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3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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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든 정부는 모든 사람을 바보로 삼는다
 [만화책 즐겨읽기 58] 데즈카 오사무, 《불새 3》



 ‘초등 기초 교육’은 아주 좋은 뜻이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길을 열었으니까요. 그런데 ‘초등 기초 교육’으로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초등 기초 교육을 받으면서 무슨 기쁨을 누리거나 어떤 보람을 맛볼는지요. 누구나 초등 기초 교육을 받는 일은 고맙지만, 아이들 마음밭에 무엇을 심는가를 돌아본다면, 왜 초등 기초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내 어린 나날을 돌이킵니다.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그대로 있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이 초등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학교를 꼭 다녀야 하는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국민학교를 잘 마쳤습니다. 여섯 해 개근이나 정근은 하지 못했지만 한두 차례 개근을 하면서 잘 다녔습니다. 아니, 허울이 좋아 여섯 해 개근이나 정근을 말하지, 내 어린 나날 ‘학교에 가지 않’으면 집과 학교에서 신나게 몽둥이 선물을 받아야 했습니다. 숙제를 안 해도 몽둥이질, 말을 안 들어도 몽둥이질, 말대꾸를 해도 몽둥이질, 뭐를 어겨도 몽둥이질, 심부름을 안 해도 몽둥이질, 골마루에서 뛰어도 몽둥이질, 학교에 늦어도 몽둥이질, 폐품을 적게 내거나 안 내도 몽둥이질, 일기를 안 써도 몽둥이질, 시험성적이 낮아도 몽둥이질, 떠들어도 몽둥이질, 늘 몽둥이질이었어요. 학교를 안 다닐 수도 다닐 수도 없는 삶이었습니다.


- “하와이라, 햇빛, 파도, 바닷바람, 하얀 모래사장, 아아, 난 정말 행복해. 게다가 타마미 네가 있잖아. 이곳엔 모든 것이 있어. 우주도 있지. 난 정말 행복해.” “나도, 나도 행복해.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당연하지, 난 절대로 네 손을 놓지 않을 거야.” (12쪽)
- “못해! 난 너를 죽일 수 없어!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지! 아아, 타마미! 넌 내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야. 난 오랫동안 차가운 인간이었어. 록 같은 원칙주의자였지. 그런 내게 인간다운 사고방식을 불어넣어 준 게 바로 너야.” “난 당신 손에 죽어도 괜찮아. 당신은 지금까지 날 곁에 있게 해 줬잖아. 당신이 죽으라면 기꺼이 죽겠어.” (25쪽)



 나는 온통 몽둥이질밖에 없는 학교를 다니면서 오직 한 가지 때문에 버티었습니다. 동무들하고 하루 내내 신나게 논다는 생각 하나로 버티었습니다. 이무렵,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놀 자유도 권리도 없었습니다. 학교를 다녀야 비로소 놀 수 있었어요. 더구나, 학교를 그냥 다녀서는 놀 자유와 권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참말 괴롭도록 자주 치르는 시험에서 이럭저럭 괜찮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성적이 나와야 놀 자유와 권리를 받습니다.

 다른 학교는 어떠한지 모릅니다. 나는 내가 다닌 국민학교만 압니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서는 월말시험이 있었습니다. 월말시험에다가 중간시험과 기말시험이 있었고, 주마다 불쑥 치르는 쪽지시험이 있으며, 한 해에 두 차례씩 전국평가라는 시험이 있을 뿐 아니라, 무슨 참고서 회사에서 만든 시험이 있어요. 참고서 회사에서 만든 시험은 학교에 돈을 주어 시험을 치르도록 합니다. 참고서 회사는 저희네 문제집을 만드는 데에 쓸 자료를 모으려고 이런 시험을 치를 텐데, 이러다 보니 한 해 내내 시험이 끊이지 않아요. ‘국민학생’일 뿐인데.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가서 다른 국민학교를 나온 동무들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서 치른 시험은 ‘썩 모질지’ 않았습니다. 인천에서 조금 더 ‘이름나다’고 하는 데에서는 훨씬 모질게 시험으로 아이들을 짓밟았더군요.

 그래도 나는 용케 시험성적이 아주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주 좋지도 않으나 그다지 나쁘지도 않았어요. 반에서 5등 안쪽에 든 일은 거의 없으나 10등을 벗어난 적도 없습니다. 눈에 뜨이는 성적이 난 적이란 없고, 누가 눈여겨본 일도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학교 공부를 썩 잘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놀 때에는 신나게 놀고, 공부하는 때에는 거의 딴짓을 하지 않았어요. ‘국민학생 주제’에도 ‘나조차 다 알 만한 따분한 이야기’를 하는 수업에서는 딴짓을 하다가 걸려 두 손 들고 골마루에 서는 일이 곧잘 있기는 했지만, 수업을 할 때에 교과서나 공책에 ‘선생님이 하는 말’을 남김없이 받아적었습니다. 그냥 내 느낌으로 다 받아적어야겠구나 싶어 이렇게 했습니다. 중학생 때에도 고등학생 때에도 똑같습니다. 토씨 하나까지 어기지 않으면서 고스란히 받아적는 일을 했어요.

 어쩌면, 이만큼 했으니 학교 시험성적이 그럭저럭 괜찮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나왔을 테고, 국민학생 때에 아주 마음껏 뛰놀면서 거리낌이 없었다 할 만합니다.


- “세상은 정말 멋진 곳인 것 같아요. 난 이제 이 통 속이 지겨워요.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안 돼! 그 인공양수에서 나오면 넌 바로 죽는단다.” “많은 책들을 읽고 나니 난 좀 더 많은 지식을 얻고 싶어졌어요! 날이 새고 져도 보이는 거라곤 연구실 벽뿐이에요. 난 초록빛 나무며 풀이며 파란 하늘, 작은 새들의 노래를 직접 느끼고 싶어요.” (39쪽)
- “나만이 살아남아, 대체 무슨 기쁨이 있다는 거지? 무슨 삶의 의미? 천 년, 만 년, 1억 년이나 죽지 않고 있는다면, 난 그동안 뭘 해야 하는 거야?” (164쪽)
- “오래 살아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왜 그렇게 생명에 집착하는 거냐?” “그야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니까요.” “난 너의 선조인 하등한 괄태충을 아는데 너처럼 미련이 많지도 않았고, 아무 불평 없이 죽어 가더라. 넌 부끄럽지도 않냐?” “난 그런 하등동물이 아니에요! 죽는 게 무섭다구요. 제발 살려 줘요.” (257쪽)



 국민학생 때에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한테 나머지 공부를 시켰습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때에는 ‘공부를 곧잘 하는 아이’한테 나머지 공부를 시킵니다. 이른바 무슨무슨 특별 보충수업인데, 중학교 1학년이 되고부터 대입수험생처럼 다루었어요. 시험성적이 더 잘 나와야 한다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러나, 이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나보다 공부를 훨씬 잘 하는 아이한테 물었습니다. 공부를 훨씬 잘 하는 아이는 ‘저한테 경쟁자가 되는 녀석’이 물을 때에 좀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알려주어야지요. 왜냐하면, 아무리 공부를 잘 한다는 아이라 하더라도 모든 과목을 골고루 잘 하지는 않아요. 다른 과목이나 다른 데에서는 내가 그 아이를 봐주거나 도우니까,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셈이에요.

 마땅한 노릇이잖아요. 내가 잘 못하는 일은 도움을 받고, 내가 잘 할 만한 일은 도와주면 돼요. 이를테면, 나도 잘 몰랐지만, 나는 헌책방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즐겨 다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책’은 내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털거나 그러모아서 장만했는데, ‘내가 안 좋아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한 번씩 책시렁에서 끄집어내어 슥 훑고는 제자리에 꽂곤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안 좋아하는 책’이라 하는 책은 으레 ‘여느 사람들이 참말 좋아하는 책’이기 일쑤였어요. 이러하다 보니, 여느 사람들은 헌책방에 거의 찾아가지 않으면서 ‘판이 끊어진 책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는 푸념’만 신나게 늘어놓을 때에, ‘어디어디 헌책방에 가서 어디어디 책시렁을 보면 그 책이 보일 테니까, 한번 가 보시라’고 이야기합니다.

 뭐라고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은 내가 좋아하는 책대로 아낍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책’은 내가 좋아하지 않으니 굳이 살피거나 대수로이 여기지 않습니다만,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얼마든지 좋아할 만하니까 마음으로는 가만히 헤아려요.

 나는 자전거를 좋아하고 두 다리로 걷기를 좋아합니다. 여느 사람들은 자전거는 거의 안 탈 뿐더러 두 다리로 걷지 않아요. 여느 사람들은 그냥 자가용을 장만해서 탑니다. 여느 사람들 자가용을 얻어 탈 때에, 나는 자전거나 두 다리로 온누리를 쏘다닌 지난날을 돌이키면서 이곳저곳 길 이야기를 해요. 어떻든 ‘자가용으로 다니든 자전거나 두 다리로 다니든’ 길을 다녀야 할 테니까요.


- “지구는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존재랍니다. 그런 지구가 지금 죽어 가고 있어요. 인간이 병으로 쓰러지듯 지구도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어요.” “새여, 지구가 살아 있는 존재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구는 당신들이 보기엔 너무 커서 잘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가령 세균도 자신이 기생하는 생물의 몸이 살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51쪽)
- “지구는 죽어서는 안 돼요. 살아야만 해요. 그런데 뭔가가 잘못되어 지구를 죽이려 했어요.” “뭔가가 잘못되다니?” “인간이라는 아주 작은 생물이에요. 인간을 낳고 진화시켰는데 그 진화의 방법이 잘못됐던 것 같아요. 인간을 일단 무로 돌린 뒤 다시 시작해야 돼요. 한 번 더 인간은 태어나서 새로운 문명을 개척할 거예요.” (156쪽)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3권을 읽는 동안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국에 사천만 사람이 살아간다면 사천만 가지 다 다른 아름다움이 있고, 날마다 죽는 옛 아름다움 못지않게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새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나는 1975년부터 2011년까지 서른일곱 해를 살아가니까, 이동안 마주하는 아름다움이란, 또 내가 부대끼지 못한 아름다움이란, 이 조그마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만 하더라도 1억뿐 아니라 10억이나 100억이 될 만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새로 죽고 새로 태어났’는데요.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새로 죽고 새로 태어나’겠습니까.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아름다움입니다. 누가 더 좋거나 누가 더 나쁘다고 함부로 따질 수 없습니다. 이이는 이이대로 아름답고 저이는 저이대로 아름답습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누구를 사귀지 못했어요. 아니, 이성친구라는 사람을 사귈 수 없었습니다. 이성친구이든 짝꿍이든 옆지기이든, 이 나라 법이나 제도로는 한 사람하고만 살도록 하는데, 나는 도무지 누구를 ‘고를’ 수 없었습니다.

 왜 골라야 할까요. 왜 따져야 할까요. 왜 나눠야 할까요.

 두 아이를 함께 낳고 시골집에서 지내는 옆지기를 돌아보면, 이녁은 이녁대로 아름답습니다. 때때로 내가 짊어질 수 없구나 싶은 일이 있습니다만, 이녁은 이녁대로 내 삶자락을 짊어질 수 없다고 여기는 일이 있어요. 서로 빈틈이 없을 짝꿍이란 없습니다. 서로 빈틈이 많은 짝꿍입니다. 다만, 서로한테 있는 빈틈을 기꺼이 사랑스레 녹이면서 받아들이느냐, 서로한테 있는 빈틈을 나 몰라라 하거나 너무 힘드니 손사래를 치느냐 하는 대목에서 갈립니다.

 만화책 《불새》 3권에서 잘 들려주는데, 사람마다 다 다른 아름다움을 ‘온누리 다 다른 정부’가 ‘정부라는 틀이 설 때에는 모두 똑같이’ 흐르면서,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아름다움’을 억눌러 모두 판에 박힌 모습으로 짜맞추려고 합니다.

 곧, ‘초등 기초 교육’이라는 허울이지만, 하나도 초등이 아니고 하나도 기초가 아닌 오직 ‘제도권 주입식 교육’이 되고 맙니다.


- “가령 시민들의 복장을 보면, 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들은 유난히 오래된 문명이나 역사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법률로 엄중히 규제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개인적인 감정에 휩쓸리기 쉬운 인간 정치가보다 전자두뇌의 계산에 의지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시장님?” (82∼83쪽)
- “록, 1시간 뒤면 전쟁이라고?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군!” “(컴퓨터) 할렐루야가 결정한 거예요.” “어째서 기계의 말 따위를 듣는 거지? 왜 인간들은 자기 머리로 판단하지 않는 거냐, 응?” (121쪽)


 데즈카 오사무 님은 1950년대 첫무렵부터 《불새》를 그렸습니다. 1950년대 일본은 ‘한국전쟁을 등에 업은 경제성장’으로 한쪽에서는 돈치레가 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경제성장이 있든 없든’ 언제나 똑같이 괴로운 가난한 삶이 이어져 죽어났습니다. 이른바 양극이라 할 텐데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아도 이와 비슷합니다.

 2010년대 한국에서 잘사는 사람은 그냥 잘살아요. 못사는 사람은 그냥 못살아요. 그런데, 잘사는 사람이 꽤 많을 뿐 아니라, 밥 걱정 안 하는 사람 또한 퍽 많습니다. 전세돈 5000만 원조차 없는 사람은 기껏 20%가 안 된다지요. 우리 식구는 내가 글 팔고 사진 팔아 다달이 겨우 70만 원쯤 벌이를 맞추기는 하지만, 세무서에 신고할 만한 근로소득은 20만 원쯤밖에 안 됩니다. 우리 식구는 이 사회에서 아주 극빈층입니다. 그나마 ‘영유아 보육시설 미이용 자녀 수당’이라는 제도가 생겨서 살짝 숨통을 트는데, 우리 집안 같은 식구는 한국땅에 아주 드뭅니다. 다들 이래저래 살림이 버겁다고 하지만, 누릴 물질문명은 다 누리면서 살아가요. 우리 식구는 ‘살아가는 즐거움’이 돈이나 물질문명에는 없다고 여겨 극빈층으로 지내면서도 날마다 다른 걱정이 없이 아이들하고 잘 지낼 뿐입니다. 전기를 거의 안 쓰고, 텔레비전이나 빨래기계 없이도 잘만 살아갑니다. 아니, 퍽 재미나게 살아가요. 아름다운 삶은 도시 한복판 커다란 빌딩숲이 아닌, 시골자락 조그마한 나무숲에 있거든요.

 만화책 《불새》 3권은 이 대목을 다룹니다. 한쪽에서는 물질문명으로 흥청망청 노래를 부르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아름답느냐’ 하고 묻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갈 길이 어디인가 하고 묻습니다. 일본이 온누리 한복판이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일본부터 달라지면서 거듭나야 비로소 지구별이 아름답게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이 대목을 걱정하면서 마음쓰고 살핍니다. 삶을 아끼고 사랑해야지, 돈·이름·힘을 아끼거나 사랑하면 안 돼요. 사람을 아끼며 사랑해야지, 물질문명이나 역사나 제도권 정치를 아끼거나 사랑하면 안 돼요.

 모든 정부는 모든 사람을 바보로 만듭니다. 모든 정치는 모든 살림집을 바보스레 내몹니다. 서울시장이 누가 되건 대단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으로 누가 뽑히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내 삶을 내 손으로 아름다이 일구지 않으면, 지구별은 조금도 아름다운 터전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즐거이 붙잡을 내 일거리를 내 온 사랑과 믿음으로 돌보지 않는다면, 내 나라나 내 겨레는 하나도 따스하지 않습니다. (4344.9.15.나무.ㅎㄲㅅㄱ)


― 불새 3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2.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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