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헌책방
춘천으로 보금자리를 옮긴다. 네 식구 곱게 살아갈 살림집을 찾으러 여러 차례 오간 끝에 참 예쁜 멧자락을 낀 예쁜 집을 얻었다. 예쁜 멧자락을 낀 예쁜 집을 얻었으니 홀가분하다. 도서관 책을 옮길 마땅한 자리는 아직 못 찾았지만, 식구들이 마음을 붙이면서 오순도순 어우러질 좋은 보금자리를 찾았으니 기쁘다. 가벼운 마음으로 춘천 중앙로2가 94-3번지 〈경춘서점〉으로 찾아간다. 그동안 춘천을 오가면서 이곳까지 들르지 못했다. 살림집과 도서관이 새로 깃들 자리를 찾지 못했으니 마음이 무거워 차마 찾아갈 수 없었다.
춘천 시내 두 군데 헌책방 가운데 하나인 〈경춘서점〉에서 춘천 시내에 자리한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사진책 일흔 권을 장만한다. 〈경춘서점〉 책꽂이에서 좀처럼 새 임자를 찾지 못한 채 먼지를 곱게 먹는 졸업사진책을 한꺼번에 장만한다. 춘천에서 문화와 교육과 역사와 삶을 사랑하면서 책을 아끼는 분들은 이러한 옛 자료에는 눈길을 두기 힘들었을까. 어쩌면, 졸업사진책이 어떠한 값과 뜻과 넋이 깃든 책인가를 아직 모르니까 눈길을 못 두었다 할 만하겠지. 1960년대에 춘천국민학교가 어떤 모습이었고, 1970년대에 춘천에서 중학교를 다닌 아이들 옷차림과 머리 모양과 신이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헤아리려는 사람이 있다면, 비로소 이 졸업사진책에 서린 값과 뜻과 넋을 짚을 테지. 나처럼 고향이 인천인 사람이라면, 1950∼70년대에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반공바람’에 휩쓸리면서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밑으로 와서 사진을 찍겠다며 수학여행을 오는 모습이 사진으로 담긴 졸업사진책에 어떤 값과 뜻과 넋이 감도는가를 헤아릴 테지.
나는 춘천에 있는 춘천 헌책방이 좋다. 나는 인천에 있는 인천 헌책방이 좋다. 나는 제주에 있는 제주 헌책방이 좋다. 나는 서울에 있는 서울 헌책방이 좋다.
나는 춘천이나 인천이나 제주나 서울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이들 도시에 헌책방이 있기 때문에 이곳 헌책방을 좋아하고, 헌책방을 아끼며 즐겨찾는 사람들 손길과 발걸음을 좋아한다. (4344.9.3.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