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시골버스
서울 같은 큰도시 버스는, 손님이 삯 치르고 나서 자리에 앉거나 손잡이를 잡기 앞서 부르릉 하고 떠난다. 바쁘니까. 시내버스 일꾼을 탓할 수 없다. 이렇게 바삐 움직여야 바쁜 일 하는 손님들은 늦지 않게 저마다 갈 곳에 닿을 수 있다. 시내버스 일꾼이 손님이 자리에 앉거나 손잡이를 잡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린 다음 부르릉 하고 움직인다면, 시내버스 탄 손님은 저마다 가야 할 곳까지 퍽 늦을밖에 없다. 전철에서도 이와 똑같다. 전철역마다 ‘준법 운행’을 하면, 아마 전철을 탄 사람들 아우성이 넘쳐나겠지. 모두들 너무 바쁜 나머지 1분을 기다릴 줄 모를 뿐 아니라 10초마저 기다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느 사람들 마음이 이러하기 때문에, 서울 같은 큰도시 버스 일꾼이 손님이 버스삯을 카드로 찍거나 맞돈으로 치르지 않았는데에도 곧바로 부르릉 하고 떠나는 일을 탓하면 안 된다. 여느 사람들은 이처럼 버스 일꾼이 서두르기를 바라니까. 여느 사람들은 버스 일꾼이 더 서둘러서 더 빨리 달리기를 바라니까.
그래서, 나는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 살아갈 수 없다.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 살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 버스나 전철 모두 타고 싶지 않다.
나한테는 자가용이 없다. 자가용 없는 주제에 버스와 전철을 안 타고 무슨 수를 쓰나 궁금해 할는지 모른다만, 나는 자전거를 탄다. 두 다리로 걷는다.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걸으면 된다. 어찌할 수 없을 때에는 버스나 자전거를 탄다. 여느 때에는 자전거와 두 다리로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 읍내버스나 군내버스는 손님이 자리에 앉지 않았는데도 서둘러 부르릉 하고 떠나는 일이 없다. 언제나 기다린다. 재촉하지 않는다. 늘 기다린다. 다그치지 않는다. 알맞춤한 빠르기로 달리고, 알맞게 볼일을 보며, 즐거이 살아가면 된다.
바삐 움직이고 싶으면 빨리 먹고 빨리 죽으면 된다. 나는 빨리 먹거나 빨리 죽고 싶지 않다. 내 삶을 누리고 싶다. 내 나날을 즐기고 싶다. 내 목숨을 사랑하고 싶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 모두 따사로우면서 넉넉하게 어깨동무하고 싶다. (4344.10.13.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