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밀이 아버지


 곧 백날째 맞이하는 둘째를 씻긴다. 둘째는 저를 씻기려 하면 금세 알아챈다. 아주 좋다며 입을 쩍 벌린다. 까르르 웃는다. 씻길 때에도 웃으면서 좋아한다. 첫째는 요즈음 “싫어.”와 “안 해.”를 입에 달며 산다. 참말로 싫거나 안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투정이면서 놀이라 할까. “그래, 싫으면 씻지 마.”라 말하거나 “그래, 안 씻으려면 혼자 씻지 마.”라 말하면, 어느새 “씻어, 씻는다구.”나 “씻을래.”라 말한다. 자꾸자꾸 뒷북놀이를 한다.

 둘째를 씻길 때에는 젖을 물릴 때 쓰던 손닦개로 온몸을 구석구석 닦으며 씻긴다. 첫째를 씻길 때에는 내 손으로 닦으며 씻긴다. 네 살 첫째는 때를 밀면 제법 나온다. 손등과 팔뚝과 어깨를 거쳐 목덜미와 등판과 허리와 배와 허벅지와 종아리와 뒷꿈치까지, 골고루 때를 민다. 조그마한 몸뚱이에서 조그마한 때가 슬슬 벗겨진다.

 아버지가 때를 밀면 아이는 저도 때를 밀겠다며 슥슥 문지른다. 아이 힘으로 아직 제 때를 밀지 못한다. 아이는 시늉만 할 뿐이다. 아이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는, 스스로 시늉을 하면서 조금씩 살이 붙고 힘살이 붙는다. 시나브로 기운이 붙고 아주 천천히 슬기를 얻는다.

 아이가 제 낯을 옳게 씻을 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는 제 목덜미를 스스로 씻는다고 여길는지 모르나, 아직 물만 조금 묻힐 뿐이다. 그래도 말끄러미 지켜본다. 아이가 하는 양을 말없이 지켜본다. 아이가 한참 혼자 깨작거리도록 둔 다음, 천천히 손을 들어 아이가 못한 일을 거든다.

 사람들은 아이가 참 귀여운 짓을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내가 볼 때에, 아이는 그닥 귀여운 짓을 하지 않는다. 아이는 살아낸다. 아이는 온힘을 기울여 살아간다. 아이로서는 모든 기운을 쏟아 살아숨쉬려 하는데, 이러한 몸짓이 무척 어설프거나 서툴기에 어른 눈썰미로는 ‘귀여운 짓’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아이한테는 살림이 아니라 소꿉놀이일 테니까, 아이가 노는 양은 귀엽게 느낄는지 모른다.

 때밀이 아버지로 지내면서 생각한다. 아이가 때밀이 시늉만 한대서 때를 밀 수 없다. 아이는 행주로 밥상을 닦고 걸레로 방바닥을 훔쳐야 한다. 아이는 어머니를 도와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아버지를 거들어 둘째 기저귀를 함께 갈면서 팔힘을 길러야 한다. 아이 책을 아이가 스스로 갈무리하거나 치우고, 밥상을 차릴 때에 수저와 그릇과 반찬통을 조금씩 같이 나르면서 어깨힘을 길러야 한다. 어머니랑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다리힘을 기르고, 빨래하는 어버이 곁에서 빨래놀이를 하며 손아귀 힘을 길러야 한다. 때가 되면 아이는 저 혼자서 때밀이를 하며 씻기놀이에 푹 빠지겠지. (4344.8.2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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