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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페 일기 - 행복이란 분명 이런 것 ㅣ 다카페 일기 1
모리 유지 지음, 권남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8년 12월
평점 :
마음껏 찍으셔요, 사진이니까요
[찾아 읽는 사진책 31] 모리 유지, 《다카페 일기》(북스코프,2008)
날마다 집에서 아이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보내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집에서 아이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보내는 나날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침에는 집 바깥 일터로 가서 일을 하고 저녁나절에 느즈막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이러한 삶흐름에 맞추어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여느 날에 아이하고 마주하는 겨를이 적다면, 주말이나 쉬는 때에 아이하고 조금 더 오래 마주하면서 조금 더 많이 사진을 찍자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이른바 ‘출사 사진’처럼 아이 사진을 찍습니다.
여느 날에 아이하고 늘 마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출사 사진’이 덧없을 뿐 아니라, 출사 사진을 찍을 일도 까닭도 겨를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바라보면서 ‘자, 활짝 웃어 보렴!’ 하고 말하면서 찍을 어버이란 없을 테니까요. 아이가 활짝 웃으며 신나게 놀 때에 곁에서 이 모습을 놓치지 않으면서 찍으면 되니까요.
아이 앞에서든 모델 앞에서든 매한가지입니다. 사람을 마주보면서 ‘자, 활짝 웃어 보셔요!’ 하고 말하는 사람이 찍는 사진은 이름으로는 사진이지만 사진이 아닙니다. ‘자, 이렇게 해 보셔요!’ 하고 말하는 사람이 담는 사진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진이지만 사진이 아니에요. 똑같이 ‘얼굴 힘살을 움직인’대서 웃음이 되지는 않아요. 놀면서 짓는 웃음이랑 사진기 앞에서 짓는 웃음은 다릅니다. 놀면서 웃을 때에 곁에서 즐거이 사진으로 담아야지, 다 놀고 나서 쉬는 때에 얼굴빛만 웃으라 하면서 웃음꽃 사진을 빚는대서 ‘사진 한 장에 이야기가 깃들’ 수는 없습니다.
사진책 《다카페 일기》(북스코프,2008)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사진책 《윤미네 집》(포토넷,2010)하고 비슷하다면 비슷하고 같다면 같으나 다르다면 다른 사진책 《다카페 일기》를 곰곰이 살피면서 생각합니다. 사진책 《다카페 일기》는 ‘집에서 아이하고 함께 지내는 겨를이 긴 사람’이 ‘집에서 언제나 아이하고 복닥이는 모습을 스스럼없이’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책 《윤미네 집》은 ‘바깥일로 바쁜 사람’이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때와 주말과 쉬는 날을 맞이해서 집안 식구 나날을 바지런히’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는 《윤미네 집》을 좋아합니다. 다만, 《윤미네 집》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사진책에 깃든 좋고 아쉬운 대목을 모두 좋아합니다. 사진책 《윤미네 집》은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로 나뉜 우리네 모습이 고스란히 담깁니다. 《윤미네 집》을 일군 전몽각 님은 집에 머물 겨를이 거의 없었을 테지만, 아이하고 조금 더 만나고픈 꿈을 사진으로 키웁니다. 아이하고 자주 마음껏 놀 수 없으나, 적어도 입학식이나 졸업식 같은 자리에는 함께하려고 힘씁니다. 지난날이건 오늘날이건 아이가 학교에서 맞이하는 크고작은 행사에 함께하는 아버지는 그리 안 많습니다. 전몽각 님은 몹시 애쓰고 힘쓰면서 《윤미네 집》을 가까스로 맺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책 《윤미네 집》에는 아이가 하루하루 남달리 자라거나 크면서 으레 바라볼 예쁘면서 밉고, 미우면서 예쁜, 즐거우면서 고단하고, 고단하면서 즐거운 ‘여느 삶 여느 모습 여느 이야기’가 얼마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하거나 저러하거나 사진책 《윤미네 집》에는 집식구를 알뜰히 사랑하는 따사로운 손길이 깊이 스며요.
사진책 《다카페 일기》를 빚은 모리 유지 님도 바깥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전몽각 님과 달리 ‘집에서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전몽각 님하고 다르게 ‘집에서 아이하고 복닥이거나 부대끼는 겨를이 퍽 길다’ 여길 수 있습니다.
《다카페 일기》를 일군 모리 유지 님을 놓고, 옆지기 ‘다짱’ 님은 “남편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외부에서 사진 찍는 걸 아주 곤혹스러워 합니다. 망원렌즈를 구입한 뒤에도 바다(딸아이)의 운동회를 비롯해 여러 행사에 참여했지만, 카메라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낸 적이 없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사진과 디자인으로 집식구를 먹여살린다는 모리 유지 님인데,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는 사진을 못 찍는다고 하니까, 사람을 찍는 사진쟁이는 아니고 물건이나 건축을 사진으로 찍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카페 일기》 끝자락에는 “나는 앞으로도 계속될 평범한 날들을 아내와 사이좋게 지내기도 하고, 가끔 토닥거리기도 하면서, 나 나름대로 열심히 보내고, 바다와 하늘이를 잘 키우고, 그날들을 찍고, 일기에 쓰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리 유지 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옆지기와 아이 삶을 늘 부대끼면서 언제나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잘난 사진이나 뛰어난 사진이나 멋진 사진이나 놀라운 사진을 찍을 마음은 없다는 소리입니다. 날마다 마주하는 사랑스러운 삶자락을 사랑스러운 사진으로 품고 싶다는 이야기예요.
사진이니까 신나게 찍습니다. 사진이기에 마음껏 찍습니다. 누구 눈치를 볼 까닭이 없습니다. 무슨무슨 ‘사진 경향’이나 ‘사진 조류’에 휩쓸릴 까닭이 없습니다. 어떤저떤 사진 장비를 갖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사진강의를 듣거나 사진수업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무지개빛 사진으로 찍든 까망하양 사진으로 찍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 한삶을 다큐멘터리처럼 엮는다든지 패션사진처럼 뽐낸다든지 할 까닭이 없어요. 아이를 찍는 사진은 아이를 아이답게 담으면 즐겁습니다. 옆지기를 담는 사진은 옆지기를 옆지기 그대로 담으면 아름답습니다.
모델 아무개처럼 보이도록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얼짱각도로 찍어야 할 사진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꾸밈없이 찍으면 될 사진입니다. 따사로운 손길을 따사로운 눈길로 누리면 될 사진입니다. 마음껏 찍으셔요, 사진이니까요.
그나저나, 《다카페 일기》에 나오는 어른 두 사람은 ‘일본말 이름’으로 적으면서, 아이 둘은 ‘한국말 이름’으로 적은 대목은 잘못입니다. 아이 이름을 ‘바다’와 ‘하늘’이라 했으나, 일본말대로 적어야지요. 일본사람이 ‘海’와 ‘空’으로 붙인 일본 이름이니까, 이 일본 이름 그대로 읽어야 마땅합니다. 맑은 사진을 바라보며 즐기다가, 엉뚱한 번역 때문에 살짝 낯을 찌푸립니다. (4344.5.18.물.ㅎㄲㅅㄱ)
― 다카페 일기 (모리 유지 사진·글,권남희 옮김,북스코프 펴냄,2008.12.22./15000원)
(최종규 .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