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말리기 지킴이
군대에 있던 지난날, 몸이 아프다거나 고참이라거나 한다면, 날이 퍽 좋을 때에 훈련에 나가지 않고 내무반을 지키는 사람이 어김없이 하나쯤 있었다. 내가 있던 군부대는 한 해 내내 햇볕 드는 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었기 때문에, 볕이 아주 모처럼 들며 쨍쨍 눈부실 때에는 내무반마다 모포며 침낭이며 군인신이며 옷가지이며 깔개이며 잔뜩 풀밭에 내놓아 볕바라기를 시킨다. 훈련을 나가지 않고 내무반을 지키는 사람은 풀밭에서 나란히 볕바라기를 하면서 모포며 침낭이며 군인신이며 옷가지이며 깔개를 틈틈이 뒤집는다. 넌 채 가만히 두기만 한대서 보송보송 잘 마르지 않으니까. 한 사람 아닌 두 사람이 남아서 지키면, 둘은 모포를 서로 끝에서 맞잡고 탕탕 턴다.
기나긴 장마가 되고부터 새벽·아침·낮·저녁·밤으로 끝없이 빨래를 하고 또 해야 한다. 앞서 한 빨래가 다 마르지 않아도 새 빨래를 해야 하고, 새 빨래를 할 때면 보일러 불을 넣어 방바닥을 덥힌다. 집안 물기를 말리기도 하지만, 덜 마른 빨래가 방바닥 따스한 기운을 받아 얼른 마르기를 바란다.
방바닥에 펼쳐서 말리는 빨래는 틈틈이 들어서 살며시 흔든 다음 뒤집어서 펼쳐 놓는다. 가만히 두기만 하면 제대로 마르지 않는다. 가만히 두기만 한대서 말릴 수 없다.
사내들은 군대를 다녀오며 누구나 집일을 스스로 해내야 하는데, 막상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집일을 오래오래 스스로 해내면서 집식구나 어머니 어깨를 가벼이 하는 사람은 뜻밖에 몹시 드물다. 사내들은 군대를 다녀오며 말투와 몸짓이 거칠어지기만 할 뿐, 집일을 알뜰히 하는 따스하고 너른 마음과 몸가짐을 보여주지 못한다. (4344.7.13.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