 거두거든요. 바람을 쐬고 물을 주며 햇살을 받도록 하면서 쌀이랑 푸성귀를 얻거든요. 젊은 농협 일꾼은 마을마다 어떤 흙살림인지를 몸소 느끼면서 쌀푸대를 받아들여 고마이 여기는 매무새로 ‘흙을 사랑하는 사람들 땀방울’ 값을 올바로 치러야 한다고 느낍니다.
.. 옛날 스리랑카섬에 작은 마을이 있었어요. 이 마을 사람들은 우산을 본 적이 없었어요. 비가 오면 바나나잎이나 얌감자잎을 쓰거나 삼베 자루나 천이나 바구니를 머리에 썼지요 .. (2∼3쪽)
대단한 일이 아닌 쌀푸대 나르기를 조금 거들었을 뿐인데, 이장님 댁 아주머니랑 우리 웃집 아주머니랑 큰 들통에 흰쌀 수북히 담아 찾아옵니다. 우리보고 먹으라며 당신들 한 해 일군 쌀을 갖고 오십니다. 고마우면서 미안하고, 미안하면서 고맙습니다. 풀약 안 치고 거둔 쌀이라 하는데, 사십 킬로그램 한 푸대에 오만육천 원 받고 농협에 내다 판다고 합니다. 농협 하나로마트에서는 이 ‘농약 안 친’ 쌀을 삼만 몇 천 원쯤 받고 여느 사람들한테 팝니다.
우리는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로 오기 앞서까지 충청남도 홍성 풀무학교생협 쌀을 받아서 먹었습니다. 홍성 풀무학교생협도 풀약을 쓰지 않으면서 나락을 일굽니다. 풀무학교생협은 농협을 안 거칩니다. 어쩌면, 풀무학교생협에서 쓰는 ‘나락 품종’을 농협에서 사들일 일이 없지 않느냐 싶어요.
그나저나, 풀무학교생협 단골논 회원이 내는 10킬로그램 쌀값은 사만이천 원입니다. 농협에서 판다는 농약 안 친 쌀은 사만 원이 조금 안 됩니다. 이 나라 흙일꾼이 풀약을 안 치고 쌀을 거두어 판다고 할 때에, 당신들 스스로 농협이나 도매상을 안 거치고 팔 수 있는 길이 없다면, 그저 도매상이랑 농협에서만 팔며 당신 흙살림을 돌보자면, 알뜰히 거둔 쌀알로 한 해 벌이를 얼마나 할 수 있으려나요.
일꾼 부리고 창고 세우며 쌀푸대 새로 예쁘게 꾸며서 커다란 하나로마트에서 쌀을 팔아야 할 테니, 농협은 더 적은 돈으로 쌀을 사들일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정작 흙일꾼은 어떻게 되나요. 쌀을 사다 먹는 여느 사람들은 얼마나 마땅한 값을 치르면서 밥상을 차릴 만한가요.
.. 키리 마마는 몹시 마음이 상해서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어요.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우산이 사라진 거예요. 가엾은 키리 마마는 너무나도 슬펐어요 .. (12쪽)
쌀푸대를 나르다 보니 안쪽에 쌓인 쌀푸대에 어김없이 구멍이 납니다. 안쪽 쌀푸대에는 어김없이 쥐똥이 구릅니다. 마을에 들고양이 제법 있으나, 이렇게 들고양이 눈길을 벗어나 쌀푸대에 구멍을 내어 쌀을 쏘는 들쥐 또한 제법 있군요. 재미나다면, 들쥐가 쌀을 쏠면서 알맹이를 쏙 빼먹고 겨를 벗겨 놓습니다. 요 녀석들이 알맹이만 골라서 먹네.
구멍난 자리는 테이프로 붙이거나 실로 뀁니다. 할매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실로 꿰맵니다. 테이프로 붙이면 언젠가는 테이프가 톡 떨어질 테지만, 실로 꿰맨 자리는 다시 튿어지지 않습니다.
스리랑카에서 태어나 자란 시빌 웨타신하 님이 빚은 그림책 《우산도둑》(보림,2011)을 읽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빛깔과 내음과 소리가 물씬 묻어나는구나 싶은 그림책입니다. 참말 스리랑카 그림책이니까 스리랑카 빛깔이랑 내음이랑 소리가 묻어나야겠지요.
스리랑카는 이런 빛깔이로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스리랑카에서는 이런 내음을 누리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스리랑카는 이런 소리를 들려주는구나 하고 꿈꿉니다.
.. 키리 마마는 우산을 모두 땅바닥으로 떨어뜨렸어요. 그리고 상냥하게도 우산 도둑을 위해 우산 하나는 남겨 두기로 마음먹었지요 .. (19쪽)
한국사람이 한국에서 그려 한국 어린이한테 베푸는 그림책에는 어떤 빛깔·내음·소리가 깃들 수 있을까요. 스리랑카에서 태어나 자라는 스리랑카 어린이가 한국 그림책을 받아서 읽는다 한다면, 이 스리랑카 어린이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빛깔·내음·소리라고 느낄 만한가요.
한국땅 그림책은 어느 마을을 무대로 삼아야 할까요. 서울을? 일산을? 분당을? 부산을? 대구를? 제주를? 한국땅 그림책은 어디가 무대가 되고, 어디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할까요.
젊은이는커녕 어린이 하나 만날 수 없는 시골마을 흙일꾼 보금자리에서 두 아이와 부대끼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시골마을 어디를 가든 어린이 뜀박질이나 갓난쟁이 울음소리 듣기 힘듭니다. 아예 없지는 않아요. 아주 힘들 뿐입니다. 더구나, 시골마을 구석구석 자동차가 몰려들어 시골 아이라 해서 마음껏 고샅길을 뜀박질하기란 힘들어요.
우리 아이들한테는 무슨 빛깔이 있을까요. 온통 도시에서만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한테는 무슨 내음이 날까요. 오직 도시로 가도록 등떠밀리는 우리 아이들한테는 무슨 소리가 샘솟을까요.
빛깔도 내음도 소리도 그저 잿빛 시멘트와 차가운 쇠붙이에다가 딱딱한 플라스틱인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한국 어린이는 《우산도둑》에 어리는 빛깔·내음·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여 마음밥으로 삼을 만할까요. 아니, 한국 어린이에 앞서 이 그림책을 아이들한테 사서 선물할 한국 어른은 이 그림책에 감도는 빛깔·내음·소리를 얼마나 가슴으로 살포시 받아안을 수 있나요. (4344.12.3.흙.ㅎㄲㅅㄱ)
― 우산도둑 (시빌 웨타신하 글·그림,엄혜숙 옮김,보림 펴냄,2011.10.10./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