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알베르 카뮈 전집 20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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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아끼면서 활짝 웃는 살붙이
 [책읽기 삶읽기 78] 알베르 카뮈, 《시사평론》(책세상,2009)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고 하는 일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 또한 대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 태어난 목숨은 이웃인 사람을 좋아하면서 살아갈 목숨이니까요. 아주 마땅하면서 보드라운 흐름인 ‘좋아하기’와 ‘사랑하기’라고 느껴요.

 좋아하기 때문에 함께 팔짱을 낀 채 걷고 싶습니다. 좋아하니까 살을 부비고 싶기도 하고, 마냥 바라보고 싶기도 하겠지요.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수다를 늘어놓고 싶기도 합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이제껏 생각조차 하지 않던 이야기를 끝없이 털어놓아도 고마우면서 즐겁게 귀기울여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나라 삶터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퍽 많은 사람들은 썩 좋아하지 않으면서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합니다. 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그닥 좋아하지 않으면서 글을 쓰거나 책을 내거나 학교를 다닙니다.

 나는 이 나라를 딱히 사랑하지 않습니다만, 딱히 밉게 여기거나 나쁘게 돌아보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목숨을 사랑하고, 내 목숨처럼 내 이웃 목숨을 사랑할 뿐이라고 느낍니다. 나라는 그야말로 대수롭지 않아요. 정부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정부가 무너지거나 서는 일은 나라가 무너지거나 서는 일이 아니에요. 여느 살림집 어머니나 아버지 한 사람이 죽는 일이 곧 나라가 죽는 일이요, 여느 살림집에 아기가 태어나는 일이 바로 나라가 사는 일이에요.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 제대로 힘을 냅니다. 내 옆지기는 내 옆지기대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 신나게 기운을 냅니다. 다른 사람 누구나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참말 힘이 나고 기운이 샘솟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돈을 벌어야’ 하거나 ‘이름을 지켜야’ 하거나 ‘힘을 누려야’ 하기 때문에 한다면, 얼마나 고단할까요. 얼마나 슬플까요. 얼마나 안타까이 삶을 버리는 셈이 될까요.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벌어야 할 돈은 그닥 많지 않아요.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벌어야 할 돈은 따로 없어요. 우리는 돈을 벌려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좋아하면서 살아갈 사람이거든요. 서로 아끼고 좋아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내 살림을 일굴 만한 돈을 벌면 돼요.


.. 우리의 욕심은-많은 경우 소리 없는 것이었기에 그만큼 더 내심 깊은- 그 신문들을 돈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대중을 그들이 내면에 지닌 최상의 것의 높이로 끌어올릴 만한 어떤 어조와 진실성을 그 신문들에 부여하자는 데 있었다 ..  (38쪽)


 알베르 카뮈 님이 쓴 《시사평론》(책세상,2009)을 읽었습니다. 이태 앞서 나온 책을 이태 앞서 읽었습니다. 이태 앞서 읽고 이태에 걸쳐 묵혔습니다. 이태 동안 묵히느라 내 책꽂이는 아주 어수선합니다. 왜냐하면, 《시사평론》 하나만 내 책꽂이에서 이태를 묵지 않으니까요. 《시사평론》을 비롯해 500권쯤 되는 책이 이래저래 꽂히거나 눕거나 쌓이면서 묵습니다. ‘한 번 다 읽었다’ 하더라도 ‘한 번 다 읽은 그때’에 이 책들에 서린 넋과 삶과 말이 내 넋과 삶과 말로 고스란히 스며들거나 녹아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기다려야 해요. 바라보아야 해요. 생각해야 해요. 이러면서, 살아내야 해요.

 밥을 먹은 곧바로 힘이 나지는 않습니다. 기다립니다. 어떤 밥을 먹었는가 제대로 깨달아야 합니다. 앞으로 어떤 밥을 먹으면서 살고 싶은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 앞길뿐 아니라, 옆지기와 아이들과 내 어버이와 옆지기 어버이와, 숱한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돌아보며 살아내야 합니다.

 착한 길을 걸어야 하고, 참다운 길을 돌봐야 하며, 아름다운 길을 나누어야 합니다.


.. 우리의 은밀한 소원은 악이 승리하여 날뛰고 신의 입에 재갈이 물려 있던 바로 그때 그 말을 해 주는 것이었다 ..  (73쪽)


 ‘알베르 카뮈 전집 20번’이 마무리되었다는 뜻으로 《시사평론》을 읽어치울 수 있습니다. 굳이 느낌글을 안 쓰고 소개글이나 추천글을 써도 되겠지요. 애써 내 삶과 넋과 말을 톺아보면서 이 책 하나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돼요. 내 지식과 지성과 철학을 북돋우거나 자랑하려는 허울로 삼아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 《시사평론》은 한국사람이 붙인 책이름이 ‘시사평론’이라지만, 정작 알베르 카뮈 님이 쓴 글에는 ‘사랑’이 감도는걸요. ‘사랑이야기’이지 ‘시사평론’이 아닌 《시사평론》입니다.


.. 아무리 봐도 스스로에게 편리한 것만을, 그것도 가장 유리한 때에만 공개하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 정부는 책임이 크다. 그러나 그 책임이 아무리 크다 해도 기자들의 책임은 그보다 더 크다 ..  (145쪽)


 삶을 사랑하려는 카뮈 님 넋을 담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려는 카뮈 님 삶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무척 아쉽지만,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말’이 제대로 살아숨쉬는가는 모릅니다. 알베르 카뮈 님이 프랑스말로 썼을 글은 프랑스사람들한테 ‘어떤 말’이었는지 모르거든요. 한국말로 옮겨진 《시사평론》에 담긴 ‘말’은 이 나라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말’하고 얼마나 가깝거나 이어지거나 맞닿는가를 알 수 없거든요.


.. 진정한 예술가들은 훌륭한 정치적 승리자는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대편의 죽음을, 아, 나는 그걸 잘 알고 있다,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들은 죽음의 편이 아니라 삶의 편이다. 그들은 법 쪽의 증인이 아니라 육체 쪽의 증인이다 ..  (276쪽)


 알베르 카뮈 님 책을 이제 와서 다시 읽는다면, 또 프랑스 아닌 한국에서 애써 알베르 카뮈 님 책을 새로 읽는다면, 지식이나 지성이나 진보나 개혁이나 사상이나 철학 때문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기나긴 나날과 머나먼 거리를 가로지르는 사랑을 담았으니, 이 사랑을 함께 나누는 아름다움을 빛내려고 다시 읽거나 새로 읽는 책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법이 아닌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렇지요. 예술을 모르는 여느 살림꾼 어머님들은 역사가 아닌 삶을 사랑합니다.

 나를 낳은 내 어머니는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습니다. 내 어머니는 이름값이나 돈이 아닌 ‘당신 아이 하나라는 어린 목숨’을 사랑했습니다. 알베르 카뮈 님을 낳은 어머님은 역사에 이름이 남을까요. 알베르 카뮈 님을 낳은 어머님을 낳은 어머님은, 또 이 어머님을 낳은 어머님은 역사이건 어디이건 이름을 남길 만할까요.

 사랑을 물려받아 사랑을 누렸기에 사랑을 글로 담습니다. 《시사평론》은 서로 아끼면서 활짝 웃는 살붙이들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4344.9.17.흙.ㅎㄲㅅㄱ)


― 시사평론 (알베르 카뮈 씀,김화영 옮김,책세상 펴냄,2009.12.1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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