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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47
미우치 스즈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1월
평점 :
삶을 이루는 어여쁜 빛
[만화책 즐겨읽기 88] 미우치 스즈에, 《유리가면 (47)》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충청북도 음성에서 전라남도 고흥까지 멀디먼 길을 찾아와 주었습니다. 자그마치 다섯 시간을 달려 찾아와 주셨는데, 하룻밤 묵지 않고 다시 길을 돌려 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작은 시골집은 어른들 모시기 힘들다 할 만할 수 있지만, 작은 집 작은 방은 오붓하게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기에는 참 알맞춤합니다.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이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제대로 붙잡지 못해서 바로 돌아가셨을 수 있지만, 두 분은 오늘 아침 일찍 길을 떠나 들른 다음, 늦지 않게 댁으로 돌아갈 일을 헤아리며 찾아오셨지 싶어요. 남녘땅은 따순 바람 부는 날이지만, 내 어버이 살아가는 충청도 음성은 벌써 영 도 밑으로 육 도라 하니까, 집살림을 걱정하실 수 있겠다 싶어요.
곧장 돌아가시려는 분들한테 부랴부랴 밥상을 차립니다. 밥을 뜨고 국을 뜨며 수저 놓고 김치를 올리면, 아무리 바삐 돌아가시려 하더라도 한 술쯤 뜨시겠거니 생각했습니다. 1995년에 제금난 뒤 2003년 즈음 한 번 밥을 차린 적 있을 뿐, 이제껏 두 분한테 밥을 차려서 드린 적이 없기에, 오늘은 꼭 밥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두 분이 밥상에 앉습니다. 함께 밥술을 뜹니다. 네 살 첫째 아이는 밥을 안 먹고 딴짓만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찾아와서 기쁜 나머지 밥을 못 먹습니다. 할아버지는 네 살 아이를 보며 “밥 안 먹고 딴짓하는 건 옛날하고 똑같구나.” 하고 이야기합니다. 문득, 이 말은 아이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아이 아버지인 내가 어린 나날 이러한 모습이었다고 들려주는 말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내 네 살 무렵 어린 나날, 나는 밥먹기보다 딴짓하기에 더 빠졌는지 몰라요.
곰곰이 헤아립니다.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네 살 무렵, 다섯 살 언저리, 여섯 살 즈음이라 하지만, 내 몸에는 내가 살아낸 한 살 두 살 세 살 이야기가 차곡차곡 아로새겨졌으리라 믿습니다. 내가 밥자리에서 딴짓을 한다고 아버지한테서 꾸지람을 듣거나 형한테서 꿀밤을 얻어먹지 않았던가, 하고 돌아봅니다.
- “사람들이 자꾸 쳐다봐요. 우리를.” “난 전혀 상관없는데. 신경 쓰이나?” “아니, 전 괜찮지만, 약혼녀 분이 아시면.” (8쪽)
- ‘우와! 나, 마스미 씨랑 춤을 추고 있어! 이렇게 가볍게 나는 듯이! 처음인데! 믿어지지가 않아! 꿈만 같아!’ (23쪽)
- ‘뭐지? 난 지금 마스미 씨랑 즐겁게 얘길하고 있어. 이렇게 자연스럽게. 전엔 그토록 미운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곁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 그저 기쁠 뿐!’ (46쪽)
내 마음은 내 고향인 인천을 비롯해, 서울이든 충청도이든 부산이든 어디이든, 크고작은 모든 도시하고 멀찍이 떨어진 시골마을에서 살아가고픕니다. 고향 인천에서 살아가며 골목마실을 날마다 몇 시간씩 아이를 안고 업고 하며 할 때에도, 이 아름다운 골목이웃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는 기쁨보다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살붙이들과 살아가는 나날을 꿈꾸었습니다. 다만, 어떤 모습 어떤 그림이 될 때에 아름다울까 하는 대목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내가 도시로 찾아가기에 빠듯하고, 도시에서 우리한테 찾아오기 벅찬 외진 시골에서 사랑스레 살아가면 참 즐겁겠다고 여겼습니다.
크고작은 도시에서, 또 내 어버이 살아가는 충청북도 음성에서 바라보자면, 전라남도 고흥은 참 멉니다. 그러나, 고흥군 테두리에서 헤아리자면, 이곳 사람은 이곳 삶자락 결과 무늬대로 예쁘며 아름답습니다.
나는 아직 스스로 흙을 일구거나 돌보거나 사랑하면서 밥·옷·집을 마련하는 삶을 붙잡지 못합니다. 흙일을 옳게 할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할 텐데, 이보다는 흙을 어떻게 만지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껴안을까 하는 삶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내 삶을 먼저 예쁘게 그려야 합니다. 흙에 터 내리려는 우리 집을 어떻게 꾸미고, 어떻게 다스리며, 어떻게 돌보면서 네 식구 오순도순 지내야 좋을까 하는 그림부터 찬찬히 그려야 해요.
- “(1천만 엔짜리 수표를 찢으면서) 이게 내 마음이야. 그녀(약혼녀)에겐 내가 직접 전해 주지. 뒷일은 신경 쓰지 마.” (13쪽)
-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 그 말은…….’ (84쪽)
- ‘이제 곧 꿈같은 시간이 끝난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그것만으로도 충만해지는 느낌이니까.’ (100쪽)
날마다 아이들 사진을 쉰 장이나 예순 장 남짓 찍습니다. 날마다 새롭고, 언제나 싱그럽구나 싶어, 이 아이들 사진을 날마다 쉬지 않고 찍습니다. 나는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누군가 내 곁에서 내 모습을 사진으로 담거나 내 삶을 글로 싣지 않아요. 나는 시골살이를 내가 느끼거나 받아들이는 대로 사진과 글로 옮긴다 할 텐데, 내 살붙이가 이 시골살이를 내 살붙이대로 느끼거나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살짝 궁금하면서 여러모로 떨립니다. 내 눈길만으로는 막상 내 삶길조차 슬기로이 여미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모자람과 못남이, 내 살붙이 눈길로 바라볼 때에 훤히 드러나겠구나 싶어 부끄럽고 낯이 벌개집니다.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1) 47권을 읽습니다. 47권째에 이르러 마사미 씨는 당신 마음을 더는 숨기지 못하겠다고 털어놓습니다. 47권째에 이르러 마야 또한 제 마음을 꾸밈없이 밝힙니다. 이제껏 빙빙 맴돌거나 겉돌면서 ‘껍데기·이름·돈·힘줄·얼굴·나이·신분’ 들에 얽매였으나, 47권에서는 가까스로 이러한 굴레가 얼마나 덧없는가를 드러냅니다.
곧, 마사미 씨는 삶을 일구는 보람이 무엇인가를 온마음으로 깨닫는 새날을 맞이합니다. 마야는 삶을 아끼는 빛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느끼는 새날을 맞이합니다. 사업을 벌여 회사를 꾸리는 일이든, 연극을 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펼치는 일이든, 집에서 살림하는 일이든, 가게에서 장사하는 일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서 밑바탕이 되면서 든든한 뿌리가 되는 대목이 무엇인가를 두 사람은 비로소 알아차립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텐데, 시오리 씨나 아유미는 사람이 살아가는 밑바탕을 깨닫거나 느끼지 못합니다. 두 사람은 무엇 하나를 거머쥐려는 뜻은 있으나, 무엇 하나를 거머쥐어서 당신 삶이 얼마나 즐겁거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헤아리지 못해요. 아니, 생각하지 못합니다. 시오리 씨가 마사미 씨와 혼인한대서 즐거운 나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아유미가 홍천녀 배역을 따낸다 해서 즐거운 나날을 누릴 수 있는가요.
사랑이 없는 혼인은 죽음입니다. 사랑이 없는 연극은 빈틈없는 재주놀음입니다. 사랑이 없는 혼인으로는 사랑을 낳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이 빈틈없는 재주놀음을 선보이는 연극으로는 사랑을 들려주지 못합니다.
- “맙소사! 하늘이 온통 장밋빛이야! 그쵸? 이렇게 아름다운 일출은 태어나 처음 봐요! 크고 힘차고 아름다운 태양이 서서히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어요. 다행이다! 마스미 씨도 볼 수 있어서!” (50쪽)
- “사쿠라코지. 저 아일 연습장까지 무사히 좀 데려다 줘.” “예? 아, 네!” “너흰 아주 소중한 배우야. 시연이 얼마 안 남았으니 모쪼록 운전 조심하고.” (117쪽)
홍천녀를 연극하는 일이란 더 놀랍고 더 빼어나며 더 돋보이는 주인공이 되는 길하고는 동떨어집니다. 더 예뻐야 배역을 얻지 않습니다. 연기를 더 잘해야 주인공이 되지 않아요. 홍천녀가 살아가는 터에서 무엇을 사랑하면서 아끼는 나날인가를 깨달아야 비로소 홍천녀를 연기할 수 있습니다. 홍천녀와 마주하는 아츠신 또한 이와 마찬가지예요. 돈이 많아야 아츠신이 아니에요. 얼굴이 잘생기거나 어떤 재주가 대단해야 아츠신이지 않아요. 아츠신과 홍천녀는 ‘처음부터 한몸 한마음’이던 두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한몸 한마음이던 사랑이란 아츠신이요 홍천녀이면서, 바로 여느 삶터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넋이에요.
마야는 어릴 적부터 마야네 어머님을 비롯해 마야네 동무한테서 따사로이 사랑받았고, 마야도 따사로이 사랑을 나누는 길을 걷습니다. 아유미는 어릴 적부터 아유미네 어버이를 비롯해 마유미네 극단 사람들한테서 따사로이 사랑받은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아유미 스스로도 사랑을 나누는 길하고는 멀찍이 떨어집니다.
마야는 사랑이 감도는 사랑빛을 내뿜습니다. 아유미는 빈틈이 보이지 않는 놀라운 바람을 일으킵니다. 아마 적잖은 사람들은 사랑빛을 못 느끼고, 놀라운 바람에 휩쓸릴는지 몰라요. 사랑을 담은 노래보다는 놀랍게 부르는 노래에 더 이끌리는 사람이 많기도 하듯, 사랑을 담은 조그맣고 조촐한 일자리보다 돈을 더 주는 일자리에 이끌리는 사람이 많기도 하듯, 어쩌면 홍천녀 배역은 마야 아닌 아유미한테 갈는지 모릅니다.
- ‘아아, 이제 더는 안 돼! 완벽하게 졌다! 이 이상 내 마음을 속일 수가 없어!’ (74∼75쪽)
- ‘해내라, 사쿠라코지! 몸도 마음도 온통 상처투성이인 이츠신을! 네가 이제부터 만들어 낼 이츠신은, 어쩌면 천하의 아카메 케이를 넘을 수 있을지도 몰라!’ (171쪽)
미야는 홍천녀를 연기할 수 있어도 기쁘지만, 홍천녀를 연기할 수 없어도 기쁠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야한테는 홍천녀가 처음이자 끝이 아닙니다. 마야한테는 날마다 새날입니다. 마야는 홍천녀를 연기할 수 있으면, 나중에는 홍천녀와 새롭게 어깨를 견주거나 홍천녀에서 새로 거듭나는 또다른 연극을 선보이는 길을 걸으리라 봅니다. 홍천녀에서 누리는 사랑과 홍천녀에서 누리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나날을 새롭게 느끼거나 깨닫는 사랑을 싣는 또다른 연극이 태어나도록 이끌 수 있어요.
아유미는 홍천녀를 연기하면 더는 연기할 길이 없습니다. 막다른 길에서 꼭대기까지 오른들, 더 오를 꼭대기가 없다 한다면 무슨 힘과 무슨 꿈과 무슨 보람과 무슨 땀으로 연기를 할 수 있으려나요.
삶을 이루는 어여쁜 빛을 보아야 합니다. 삶을 일구는 아름다운 빛을 누려야 합니다. (4344.11.27.해.ㅎㄲㅅㄱ)
― 유리가면 47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1.12.15./4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