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책읽기


 만화책 《아빠는 요리사》 112권을 보면 도시락 싸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공 ‘요리사 같은 아빠’가 다니는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도시락을 싸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주인공인 ‘요리사 같은 아빠’는 어마어마하다 할 만한 도시락을 선보이면서 ‘집에서 도시락을 싸는 일이 얼마나 기쁘며 즐거운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면서 가장 자주 가장 오래 떠올릴 만한 이야기는 ‘어머니가 싼 도시락을 꺼내어 먹던 일’입니다. 나는 내 어머니가 싼 도시락을 한 번도 부끄러이 여긴 적이 없고, 한 번도 반찬이나 밥알 하나 남긴 적 없습니다. 동무보다 도시락이 빼어나기에 부끄러이 여기지 않습니다. 날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는 어머니 삶을 알기에, 이 삶이 배어든 사랑어린 도시락이 더없이 고맙습니다. 고마운 도시락이니 가방을 멜 때에 도시락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쓰고, 학교에 닿은 뒤 도시락을 살그머니 꺼내어 책상서랍에 얌전히 모십니다. 낮밥을 먹을 때까지 즐거이 기다립니다. 도시락 따끈따끈한 기운이 교과서나 공책에 밸 때면, 이 따끈따끈한 기운을 볼에 대며 좋아했습니다.

 광역시나 시를 넘어 군이나 읍이나 면이 되면, 학교가 차츰 작아집니다. 학교 크기도 작지만, 이 작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숫자는 얼마 안 됩니다. 문닫는 시골 학교가 해마다 늘어납니다. 이와 달리 광역시나 시에서는 새로운 학교가 자꾸 태어납니다.

 시골에서는 지자체나 나라에서 돈을 대어 시골학교 아이들을 버스로 집까지 태워 주거나 모시러 다니곤 합니다. 시골학교에서는 아주 마땅히 아이들한테 ‘무상급식’을 하는 줄 압니다. 급식뿐 아니라 이런 설비 저런 교재를 지자체나 나라에서 대는 줄 압니다.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는 낮밥이나 참이나 교재뿐 아니라 여러 가지를 마땅히 대야 합니다. 복지라는 이름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이름이니까요. 돈을 내야만 배울 수 있을 때에는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기초교육이라 한다면.

 그렇지만, 나는 좀 달리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밥을 먹일 수 있어야 합니다만, 학교에 따로 밥먹는 자리를 마련하기보다, 집집마다 ‘도시락을 쌀 돈’을 대어, 집집마다 다 다른 아이들 몸에 걸맞게 다 다른 도시락을 싸도록 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교육이니까요. 교육은 틀에 짜맞추는(획일화) 일이 아니요, 교육은 사람에 맞추어(전인교육) 저마다 다른 삶을 찾고 느끼며 사랑하도록 이끄는 일일 테니까요.

 나와 옆지기는 우리 아이들을 학교에 넣을 마음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하면 보낼 수는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무렵이 되면, 우리 아이들이 다닐 시골학교에서는 아주 마땅히 ‘무상급식’을 하겠지요. 어쩌면 이 급식을 그냥 받아서 먹도록 할 수 있습니다만, 나는 아이들한테 도시락을 따로 싸서 건네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집에서 먹는 밥이랑 밖에서 먹는 밥이 다르도록 하고 싶지 않아요.

 학교에 다니기로 했으면 그냥 급식을 받는 일이 나을는지 모릅니다. 집 바깥에서 오래 머물며 살아가니까요.

 도시락을 싸고 싶으면 학교에 보내지 않을 노릇인지 모릅니다. 도시락에 담는 사랑을 아이가 느끼며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아이가 제도권 틀에 얽히지 않는 홀가분하며 아름다운 넋으로 자라도록 곁에서 힘쓸 노릇이라 하겠지요.

 군대에서 밥먹던 일을 돌이킵니다. 군대에서는 밥먹는 일마저 썩 반갑지 않았습니다. 밥먹으러 갈 때에도 줄지어 걸으며 군대노래를 목청이 터져라 불러야 하고, 밥을 다 먹고 나서 밥판을 아주 구석구석 닦아야 했을 뿐 아니라, 잔 티가 조금이라도 남거나 어느 한쪽이 미끌거리면 스텐 밥판이 깨져라 머리통을 두들겨맞고 얼차려를 받은 다음 다시 밥판을 닦아야 했습니다.

 학교 밥먹는 자리에서도 밥판을 씁니다. 초등학교이든 대학교이든 밥판을 씁니다. 스텐 밥판을 볼 때면 군대가 떠오릅니다. 왜 저런 밥판을 써야 하는지 소름이 돋습니다. 밥을 받으러 줄을 서는 일부터 내키지 않고, 밥먹는 방에 우르르 몰려 앉아 서둘러 밥을 먹고 일어서야 하는 일 또한 달갑지 않습니다.

 도시락을 싸서 먹던 어린 날, 죽이 잘 맞는 동무들하고 책상을 붙여 함께 먹습니다. 뒤돌아 앉아서 먹거나 옆 짝꿍이랑 먹습니다. 때로는 도시락을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갑니다. 운동장 한켠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먹습니다. 도시락을 다 먹고 풀밭에 드러눕습니다. 천천히 먹어도 되고 후다닥 먹고 운동장에서 뛰놀아도 됩니다. 한참 뛰놀고 교실로 돌아가야 할 때에 빈 도시락 그릇에 물을 받아 게걸스레 마십니다.

 서울에서는 무상급식을 놓고 주민투표를 벌였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속으로 생각합니다. 참말 크나큰 일을 뒷전으로 미루고 이런 일 때문에 퍽 많은 사람들이 말다툼을 할 뿐 아니라 적잖은 돈을 들여 주민투표까지 한다니 놀랍습니다. 이런 아우성을 벌일 돈과 품과 땀으로 참말 아름다운 복지 정책을 꾸려야 할 텐데요. 참말 올바른 교육 정책을 이끌어야 할 텐데요.

 나는 더 생각합니다. 무상급식에 앞서 초·중·고등학교에 있는 주차장부터 없애면 좋겠습니다. 학교에 있는 주차장을 없애고 학교 텃밭으로 일구면 좋겠습니다. 반마다 텃밭을 하나씩 나누어 반마다 먹을 푸성귀를 반 아이들이 손수 돌보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더 돈을 들여야 이룬다는 복지나 교육을 넘어, 더 몸을 쓰고 더 마음을 기울여 서로 사랑하며 아낄 복지나 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4.8.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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