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시스터즈 2
쿠마쿠라 다카토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오늘 이곳에서 살면서 바라보는 모습
 [만화책 즐겨읽기 63] 쿠마쿠라 다카토시, 《샤먼 시스터즈 (2)》



 한 해에 한 번 맞이하는 한가위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밝고 크게 보이는 달이 뜹니다. 한가위처럼 한 번 맞이하는 설날에도 더없이 밝으며 크게 보이는 달이 뜨고, 큰보름날에도 참으로 밝으며 크게 보이는 달이 뜹니다.

 다른 여느 날에는 그다지 안 밝고 썩 안 크다 할 달이 뜬다 할 테지요. 그렇지만, 시골자락에서 올려다보는 달은 여느 날에도 참 밝으면서 크구나 싶은 별입니다. 달을 비롯해 수많은 별을 올려다볼 수 있습니다. 새까만 밤하늘을 느끼고, 이 새까만 밤하늘을 함께 올려다보는 우거진 푸나무를 느끼며, 우거진 푸나무에서 살아가는 뭇 풀벌레들을 느낍니다.

 사람은 작습니다. 사람은 작기 때문에 지구별에서 육십 억이든 칠십 억이든, 또 더 늘어나서 백 억이 되든 이렁저렁 살아갈 만합니다. 사람이 너무 크다면 육십 억은커녕 십 억이나 일 억조차 살아갈 만하지 않습니다. 너무 크면 너무 많이 먹어야 하고, 너무 많이 먹어야 할 때에는 지구별 크기로는 도무지 먹이를 댈 수 없어요. 사람은 작은 목숨이기 때문에 작은 먹이로 흐뭇합니다. 작은 밥그릇 하나로 넉넉하면서 고맙습니다. 굳이 넘치게 먹어야 할 까닭이 없고, 겉치레를 하자며 먹이를 헤프게 쓸 까닭 또한 없습니다.

 그런데 작은 사람은 스스로 작은 사람인 줄을 자꾸 잊습니다. 스스로 작은 사람인 줄 자꾸 잊으면서, 스스로 큰 사람인 듯 거들먹거린다든지 샛길로 빠집니다. 작은 사람 작은 밥그릇에 걸맞게 작은 살림을 일구면서 작은 사랑을 나누면 즐거울 텐데, 작지 않은 사람들은 작지 않은 밥그릇을 바랍니다. 작지 않은 밥그릇을 바라니까 작지 않은 살림을 키우려 하고, 작지 않은 사랑을 꾀하며, 작지 않은 돈을 벌려 합니다.

 누구나 옷과 밥과 집이 있어야 합니다. 작은 사람은 누구나 옷과 밥과 집을 스스로 마련했습니다. 스스로 옷과 밥과 집을 마련하기 빠듯할 때에는 내가 더 거두어들이는 옷이나 밥이나 집을 다른 사람하고 바꾸거나 주고받으면서 살림을 이었습니다. 쌀을 주고 물고기를 받든, 나무를 주고 옷감을 받든, 서로서로 옷과 밥과 집이 될 밑감을 스스로 마련해서 알맞게 나누었어요.


- ‘그래도 그날 아침은 왠지 상쾌한 기분이었다. 어쩌면 조금은 벗겨 줬는지도 몰라. 아, 그랬구나. (봄이 왔구나. 꽃이 피었구나.)’ (40쪽)


 조용히 착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지만, 나라가 서고 정치가 태어나며 경제가 이룩되는 동안 조용한 넋과 착한 얼을 잊거나 잃습니다. 조용하지 않고 착하지 않다 보니, 작은 사람으로 어깨동무하며 작은 살림을 사랑하던 매무새 또한 사그라듭니다. 바야흐로 전문쟁이가 태어납니다. 나라일만 돌본다는 전문쟁이가 태어납니다. 궁궐에서만 지내는 정치 전문쟁이 곁에서 심부름을 하는 전문쟁이가 태어나고, 정치일을 쥐락펴락 할 힘을 거머쥐려고 다투는 또다른 전문쟁이가 태어납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운동경기만 할 줄 아는 전문쟁이가 새로 태어납니다. 운동경기 전문쟁이 가운데에는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어들이는 몇몇이 있습니다. 한창 젊은 스물 몇 살에 ‘이제까지 온삶을 바쳐서 하던 운동경기’를 그만두어야 하기 일쑤입니다. 더 젊고 더 힘세며 더 잘난 뒷사람한테 내 자리를 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나 이제나 흙을 일구는 사람한테는 은퇴, 곧 내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란 없습니다. 흙을 일구는 사람은 어리건 젊건 늙건 내 옷과 밥과 집을 스스로 마련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결같이 먹고 입고 자야 하기에, 흙을 일구는 사람은 노상 내 옷과 밥과 집을 스스로 마련해서 스스로 쓰고 스스로 돌봅니다. 이와 달리, 정치 전문쟁이나 경제 전문쟁이나 운동경기 전문쟁이나 대입수험 전문쟁이나 대기업 전문쟁이나 공장 전문쟁이나 버스운전 전문쟁이는 ‘돈은 벌’되 ‘삶을 이루는 옷·밥·집’은 스스로 다스리거나 건사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아니, 살아가지만 살아간다는 뜻을 모릅니다. 살아간다는 뜻을 모를 뿐더러, 살아가는 아름다움이나 사랑이나 꿈을 잊어요.


- “미즈키, 이 말은 할아버지께서도 자주 하셨겠지만, 너나 시즈루의 능력은 저쪽 세계와 이쪽 세계를 잇는 고마운 능력이란다. 힘든 일도 있겠지만, 결코 그 능력을 갈고닦는 걸 게을리 해선 안 된단다.” (69쪽)
- “확실히 미코시는 흉악한 성격이 아니니까 계속 올려다보고만 있다간 죽을 수도 있어. 하긴 올려다보다 죽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지만.” “아, 우린 참 성가신 체질이구나. 앞으로 괜찮을까? 이대로 계속 할아버지한테 의지할 수도 없는데.” (78쪽)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거나 중학교라든지 고등학교 같은 데에 다니게 된다면, 이 일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할까 하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보통교육이나 기본교육이라 하는 초등학교조차, 이 초등학교를 다닐 여덟∼열셋 나이 어린이가 제 나이에 걸맞게 삶을 느끼거나 배우거나 받아들이거나 나누는 아름다움과 사랑과 꿈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옳게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에요.

 교과서에는 삶을 적바림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삶을 다루지 않으며 말하지 않습니다. 교과서로 수업진도를 나가는 교사는 삶을 이야기하거나 가꾸거나 북돋우지 않습니다. 특기교육이나 적성교육이란 얼마나 부질없나요. 현장수업이나 현장체험은 얼마나 덧없나요. 아이들한테는 모든 날 모든 수업 모든 이야기가 현장, 곧 내 삶터여야 합니다. 교사부터 삶을 가르치고 나누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학생은 삶을 배우며 어깨동무하는 보람을 누려야 합니다. 더 낫다는 성적을 거두어 더 낫다는 학교에 가는 일이 교사와 학생 모두한테 얼마나 뜻있거나 값있을까 궁금합니다. 전국 몇 %가 되어 이름나다는 대학교에 들어가는 일이 오늘날 아이들한테 훈장처럼 달린다면, 이런 훈장은 아이들 삶을 얼마나 따사로이 비추는 햇살이 될는지요.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손전화를 만지작거리도록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느 어른조차 스마트폰을 갖고 놀며, 나도 일 때문이라고 하면서 손전화를 씁니다. 나는 참말 일할 때에만 손전화를 쓰지만, 이 손전화 기계에는 전화를 걸고 받는 기능만 있지 않으니까, 아이들이 자꾸 만지작거리고 싶어 합니다. 따지고 보면, 어른인 나부터 이 손전화를 안 써야 옳은 셈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쓰거나 누리거나 가진 모든 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고스란히 물려받으니까요.

 어른들 스스로 사랑스러이 삶을 일구면서 사랑스러이 말을 나눈다면, 아이들은 이 사랑스러운 삶을 받아먹고 사랑스러운 말을 꽃피웁니다. 아이들을 입시학원 같은 데에 보내거나 특기학원 같은 곳에 넣는다 해서 아이들이 아이들 삶을 사랑스레 북돋울 수 없습니다. 피아노학원에 가야 피아노를 칠 수 있지 않아요. 태권도학원에 다녀야 태권도를 익힐 수 있지 않아요. 글쓰기학원에 가야 글을 쓸 수 있지 않아요. 요리학원에 다녀야 밥을 할 수 있지 않아요.

 삶을 모르는 아이들한테 삶을 가르치는 학원을 마련해서 보내야 하나요. 사랑을 잊는 아이들한테 사랑을 느끼도록 하는 학원을 세워서 넣어야 하나요. 꿈을 놓치는 아이들한테 꿈을 붙잡는 학원을 만들어서 몰아세워야 하나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뿐 아니라, 아이를 낳지 않은 어른 모두, 나 스스로 옳고 바르며 해맑게 살아가는 터전을 사랑하면서 이 터전에서 어린 아이들이 즐겁고 신나며 아름다이 지낼 빛줄기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그저 보이기만 해선 더욱 불안해질 뿐이다. 보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넌 저쪽의 지식을 배우고 거기에 네 생각을 더해야 돼.” (81쪽)
- “네가 느꼈던 불안은 그런 거란다. 쿠단이 나타나서 무엇을 예언할 것인가보다는, 쿠단이 나타나 예언을 한다는 상황이 실제로 생기는 것. 쿠단은 언젠가 꼭 나타난단다. 두려워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돼.” (146쪽)



 쿠마쿠라 다카토시 님이 빚은 만화책 《샤먼 시스터즈》(대원씨아이,2004) 2권을 읽습니다. 1권은 한참 앞서 읽었지만, 아니 1권은 2004년에 일찌감치 읽었으나, 이때에 2권까지 읽자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곱 해가 지나고서야 비로소 2권을 손에 쥡니다. 《샤먼 시스터즈》는 몇 해 앞서 9권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기까지 1권만 달랑 읽고 뒷권은 하나도 읽지 않았습니다. 왜 안 읽었을까 하고 더듬으면, 아무래도 내 마음에 와닿지 못했으니 안 읽었다 할 텐데, 내 마음에 와닿지 못했다기보다는 내 마음이 이 만화책을 읽어 받아들이거나 헤아릴 만큼 무르익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누구한테나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만화책이 있습니다. 아니, 사람들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책이 있고 노래가 있으며 그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스스로 마음으로 못 읽고 마음으로 못 받아들이며 마음으로 못 헤아리는 책이나 노래나 그림이 있어요. 아름다운 책이지만 무엇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못 느끼곤 합니다. 사랑스러운 노래이지만 왜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못 느끼곤 해요. 놀라운 그림이지만 어느 대목에서 놀라운지 못 느끼곤 하지요.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틀에 사로잡히거나 갇힌 채, 무엇을 즐겁게 바라보고 무엇을 기쁘게 맞이하며 무엇을 아낌없이 부둥켜안아야 하는가를 잊습니다. 날마다 바라보지만 나 스스로 바라보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옳게 못 깨닫곤 합니다. 무엇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는지를 못 살피곤 합니다. 내 삶이 어디로 흐르고, 내 삶이 어떠한 결이나 무늬인가를 못 느끼곤 해요.


- “히시미도 참, 좀더 부드럽게 말해도 될 텐데.” ‘그건 그래. 우리도 나중에 그렇게 얘기해 주는데 말야. 으음, 많이 다르구나.’ (162쪽)


 사랑을 하고 싶을 때에는 사랑을 하면 됩니다. 믿음을 이루고 싶을 때에는 믿음을 이루면 됩니다. 꿈을 지키고 싶을 때에는 꿈을 지키면 돼요. 다만, 사랑을 하고 싶을 때에는 참답고 착하며 고운 넋으로 사랑을 해야 합니다. 참답지 않고 착하지 않으며 곱지 않은 넋으로는 사랑을 하지 못합니다. 참답지 않을 때에는 믿음을 이루지 못합니다. 착하지 않으면서 꿈을 지키지 못합니다. 곱지 않으면서 내 삶을 나 스스로 어떻게 느낄 수 있으려나요.

 만화책 《샤먼 시스터즈》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을 한 자리에 겹쳐 놓고 이야기를 풀고 맺습니다. 보이는 삶이 모두일 수 있고, 보이지 않는 삶이 모두일 수 있습니다.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이 알맞게 어우러질 수 있습니다.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 둘레에 또다른 삶이 있기도 합니다.

 어떻든 한 번 누리는 내 삶입니다. 고맙게 선물받아 일구는 꼭 한 번 누리는 내 삶입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닙니다. 언제나 한 번 선물받고 한 번 선물하는 내 삶이에요.

 나는 썩 좋지 못하다 싶은 터전에서 꽤 좋지 못하다 싶은 선물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낳아 돌볼 아이들한테 썩 좋지 못하다 싶은 터전을 고스란히 물려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내가 썩 좋다 싶은 터전을 선물받고도, 내 아이한테 썩 좋지 못하다 싶은 터전을 물려줄 수 있어요. 앞길은 모르고 앞날은 아리송합니다. 앞길은 흐리고 앞날은 어지럽습니다. 바로 이곳, 바로 오늘, 내 삶을 나 스스로 모르면 내 앞길은 모릅니다. 바로 이곳, 바로 오늘, 내 삶을 나 스스로 알면 내 앞날은 아리송하지 않아요. 아주 또렷합니다.

 아름다이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찾습니다. 돈을 조금 더 벌며 이름도 이럭저럭 얻고 싶은 사람은 돈을 조금 더 벌며 이름도 이럭저럭 얻을 만한 길을 찾습니다. 다만, 이런 길을 찾든 저런 길을 찾든, 드디어 길을 찾았구나 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도무지 길을 못 찾는 사람이 있어요. 《샤먼 시스터즈》 2권을 덮고 3권째 읽습니다. 나는 내 보람차며 고마운 오늘을 마음껏 누리고 싶어, 오늘 한가위에도 둘째 갓난쟁이 기저귀를 끝없이 손빨래합니다. 한가위를 맞이해 할머니·할아버지 댁에 찾아오니 첫째 아이는 마냥 끝없이 뛰놀기만 하려 드는데, 하루 빨리 우리 네 식구 살가운 숲속 조용한 보금자리를 찾아 옹글며 오롯이 뛰놀 터전에서 네 식구가 그야말로 옹글며 오롯이 뛰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4344.9.12.달.ㅎㄲㅅㄱ)


― 샤먼 시스터즈 2 (쿠마쿠라 다카토시 글·그림,문준식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4.1.15./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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