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재우기


 새근새근 잠든 아이와 냠냠짭짭 밥먹는 아이를 바라볼 때에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낀다. 아침에 깨어나는 아이와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를 바라볼 때에 똑같이 어여쁘다고 느낀다. 아이는 제 어버이를 닮아 잠을 쫓으며 조금이라도 더 놀고파 하지 않을까 하고 느낀다. 제 어버이 되는 사람부터 온몸이 무너질 듯 고단한 나날이더라도 빈책을 펼치건 셈틀을 켜건 글조각 하나를 건사하려고 애쓰니까.

 하룻밤만 자고 돌아오는 인천마실은 몹시 힘들다. 시골집에서 새벽에 길을 나서며 서울로 들어선 다음에 전철을 여러 차례 갈아타고 인천으로 간다. 하루만에 이 길을 거꾸로 되짚으며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시골 버스역에서 시외버스를 마지막으로 내린 다음 택시를 타기로 한다. 아이도 힘들고 옆지기도 힘들다. 애 아버지 혼자 마실을 하고 돌아올 때에는 택시를 타는 일이 없다. 애 아버지는 몸이 아무리 고단해도 택시삯 1만 원을 아끼고 싶어서 시골버스를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기다리다가 꾸역꾸역 논둑길을 걸어서 돌아온다.

 아이는 옆지기와 마찬가지로 몸이 참 고단하다. 그러나 쉽사리 잠들려 하지 않는다. 잠자리에 눕힌다. 잠자리에 눕히기까지 참 여러 차례 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한다. 아이는 같은 말을 수없이 들은 끝에 겨우 눕는다. 그런데 오늘도 어김없이 기저귀를 차고 이불을 여미고 나서 다시금 “쉬 마려.” 하고 말한다. 쉬를 누고 누웠는데 이런다. 기저귀를 풀고 변기에 앉히면 쉬를 안 눈다. 나올 쉬가 없으니까. 쉬 마려운 느낌이 나니까 그럴까. 조금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럴까. 일부러 그럴까.

 잠들기 앞서 이것저것 다 챙기더라도 꼭 되풀이하도록 일을 곱으로 늘린다. 아버지는 머리가 터질 듯하다. 힘든데다가 지쳐서 눈이 무겁게 감기는데, 아이하고 자리에 함께 누워도 결리는 허리를 다시 펴며 일어서야 한다.

 왜 곱게 잠들지 않을까. 왜 곱게 잠자려 하지 않을까. 이러면 제 어버이가 뻔히 힘든 줄을 모를까. 이러는 동안 제 어버이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가를 못 느낄까.

 바깥일을 하느라 바쁜 오늘날 여느 어버이들은 이런 ‘아이 재우기’를 잘 모르거나 거의 못 느끼겠지. 바깥일을 하며 돈을 벌어 집안을 꾸린다는 거의 모든 웬만한 아버지 되는 이들은 이 같은 ‘아이 재우기’를 몸소 겪을 일이 드물 테지. 집에서 집일과 집살림을 하는 어머니가 아이를 토닥토닥 얼른 재우지 못할 때에, 그러니까 아이가 더 놀려 하거나 칭얼거릴 때에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버지일까. 나는 내가 집일과 집살림에다가 아이키우기를 도맡지 않는 나날을 보내는 여느 남자였다면, ‘아이 재우기’를 얼마나 헤아리거나 느끼거나 살피거나 돌아볼 수 있었을까. 아니, 나부터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깊이 두루 생각한 적이 있었는가.

 아이는 참말 고단하고 졸리면서도 잠자리에서 여러 차례 뒤척인다. 아까 진작에 재웠으면 이렇게 여러모로 칭얼거리지 않았을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아이가 꽤 졸립다 할 적에 불을 끄고 다 함께 잠자리에 들었어야 했구나 싶다. 아이는 여러모로 같은 일을 되풀이 시키면서 ‘제 어버이가 겨우 잠이 들려 할’ 때에 “엄마, 손!”이나 “아빠, 손!”을 외친다. 손을 잡아 주며 잠이 다시 달아났다가 가까스로 다시 잠이 들려 할 때에, 몸을 이래저래 뒤척이며 잠이 제대로 못 들도록 한다. 누운 채 손을 잡고 자기 힘들어 손을 놓고 몸을 좀 돌리거나 허리를 만지려 하면 또 “엄마, 손!”이나 “아빠, 손!”을 외친다. 이런 실랑이를 삼십 분쯤은 한다.

 그래그래, 너는 예쁜 아기이고 착한 아기이지. 너는 고마운 아기이며 사랑스러운 아기이지. 아무쪼록 밤새 고운 꿈결을 누비면서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렴. (4344.4.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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