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마법의 신문 기자 동글이의 엽기 코믹 상상여행 2
야다마 시로 지음, 오세웅 옮김 / 노란우산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아이랑 살아가면 신문을 읽지 않는다
 [어린이책 읽는 삶 1] 야다마 시로, 《나는야 마법의 신문기자》(노란우산,2010)



 집에서 아이 아버지는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집에서 아이 어머니도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우리 집은 종이신문을 받아보지 않거든요. 따로 인터넷을 누비며 누리신문을 읽지도 않습니다.

 집에 따로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습니다. 집에 따로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으니 방송을 볼 일도 없습니다. 때때로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기는 하지만, 누리방송이나 동영상을 보는 일이 없습니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나거나 터지는지를 거의 모릅니다.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생기거나 일어나는지를 거의 모릅니다. 나라밖에서 누가 누구를 죽이거나 죽는지를 거의 모릅니다.

 한창 무언가를 많이 배워야 한다고 여기면서 살짝 대학교에 발을 담가 다섯 학기를 다니던 때를 떠올립니다. 다섯 학기를 다니고 그만둔 대학교에서 배움삯은 내 아버지가 돈을 빌어 마련해 주었고, 대학교 둘레에서 먹고지낼 잠자리는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신문배달을 하면서 스스로 장만했습니다. 어쨌든 신문사지국은 밥과 잠을 얻는 곳이요, 일삯이 나오면 이 돈으로 책을 사읽을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신문사지국에서 일하니 이곳에서 돌리는 몇 가지 신문은 거저로 읽을 뿐 아니라, 다른 지국하고 신문을 바꾸어 읽곤 합니다. 대학교 다섯 학기를 다니며 신문사지국에서 일하는 동안 날마다 열 가지 ‘중앙일간지’라 하는 ‘서울에서 나오는 큰 신문’을 읽었습니다.

 열 가지 큰 신문에다가 스포츠신문과 경제신문과 영어신문을 날마다 찬찬히 읽는 동안 시나브로 느낍니다. 열 가지 신문을 읽든 스무 가지 신문을 읽든, 신문에 실리는 이야기는 똑같습니다. 모두들 똑같은 일과 사람을 다루며, 똑같은 곳에서 취재를 해서 글을 씁니다. 이름은 중앙일간지이지만, 정작 왜 ‘한복판(중앙)’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앙일간지를 채우는 이야기는 95퍼센트 ‘서울에서 일어나는 서울 이야기’였거든요.

 열 가지 신문을 날마다 읽으면서, 열 가지 신문마다 글투가 다르고 사진결이 다르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을 놓고 조금씩 다른 글투와 사진결로 기사를 채운대서 무엇이 달라질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열 사람이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면서도 다 다르게 느끼거나 생각하잖아요. 구름을 바라보든 비를 느끼든, 열 사람은 열 가지 느낌입니다. 열 가지 신문이라면 열 가지 글투가 될밖에 없습니다. 굳이 ‘다른 글투를 느끼자’며 여러 신문을 볼 까닭이 없어요. 이 신문이 못 짚는 이야기를 저 신문이 짚는다든지, 저 신문이 안 다루는 이야기를 고 신문이 다루어야 바야흐로 여러 가지 신문을 보는 보람이 있습니다.


.. 한참 생각한 끝에 ‘벽신문’을 만들기로 했다. 벽신문은 커다란 종이에 기사를 적어서 어딘가에 붙이기만 하면 된다. 뉴스거리는 여기저기에 많기 때문에 기사를 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제 1호 신문을 만들었다 ..  (5쪽)


 신문이나 방송하고는 금을 그으면서 책을 읽습니다. 그러나, 이 책 또한 그닥 많이 읽지 못합니다. 오늘날 여느 사람하고 견주면 많이 읽는 셈일 테지만, 옆지기를 만나 함께 살아가며 책읽기가 줄고, 아이 하나를 낳으며 책읽기는 훨씬 줄며, 아이 둘이 되니 책읽기는 더더욱 줍니다.

 집일을 도맡지만, 집일을 제대로 도맡는다 말하지 못합니다. 옆지기가 잔소리를 제대로 안 해서 그렇지, 옆지기가 ‘집일이 이게 무어냐?’ 하고 따지면 하나부터 열까지 할 말이 없습니다. 날마다 할 집일을 날마다 옳게 건사하지 못하니, 집일을 도맡느라 하루 열 시간을 넉넉히 쓰더라도 집꼴이 그닥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책을 읽는다든지 신문을 들춘다든지 방송을 뒤적일 겨를이 없어요. 생각해 보면, 집일로 바쁘니 이것저것 챙길 수 없습니다.

 이레째 퍼붓던 비가 하루 그친 다음 다시 비가 퍼붓는가 싶더니, 밤에만 조금 흩뿌리고 날이 살며시 갭니다. 언제 다시 퍼부을는지는 모르지만, 구름이 살며시 걷히면서 햇살이 드리웁니다. 멧자락에서는 멧새 소리가 예쁘게 들리고, 웃마을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당에 나가면 도랑에서 물이 콸콸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빗소리에 잠겨 숨죽이던 소리들이 모조리 깨어납니다.

 갓난쟁이를 안고 마을길을 걷거나 멧길을 거닐 때에 물소리가 콰르르 조르르 들리면, 이 소리를 듣고 갓난쟁이가 참 잘 잡니다.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눕히면 응애 하면서 곧바로 깹니다. 물소리는 크든 작든 아이를 곱게 재웁니다. 이와 달리, 자동차 소리는 크든 작든 아이를 놀래킵니다. 아이 곁에서 하루 스물네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를 바라보니, 아이가 무엇하고 살가이 사귀도록 해야 좋을까를 몸으로 느낍니다. 아이하고 살아갈 어른으로서 내 하루를 어떻게 다스려야 아름다울까를 마음으로 깊이 되새깁니다.


.. 어떤 사람의 창피스러운 이야기를 신문에 쓰면 안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아예 신문을 만들 수 없는 건 아닐까? … 나는 가짜 신문 제 1호를 붙였다. ‘이제 두고보라지. 모두들 깜짝 놀랄 거야!’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그런데 어째 이상하다. 가짜 신문이라고 분명히 써 놨는데도 사람들은 진짜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다 … “아예 냉장고를 넣어 두면 편리할 텐데…….”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 배 안에 먹거리를 넣어 가지고 다닌다는 게…….” 아무리 장난 삼아 하는 이야기라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뿐이었다  ..  (19, 24, 45쪽)


 어린이책 《나는야 마법의 신문기자》(노란우산,2010)를 읽습니다. 앙증맞은 그림에 앙증맞은 글이 어우러진 어여쁜 이야기책입니다. 일본에서는 1985년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2010년에 옮겨집니다. 나는 이 책을 헌책방에서 일찌감치 일본책으로 보았습니다. 그림이 퍽 귀여웁다고 느꼈고, ‘잘 그렸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줄거리는 어떠할는지 모르나, 일본 어린이책을 꽤 많이 옮기는 우리 흐름을 돌아본다면, 퍽 예전부터 옮길 만하지 않겠느냐 싶었으나, 이제서야 한국말로 나옵니다.

 이 이야기책을 쓴 야다마 시로 님은 책끝에 “‘진짜’인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먼저 소문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고, 여러분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좋아요(81쪽).” 하는 말을 붙입니다. 참인지 거짓인지 알자면, 몸소 알아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 밑줄을 그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 또한 내가 몸소 알아보지 않고서야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직한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믿기도 하지만, 내가 받아들여 즐길 이야기라면, 내 몸으로 겪어야 내 입으로 말할 수 있고 내 머리로 생각할 수 있어요.

 몸소 아기를 안아야 아기 느낌을 압니다. 아기를 달래고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주어야 아이하고 어우러지는 나날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손수 밥을 차리고 손수 밥을 치우며, 손수 빨래를 하고 손수 빨래를 걷어 개야, 비로소 집일이 어떠한가를 깨닫습니다. 걸레를 손수 빨고, 빗자루를 손수 들어야, 집을 돌보는 나날을 알아차립니다.

 입에 넣고 냠냠짭짭 씹어야 밥맛을 압니다. 눈으로 보아서는 밥맛을 모릅니다. 참인지 거짓인지 알자면 ‘신문을 읽기’만 해서는 모를 뿐 아니라 ‘내 눈으로 지켜본다’고 해서 알 수 있지 않아요. 더 깊이 스며들어야 해요. ‘삶으로 받아들이도록 몸으로 부대낄’ 때에 천천히 알 수 있습니다.


.. ‘내가 만든 재미있고 멋진 신문을 붙여 주면 이 알림판도 좋아하겠지?’ ..  (6쪽)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두 아이 어버이로서 아이하고 보내는 오늘 하루가 즐겁기에, ‘아이를 키우는 보람과 재미와 힘겨움과 고단함’을 날마다 새롭게 적바림하는 신문이 없다면, 굳이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더라도, 나 스스로 내 아이하고 살아가며 날마다 새롭게 느끼는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며 어여쁩니다.

 아침에 깬 첫째 아이가 새소리를 듣는 멧자락 작은 집이 좋습니다. 첫째 아이가 깨며 종알종알 떠드는 소리에 깬 둘째 아이가 끄응끄응 하면서 옹알옹알 꽁꽁거리며 눈알을 굴리는 조그마한 보금자리가 좋습니다. 오늘은 비가 없이 아주 후덥지근할 듯합니다. 아침부터 집안 온도가 27도. 이제 쌀을 씻어 불린 다음 둘째 갓난쟁이를 씻기고 집안을 첫째랑 함께 치워야겠습니다. 첫째 아이는 《나는야 마법의 신문기자》에 나오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돼지’ 그림을 보며 무척 좋아합니다. 네 살 아이는 앞으로 네 살쯤 더 나이를 먹어 글자를 깨치면, 스스로 이 책을 넘기면서 신나게 읽겠지요. (4344.6.28.물.ㅎㄲㅅㄱ)


― 나는야 마법의 신문기자 (야다마 시로 글·그림,오세웅 옮김,노란우산 펴냄,2010.4.3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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