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쫑빼쫑 새와 책읽기
새벽 세 시 오십삼 분에 일어난다. 텃밭 가장자리에 쉬를 눈다. 보름달은 기울고 하늘은 온통 잿빛구름이다. 앞 멧자락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그리 멀잖은 곳에 있다. 휘파람새라는 새일까. 밤에 지저귀는 소리가 참 남다르다. 이윽고 날이 차츰 밝으며 다른 멧새가 우짖는다. 삐이삐이 빼쫑빼쫑 우짖는 이 새는 종다리일까. 새벽 다섯 시에 접어들 무렵부터 한 시간쯤 우짖더니 조용하다.
새를 다룬 도감이나 사진책이 곧잘 나온다. 많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나온다. 새를 다룬 책에는 새가 날갯짓을 하거나 나뭇가지에 앉은 모습을 예쁘게 잘 담는다. 그렇지만 막상 새가 어떤 소리를 내며 노래하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새마다 어떠한 먹이를 즐겨찾는지를 알아보기는 더욱 힘들다.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 알아보거나 찾아낼 노릇이다. 새를 다룬 사진책이나 도감이 모든 이야기를 밝히기를 바랄 수 없다. 새벽과 아침과 낮과 밤에 따라 새소리가 어떻게 다르고, 먹이를 어디에서 어떻게 얻으며, 날마다 먹이를 어느 만큼 찾아서 먹어야 즐겁고 배부르게 하루를 마감하는지를 스스로 알아보거나 찾아낼 노릇이다.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 새소리는 어떻게 다르고, 막 일어났을 때하고 한창 움직일 때하고 잠들 무렵 새소리는 어떻게 다르며, 새끼일 때하고 어른일 때 새소리는 어떻게 다른가 또한 스스로 알아보거나 찾아낼 노릇이겠지.
책을 아무리 뒤적이거나 살피더라도 제대로 알 길이란 없다. 스스로 숲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스스로 살금살금 새한테 다가서야 한다. 새가 우짖을 때에 이 소리를 가만히 귀담아들어야 한다.
책을 아무리 펼치거나 넘기더라도 밥을 맛나게 할 수 없다. 스스로 밥을 차려야 한다. 지지든 볶든 굽든 삶든 스스로 물과 불과 간을 맞추어야 한다. 어느 밥책에도 물과 쌀을 몇 그램까지 맞추고 무슨 그릇으로 쓰며 어떠한 불을 넣고 몇 분 몇 초 끓여야 한다고 적을 수 없다. 스스로 알아내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부딪혀야 한다. 책을 읽는대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조차 할 수 없다. 장님은 코끼리를 만지며 머리인지 다리인지 몸통인지 귀인지 모른다지만, 장님은 코끼리를 만져도 코끼리인 줄을 알 수 없다. (4344.4.23.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