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918) 있다 5 :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것처럼 뿌리를 내렸는데, 그 사이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 《호시노 미치오/김창원 옮김-숲으로》(진선출판사,2005) 15쪽
‘도대체(都大體)’는 ‘참으로’나 ‘참말’로 다듬습니다. 보기글에서는 ‘이게’나 ‘아니’를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 구멍이 뚫렸습니다
→ 구멍이 있습니다
→ 구멍이 났습니다
…
구멍은 뚫렸다고 말하면 됩니다. “뚫려 있는” 구멍이 아니라 “뚫린” 구멍입니다. 또는 구멍이 “났다”고 하거나 구멍이 “있다”고 하면 돼요. 구멍이 “생겼다”고 해도 됩니다. 구멍이 “보인다”고 할 수 있어요.
어느 낱말을 넣으면서 느낌을 살릴 만한가를 헤아립니다. 어느 낱말로 내 생각을 잘 밝힐 만한가 돌아봅니다.
찬찬히 헤아리면 빛나는 말구슬을 엮을 수 있습니다. 곰곰이 되씹으면 알뜰하다 싶은 말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만큼 빛나는 말구슬이 되고, 사랑하는 만큼 알찬 말열매가 돼요.
땅을 딛고 서 있는 것처럼
→ 땅을 딛은 듯이
→ 땅을 딛고 선 듯이
…
한국사람이면서 정작 한국말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못 빛내곤 해요. 한국사람이니 한국말을 슬기로이 배워야 하는데, 막상 한국사람은 한국말은 안 배우곤 합니다. 어린이는 어린이 눈높이에서 한국말을 알맞게 배울 노릇이요, 어른은 어른 삶자리에서 한국말을 알뜰살뜰 배울 노릇입니다.
나이든 사람은 나어린 사람 앞에서 바르며 웅숭깊은 말마디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나어린 사람은 나이든 사람 앞에서 싱그러우며 따사로운 말마디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바르면서 깊은 말입니다. 옳으면서 사랑스러운 말입니다. 참다우면서 어여쁜 말입니다. 착하면서 따스한 말입니다. (4344.11.24.나무.ㅎㄲㅅㄱ)
우리 말도 익혀야지
(919) 있다 6 : 앉아 있는데
.. 논 가운데를 지나가는 전깃줄 위에 / 물총새 한 마리 / 구경꾼처럼 앉아 있는데 .. 《임길택-나 혼자 자라겠어요》(창비,2007) 72쪽
아이 어머니가 아이 앞에서 “하고 있는데” 같은 말투를 곧잘 씁니다. 네 살 아이는 어머니 말투를 고스란히 따라하면서 “하고 있는데”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가 네 살부터 이 말투를 쓴다면 앞으로 말버릇을 고치기 힘들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이러한 말버릇뿐 아니라 제 어버이가 하는 모든 삶버릇을 따라해요. 이를테면, 아이 어머니는 이녁 스스로 못 느끼는 얄궂은 말투 몇 가지가 있다지만, 아이 아버지는 나 스스로 못 느끼며 잘못 하는 몸짓이나 매무새나 일이 있습니다. 어버이로서 내가 착하게 살아갈 때에 아이 또한 착하게 살아갑니다. 어버이로서 내가 참다운 길을 걸을 때에 아이 또한 참다운 길을 걸어요.
옳은 일과 바른 꿈과 착한 넋을 건사하는 어버이는 못 되면서 말투 하나만 번듯하게 가꿀 수 없습니다. 맑은 삶과 밝은 사랑과 고운 뜻을 돌보는 어버이는 아니면서 말마디 하나만 예쁘장하게 꾸밀 수 없어요.
구경꾼처럼 앉아 있는데
→ 구경꾼처럼 앉았는데
→ 구경꾼처럼 앉아 노래하는데
→ 구경꾼처럼 앉아 지켜보는데
…
일과 놀이를 가다듬으면서 말과 글을 함께 가다듬어야 아름답습니다. 꿈과 사랑을 추스르면서 말과 글을 나란히 추슬러야 빛납니다. 넋과 뜻을 보살피면서 말과 글을 함께 보살필 때에 즐겁습니다.
말부터 옳게 쓰자며 애쓸 수 있을 테지만, 삶부터 옳게 다스리고 삶버릇부터 참다이 다독인다면, 내 말이며 글은 시나브로 옳게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4344.11.24.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