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배우는’ 책과 ‘시험문제’ 교재
 [책읽기 삶읽기 70] 장정일,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2006)



 소설쓰는 장정일 님이 쓴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2006)를 읽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힘들어 집일을 옆지기한테 맡긴 채, 자리에 드러누워 책을 읽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힘들면 책이든 뭐든 읽지 말고 가만히 쉬어야 할 텐데, 끙끙 앓며 누워 지내기만 하자니 무언가 허전하다고 느껴, 책 하나를 손에 쥡니다.

 장만하기는 일찌감치 장만했으나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생각하며 여러 해를 보낸 《장정일의 공부》를 펼칩니다. 다섯 해 앞서 이 책을 읽었으면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세 해 앞서 읽었다면, 또 지난해에 읽었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앞으로 세 해나 다섯 해나 열 해쯤 뒤에 이 책을 읽는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할 만할까요.

 《장정일의 공부》에 나오는 사회 이야기나 정치 이야기에는 눈길이 쏠리지 않습니다. 사회 이야기를 깊이 파헤치고 싶어 하는 대목에만 눈길이 쏠립니다. 정치를 다루는 이야기 말고 정치에 깃든 장정일 님 삶을 밝히는 대목에만 눈길이 갑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신문에 실리는 머릿기사를 모릅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고, 아홉 시 새소식을 볼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어떠한 새소식도 찾아서 듣거나 보지 않습니다. 거의 모두라 할 만큼, 신문 머릿기사나 방송 새소식은 ‘하루 지나면 부질없는 옛이야기’로 쌓이거나 묻히거든요.


.. 한 번도 살상 거부를 위한 종교적 정언 명령을 고민한 적이 없었던 이들이 ‘대체 복무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특혜’라는 시비를 걸고 나온 것이다. 일부 거대 개신교 목사들이 주장하는 특혜와 형평성 시비는 그들이 한 번도 대체 복무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신념으로 여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스개일 수밖에 없다 ..  (19쪽)


 신문과 방송은 등지면서 책을 읽는 까닭은 한 가지인지 모릅니다. 책은 언제라도 되넘길 수 있습니다. 참책인가 거짓책인가는, 장만해서 책꽂이에 꽂은 책을 한참 뒤에 펼치건 곧바로 펼치건 금세 드러납니다. 아니, 책꽂이에 꽂은 책을 얼마나 나중에 꺼내어 펼치느냐에 따라 참값과 거짓값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1회용품이 아닌 책이라 할 때에는 대물림을 해서 여럿이 돌려 읽어야 뜻이 있다고 느낍니다. 애써 종이에 책을 찍을 때에는 한 번 읽고 지나치거나 잊어도 되기 때문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삶을 이야기하고, 삶을 파헤치며, 삶을 나누는 책이어야 비로소 책답다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이덕일은 “앞의 대동법 논쟁에서 보았듯이 당시 백성들의 가장 큰 괴로움은 양반 사대부들의 가렴주구였지 국왕의 군사력 강화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 박정희의 일성 앞에 ‘입이라도 벙끗’ 하는 국민은 곧바로 ‘빨갱이’가 될 각오를 해야 했고, 빨갱이로 찍히는 것은 곧바로 죽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현대사는 박정희를 말하기에 앞서, 이승만 체제의 전체주의적인 요소를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한다 ..  (38, 370쪽)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합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시험문제 외우기’를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한국사람은 공부를 안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한국사람은 노상 ‘시험문제 외우기’만 합니다. 공무원시험이건 자격증시험이건 영어시험이건, 으레 시험을 치를 때에 더 점수를 잘 받게끔 문제를 외우는 데에만 마음을 바칩니다.

 참으로 많다 싶은 한국사람이 도서관에 갑니다. 그러나 공부하러 도서관에 가지 않습니다. 시험문제를 달달 외우려고 도서관에 갑니다. 도서관에 책이 많이 있다지만, 정작 ‘배우는(공부하는) 책’이라기보다 ‘시험을 잘 푸는 데에 도움이 될 교재’가 꽤나 많은 셈 아닌가 싶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붙잡고는 ‘공부 시킨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배움’도 ‘공부’도 없습니다. 오직 ‘시험’만 있습니다. 대학교라고 그닥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나는 반값등록금을 옳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대학등록금은 반토막으로 깎아야 하지 않습니다. 대학등록금은 사라져야 합니다. 대학등록금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대학교에는 오직 참배움만 있어야 합니다. 아무나 대학교에 못 들어가게끔 제대로 ‘공부하는 길을 가르쳐’서, ‘참다이 공부하지 않는 젊은 넋은 곧장 대학교 바깥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대학교는 ‘공부하지 않는 젊은 넋’을 쫓아내지 않아요. 대학교는 ‘공부 안 하는 대학생한테서 등록금을 받아 장사하는 곳’이 되었으니까요. 이런 대학교를 구태여 다니면서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일은 걸맞지 않아요. 대학교가 ‘공부하기’하고 동떨어졌는데, 이런 대학교를 얼른 그만두든지 아니면 뜯어고치든지 해야지, 그저 반값등록금 노래만 붙잡아서는 샛길에서 이리저리 헤맬 뿐입니다.


.. 민족주의라는 잣대만으로 저항운동을 투시해 온 한국사는 근대사회 이행 과정 중에 불거져 나온 여러 가지 부문 운동을 모조리 억압하거나 민족주의 투쟁 속에 귀속시켜 버렸다 … 황국신민화 교육을 담당하면서 황국신민을 양성하고 민족성 말살에 참여했던 초등학교 교사들과, 일본군 내의 한국인 장교들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 다카키 마사오는 물론이고 태평양전쟁에 참여하기를 호소했던 수많은 문인들과 언론들을 더 이상 친일파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전범이라고 일컬어야 한다) ..  (207, 210∼211쪽)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도서관에 갑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공부를 하려고 도서관에 갑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돈을 치러 살 만한 책은 돈을 치러 사고, 그저 읽을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고 도서관에 갑니다. 이제껏 책을 꽤 많이 읽었을 텐데, 언제나 더 새롭게 생각하고 더 새롭게 바라보며 더 새롭게 배우려고 책을 읽으며 도서관에 갑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도서관에서 시험문제 외우기 같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아마, 집에서도 시험문제 외우기는 안 하겠지요. 아름다운 당신 한삶을 배움이 아닌 시험에 허덕이도록 내동댕이치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사람이 되고 싶기에 책을 읽으며 배웁니다. 사랑을 이루고 싶기에 사람을 사귀며 배웁니다. 삶을 일구고 싶기에 보금자리를 아끼며 배웁니다.

 《장정일의 공부》라는 책 앞자락에는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는 덧이름이 붙습니다만, 글쎄요, 소설쓰는 장정일 님이 ‘인문학 되살리기’를 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참말 옳게 배우고 옳게 살고 싶기에 책을 읽으며 글을 쓴 한 사람 마음밭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느낍니다. (4344.8.10.물.ㅎㄲㅅㄱ)


― 장정일의 공부 (장정일 씀,랜덤하우스 펴냄,2006.11.13./120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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