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책읽기
어릴 적 처음 오토바이를 타던 날을 떠올립니다. 동네 아저씨는 동네 아이들을 하나둘 오토바이에 태워 경인고속도로 들머리에 깃든 집부터 송도유원지까지 태워 주었습니다. 요즈음 이 길에는 신호등이 몇 군데 생겼으나 1980년대 끝무렵까지 송도유원지로 가는 길에는 건널목이고 신호등이고 하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송도유원지까지 가는 길은 오른쪽으로 바다가 보이는 갯벌이요, 이 바닷가에는 여러 겹으로 쇠가시그물을 세워 군인이 지키고 섰거든요. 자동차이든 자전거이든 사람이든 이 길에서는 멈추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동네 아저씨 오토바이에 얻어타며 송도유원지를 다녀오는 길에 눈을 뜨지 못합니다. 너무 빨라서 앞을 볼 수 없습니다.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몰며 어떻게 앞을 볼 수 있는지 놀랐습니다. 40, 60, 80, 속도계 바늘은 자꾸 올라가고, 바늘이 올라갈수록 눈을 감은 채 달려야 했으며, 머리카락이 뽑힐까 걱정스럽기까지 할 만큼 아팠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면 오르막을 오르막이라 느끼지 않으면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면 오르막에서도 시원하게 바람을 쐬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탈 때에도 이와 똑같겠지요.
오토바이를 모는 사람은 오르막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 수 없습니다. 오토바이가 오르막을 땀 한 방울 안 흘리며 오를 때에는 배기가스를 더욱 짙고 구리게 내뿜습니다. 자전거로 오르막을 오르거나 두 다리로 오르막을 오르던 사람은 오토바이가 옆에서 지나갈 때에 숨이 막히면서 재채기가 납니다. 오르막을 오르는 자전거나 두 다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헉헉거리는데, 오토바이가 더 짙고 구리게 내뿜는 배기가스 때문에 숨까지 막히며 재채기가 나니 죽을맛입니다.
오토바이는 오르막을 지나 내리막에 이르면 더 빠르게 내달립니다. 오토바이를 타면, 오르막에서 땀을 안 흘리며 시원하게 바람을 쐬고 내리막에서 내리막이 얼마나 고마우며 시원한가를 느끼지 않으면서 그냥 찬바람을 잔뜩 쐽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가 오토바이를 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가 오토바이를 함부로 얻어서 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가 책을 더 빨리 많이 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가 남보다 책을 더 빨리 많이 읽기보다는, 아이 손에 굳은살이 더 단단히 박히고 아이 다리에 힘살이 더 튼튼히 오르면서, 이 땅을 씩씩하게 디딜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가 더 좋다 할 만한 책을 더 손쉽게 알아채거나 받아들이거나 물려받아 책읽기를 즐기는 삶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가 제 몸뚱이를 움직여 일하는 고단한 보람과 일을 마친 힘겨운 웃음과 눈물을 고이 받아들이면서 책 하나에 서리는 기쁨과 슬픔을 달콤하면서 쌉싸름하게 맞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4.7.6.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