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을 떠나며 책읽기


 어제 마실을 떠나려 했으나 옆지기가 말렸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 움직이기 힘들다고, 허리가 몹시 아프며, 이 비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때문에 방사능 비일 테니까 더 어렵겠다고. 한참 망설이다가 하루를 묵히고 새벽에 마실을 가기로 한다. 옆지기가 둘째를 낳기 앞서 마지막으로 바깥마실을 하며 인천에서 그림 할머님을 뵙고 인사를 여쭈고 싶기도 했다. 나 혼자 마실을 갈 수 없다. 어제 낮, 비가 그칠 듯 말 듯하더니 그예 내린다. 집에 빗물이 조금 스민다. 이 집 지붕을 어떡해야 할까. 어떡하긴 뭘, 손봐야지. 우산을 받고 아이 손을 이끌어 웃마을로 가서 아이 손과 발과 낯을 씻기고 머리를 감긴다. 머리를 감긴 다음 구연산으로 헹궈야 하는데 또 깜빡 잊었다. 아이 다른 옷가지를 조금 빨래한다. 집으로 내려온다. 집으로 와서 밥을 안치고 아이와 옆지기 먹을거리를 마련한다. 이렇게 서너 시간쯤 보내고 나니 허리가 뻑적지근하다. 아이는 밥을 먹다가 꾸벅꾸벅 졸더니 폭 하고 쓰러진다. 그래, 이런 날에는 마실을 나가면 안 되었겠지. 아버지만 생각해서 움직여서는 안 돼. 몸이 아픈 사람한테 맞추어서 움직여야 해. 잊지 말자. 조금이라도 더 몸이 튼튼한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몸이 여린 사람 삶을 헤아려야 해. 새벽 두 시 반, 아이가 오줌 마렵다며 깬다. 아이를 일으켜세워 오줌을 누이고 다시 눕힌다. 새벽 다섯 시 이십 분, 아이가 “벼리 꺼야!” 하고 빽 외친다. 잠꼬대이다. 새벽 여섯 시 오십 분 시골버스를 타야 한다. 깜빡 늦을 뻔했다. 아이 잠꼬대를 고맙다고 느낀다. 이제 짐은 다 꾸렸으니, 잠든 아이한테 옷을 주섬주섬 입히고 꼬옥 안고 길을 나서면 된다. 마실을 가는 길에 읽겠다며 책 두 권쯤 가방에 넣는다. 이 책을 읽을 겨를이 있을까. 글쎄, 아마 한 쪽조차 읽기 어려울는지 모르나, 어찌 되었든 한 쪽이라도 읽고 싶어 두 권을 가방에 넣는다. (4344.4.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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