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 책읽기


 기계를 안 쓰면 넓은 논밭을 언제 갈아엎으며 논을 언제 삶고 밭에 언제 이랑고랑 내느냐 할 오늘날입니다. 그런데, 흙을 일구는 사람은 목숨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목숨을 다루는 사람이기에 품과 겨를을 들여서 일을 합니다.

 나는 내 두 아이뿐 아니라 이웃이나 동무가 낳아서 키우는 아이를 어떤 ‘주어진 시간표 틀’에 맞추어 지식을 쏙쏙 집어넣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든, 내 아이한테 책을 읽히든, 둘레 아이가 책을 읽도록 거들든, 지식이 아닌 삶으로 책을 받아들이도록 할 뿐입니다.

 기계를 쓰면 틀림없이 온갖 일을 훨씬 빨리 마무리짓습니다. 기계를 쓰면 팔과 손과 허리와 다리가 하나도 안 아프면서 빨래를 다 해냅니다. 기계를 쓰면 꽤 멀리까지 수월하게 오갈 수 있습니다. 기계를 쓰면 짐을 싣든 사람을 태우든 걱정할 일이 적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기계처럼 살고 싶지 않을 뿐더러, 내 몸뚱이를 쓸 수 있는 삶일 때에는 내 몸뚱이를 쓰고 싶습니다. 내 팔다리가 힘들 때에는 택시를 부르거나 버스를 타면 됩니다. 내 팔다리를 쓸 만하다면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몰면 됩니다. 내 손으로 빨래를 하면서 내 식구들 옷가지를 만지작거리고 두 아이 똥오줌 냄새를 손에 잔뜩 풍기면서 살아갑니다.

 나는 내 아이가 똑똑한 사람이거나 잘난 사람이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나부터 똑똑한 사람이거나 잘난 사람이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착한 사람으로 살고, 할 수 있는 즐거움을 나누는 고운 사람으로 지내며, 하고픈 일을 사랑하는 참다운 사람으로 삶을 일구기를 비손합니다.

 책은 첫 줄부터 끝 줄까지 기계처럼 읽을 수 없습니다. 책읽기를 할 때에는 한 줄만 즈믄 번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줄이 좋아 두고두고 되읽을 수 있고, 때로는 휙 건너뛸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자꾸자꾸 읽을 수 있으며, 새로운 책만 찾아나설 수 있겠지요. 틀에 박을 수 없는 책이요 책읽기이듯, 틀에 박을 수 없는 삶이며 사랑입니다.

 기계를 써야 하느냐 안 써야 하느냐가 아닙니다. 어떤 기계를 왜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누구하고 쓰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막 세이레를 갓 지난 어린 아기가 새근새근 자는 살림집 곁으로 부릉부릉 큰소리를 내는 오토바이를 몰며 시골일을 한다면, 이와 같은 기계는 사람 삶에 무엇을 이바지하는 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바람이 거세게 분대서 잠을 깨지 않습니다. 아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에 잠을 깨지 않습니다. 아이는 개구리 우는 소리에 잠을 깨지 않고, 뻐꾸기 높은 목청에 잠을 깨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기계 소리에는 어김없이 잠을 깹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소리에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이는 텔레비전 소리에도 잠들지 못하는데, 호미나 괭이로 흙을 쪼는 소리에는 근심없이 잘 잡니다. (4344.6.1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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